[Review] 세상 모든 공기가 물로 변했어, 작은 외침을 듣다. 연극 <그 개>

글 입력 2018.10.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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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세상 모든 공기가 물로 변했어,
작은 외침을 듣다.
연극 <그 개>
 

"언제부터 왜 그렇게 됐는지는 아무도 몰라.
세상 모든 공기가 물로 변했어."


사람들은 물 속에 들어가면 숨을 쉬지 못한다.
어느 순간, 자유롭게 숨 쉬지 못하게 된 아이의 이야기.
연극 '그 개'다.


10. 그 개_해일과 무스탕.jpg


 
세상 모든 공기가 물로 변했어.

이 세상에 공기가 사라진다면, 사람들은 금세 숨막힘을 느끼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갑자기 세상 모든 공기가 물로 변했어.'라는 말은 '해일'이가 느끼는 세상의 답답함을 떠올리게 됐다. 이 세상에서 숨 쉬고 살 수가 없게 되었다는 중학교 2학년 '해일'의 말은 퍽 아프게 다가왔다. 그 문장에는 슬픔이 가득 차 있다기 보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 뱉어졌으니까. '틱'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으며 홀로 그 아픔을 견뎌내야 하는 '해일'에게 세상은 더 이상 자연스레 숨 쉬며 살아갈 수 없는 곳이 된 것이다.

그러니 '해일'은 간다. 바다로. 굳이 인간의 언어를 내뱉어야 하는 곳이 아닌 곳으로. 깊은 심해로, 물 속에서 초음파로 소통하는 돌고래처럼, 언어가 아닌 또 다른 무언가로 세상과 소통하려고 애쓴다. 그런 '해일'의 곁에는 유기견 '무스탕'(개명 전에는 '바닐라')가 함께 했다. 본 연극은 세상에 버려진 두 생명들이 같이 버티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같은 아픔을 가졌기에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게 된 두 생명의 우정을, 또 비극을 말이다.


3. 그 개_해일과 무스탕.jpg
 

이 험한 세상을 부드러운 이름으로 살 수 없기에 '해일', '무스탕(야생마라는 뜻)'이라는 센 이름을 가졌음에도 이름은 전혀 그들을 돌봐주지 못한다. 세상이 그 이상으로 험하고 거칠기 때문일까. '해일'이 '바닐라' 대신 새롭게 지어준 '무스탕'이라는 이름은 연극 후반부에 사라지고 '그 개'만 남는다. 유기견, 버려져서 떠돌아다니는 그 개, 나쁜 짓은 한 그 개, 죽어야만 하는 그 개, 결국 그렇게 '그 개'가 되어 버린 우리 사회의 가장 약자.

극 중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아프다. 그건 어쩌면 당연하다. '해일'이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모두 유기견이니까. 세상에 버려졌다. 그건 금전적인 문제와는 별도의 문제로 보인다. 버려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어떠한 조건과 상관없이 우리들은 세상에서 버려졌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다. 거칠고 험한 세상은 우리들은 가만히 두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모두가 유기견이면서도, 유기견 중에서도 가장 약한 유기견은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 세상의 고통은 결국 그렇게 또 가장 약자들에게 흘러들어간다.



결국, 아픔 앞에서 다 변하게 된다.

2. 그 개_영수 선영 별이 무스탕 해일(별이의 생일파티).jpg
 

본 극에서 가장 멋있고, 이상적인 어른이라고 한다면 '선영'과 '영수'다. 젊은 신혼 부부인 그들에게 별이는 희망 그 자체다. 그들이 바라는 행복은 소소하다. 그 소소함 속에서 선영과 영수는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정말로, 긍정적으로 밝게, 세상에 버려졌다고 생각한 해일이에게도 버팀목이 되어주는 멋진 사람들이다. 해일이 선영에게 그림을 배우면서 해일은 그림을 그릴 당시에 틱 증상이 나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돌고래의 초음파처럼, 해일에게는 그림인 것을 찾아낸 것이다. 세상을 등돌린 해일에게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선영의 대사에서 알 수 있다.

해일이의 틱 증상, 욕을 하는 행동을 어린 별이가 따라하자 영수는 선영에게 해일과 별이를 멀리하게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자 선영은 '나만 벽에 대고 그 뒤에 사는 사람들한테 소리치는 줄 알았어. 내가 그 벽이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라고 이야기 한다. 선영이 해일을 포용하여, 계속 웹툰작가라는 꿈을 꾸게 하고 이끌어주고, 도와준 것은 선영 역시 세상에 버려진 존재였기 때문이다. 같은 아픔을 가졌기에 해일은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선영은 그렇게 멋진 어른이었다.


8. 그 개_영수와 선영.jpg
 

그런 선영은 한 사건으로 변한다. 정말 되돌아보면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사고로 별이가 사망하게 된 것이다. 그 사건 현장에는 해일, 무스탕, 그리고 장회장의 개 '보스'가 있었다. 선영은 별이를 죽게 한 사건들을 계속 반복해서 복기한다. 그 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 곳에 왜 간 거냐며, 왜 말하지 않고 갔냐며, 그 때 왜 자신이 서류를 쓰기 위해 남편 영수를 불러냈는지, 서류를 제대로 처리해본 적 없는 사무실 직원이 문제였는지, 그 서류를 썼던 이유가 3만원의 의료보험료를 아끼기 때문이었다며... '3만원'. 결국 '별이'가 '3만원'때문에 세상을 떠났다는 세상에 선영은 무너지고 만다.

긍정적이고, 밝게, 자신을 가로막은 벽 앞에 서서 자신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던 그녀는 사라져 버린다. 그 모습들이 정말 가슴 아팠다. 결국  세상은 사람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가슴이 아팠다.

*

본 연극이 끝나고 나오는데, 극장 앞에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응원단이 춤을 추고 나서 마지막으로 빨간 풍선을 하늘로 날려보냈다. 그 풍선을 보던 한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의 할아버지는 춥다며 어서 집으로 가자고 아이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이가 한 마디했다.

"잠깐만요. 우주로 올라갈 때까지만요."

그 빨간 풍선을 보고 그 아이는 말했다. 나는 하늘로 올라가는 풍선을 보면 곧 터지겠구나하고, 그 풍선의 끝을 떠올린다. 그날 만난 아이는 그 풍선의 미래를 떠올렸다. 우주로 여행을 갈 풍선으로. 우주 비행사를 꿈꾸던 별이가 세상을 떠나게 된 것처럼. 별이가 너무 이르게 꿈에 도달한 것처럼. 우연히 만난 어린 아이의 말은 본 연극을 보고 난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11. 그 개_ 해일(마지막 장면).jpg
 



고혜원.jpg
 

[고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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