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남은 사람들의 슬픔은 누가 달래 주나요 [문화 전반]

자살한 누군가와 따뜻하게 작별하는 법
글 입력 2018.10.11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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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악몽을 꾼다. 대체로 누군가가 죽는 꿈이다. 그 대상은 가까운 사람이기도 잘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다. 최근 두 번의 악몽을 꿨는데 한 번은 내가 싫어하던 동창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후부터 그 친구의 환각을 보는 기묘한 꿈이었고, 다른 한 번은 아빠가 주차장에서 차에 들이 받혀 그 자리에서 영영 일어나지 못했고 바로 그 곳에서 내가 엉엉 우는 꿈이었다. 둘 다 썩 좋진 않았다. 일어났음에도 찜찜했고 더군다나 내게 눅눅하고 끈적하게 달라붙는 불쾌한 느낌이었다.


사실 일어나자마자 아빠에게 가서 안겼다. 평소였으면 낯간지러운 일이었겠지만 그의 죽음을 잠시 경험하고 나니 아빠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아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느닷없이 자신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들은 아빠는 어리둥절한 모습이었으나 그의 죽음은 사실 언젠가 예고 없이 닥쳐 올 예정이긴 하다. 그 언젠가는 아마도 먼 훗날이겠지만 확언할 만한 것은 또 아니기에 내가 그런 꿈을 꾸게 된 것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꿈 속이었지만 얄미운 동창이라도 그의 자살은 내게 꽤 충격이었다. 정말 생각지 못한 때에 찾아온 뜬금없는 인물과의 작별이란 (놀랍게도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꿈 속에서 알고 있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그의 환각을 보게 만들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녀는 부모님과의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그렇게 됐다고 했다. 내 무의식이 자기 멋대로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지만, 나는 그 후부터 우리 가족들과 얘기할 때마다 문득 그녀가 그들과 함께 앉아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것이 환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를 보고 그녀 생각을 할 때마다, 멍청하고 이기적이어서 멀리했던 그녀가 왠지 모르게 자꾸만 가깝게 느껴졌다. 그녀가 처음으로 가여웠다. 과거에 내게 준 스트레스를 그냥 다 잊고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꿈 속에서의 이야기이지만 현실이 된다고 해서 그리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아마 나는 그럴 것이다. 죽음은 모든 걸 용서하게 만들고, 그 중에서도 자살은 모든 죄를 내게 돌리게 만든다. 악몽과 다른 건 깨어날 수 없다는 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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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유족이라는 단어를 최근에 처음 접했다. 아마 들어 본 적 없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자살 유족은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중요하고 의미가 있던 사람을 자살로 잃고 삶에 변화를 겪은 사람을 뜻한다. 한 명이 삶의 의지를 잃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면 최소 5~10 명의 사람이 그에 영향을 받게 된다고 한다. 단순히 친족이나 가까운 친구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소식을 듣고 뭔가 심경에 변화가 생긴 모두가 해당된다. 이 문구를 ‘따뜻한 작별’ 페이지에서 마주하고 나는 베르테르를 떠올랐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베르테르는 내가 아는 남자 주인공 중 찌질함과 절절함으로는 손에 꼽히는 인물이다. 소설 속에서 그는 유부녀를 사랑하게 되어 그와 세기의 사랑을 꿈꾸지만 끝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을 깨닫고 그만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런데 그런 남성상이 당시 유럽에선 꽤 통했는지 그를 자신과 동일시 했던 남성들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한다. 과도한 감정 이입이 불러온 것은 비극이었다. 수 많은 베르테르들이 소설과 유사한 방식으로 죽음을 택했고, 이는 ‘베르테르 효과’라는 단어를 만들 정도였다. 이 단어는 유명인이 자살을 할 경우 일반인이 그를 모방하여 자살하는 경우가 급증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꼭 자살만이 아니더라도 유명인의 자살은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건 그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친다. 


내 유년 시절을 다 바쳐 사랑했던 종현이 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밥을 먹던 중이었다. 뇌의 한 부분이 나와 분리된 기분이었고 나는 그 한 그릇을 다 비우지 못한 채로 일어났다. 원래 술을 마시기로 한 약속이어서 밥을 먹고 술을 마셨는데, 그 시간 동안 나는 이상하리만큼 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실감이 나서 거기서 바로 떨어져버리고 싶었다. 매일 지하철을 타고 등교하면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도 그 때 그런 충동이 들었다. 심장인지 뇌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둘 중 하나에 있던 작은 부분을 영영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집에 와서 와인 한 병을 까서 한 번에 털어 넣고 방에 들어가 오래 울었다. 몇 명의 사람들과 전화를 하고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다가 사실은 괜찮지 않다고 흐느꼈다. 웃기게도 그러면서 그들 중 내 마음을 진짜로 이해하는 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이들이 사방에서 종현 이야기를 했다. 나는 종현이 죽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버거워서 내 마음대로 그가 사실은 저 먼 곳 어딘가로 숨어버린 것뿐이라는 이야기를 지어내곤 믿어버렸다. SNS도 다 탈퇴하거나 지워버렸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종현의 노래를 잘 듣지 못한다. 그를 꽤 긴 시간 지켜보면서 그의 예민한 감성과 왠지 모르는 슬픔을 어렴풋이 느끼곤 했다. 그런데 팬들이 사랑했던 그의 만성적인 우울이 그를 결국 좀먹을 줄 몰랐다. 나는 후회했고 그것이 누구의 탓도 아님을 알면서 괜히 나를 탓했다. 나는 내가 자살 유족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님을 안다. 하지만 적어도 가까운 사람을 자살로 떠내 보낸 이가 어떤 일련의 사고 과정을 겪을 지 정도는 알 것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우울은 공인되지 않은 전염병이다. 그리고 그것은 물리적 범위를 뛰어 넘어서까지 그를 사랑했던 이들을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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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적 자살자의 관리만큼이나 자살 유족들에 대한 관리 또한 중요하다. 사랑하는 누군가의 예기치 못한 죽음을 목도한 이들은 큰 심경의 변화를 겪게 된다. 개중에는 실제로 그 현장을 보게 된 이들도 있다. 대략 45.3%의 가족이 사망한 고인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평생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혼자서 견디기는 벅찬 일일 것이다. 따뜻한 작별은 보건복지부와 중앙심리부검센터에서 최근에 개설한 자살 유족 전용 홈페이지이다. 자살 유족은 이 곳에서 직접 본인의 슬픔의 단계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자살 유족의 88.4%가 자살 사건 발생 후 일상생활, 심리 정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한다. 우울,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자살, 중독, 스트레스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자가 검진을 해 봄으로써 그들은 자신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진단하고 악화되기 전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보다 전문적인 검진을 위해 관련 기관을 연결해주기도 한다. 그 곳에선 정기적으로 유족들이 만나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모임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발생하는 면담, 치료 비용은 ‘자살 유족 심리 지원’ 사업 서비스로 지원받을 수 있다.


내가 ‘따뜻한 작별’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부분은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실례일까 싶어 자세히 읽을 순 없었는데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고인을 떠나 보낸 뒤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죄책감, 원망, 슬픔 그리고 그리움. 고인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그들은 그 곳에서 늦게나마 전할 수 있었다. 지난 계절의 추억이 가득해서 눈이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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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유족은 때로는 자살 생존자라는 단어로 치환될 만큼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사회적 시선 때문에 가족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당당하게 말을 하지도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작년 8월부터 정부는 자살 유족에게 치료 비용을 지원하는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올해 4월까지 단 160명만이 서비스를 신청했다고 한다.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애써 그를 외면하거나 죄스럽게 생각하거나 혹은 진짜 모르기에 이런 결과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개설된 사이트는 그 의미가 크다. 분명 우리 사이 어딘가 숨어 있을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의 홍보 글을 읽고 이 사이트를 알게 되었고, 내가 알게 된 이 정보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게 되었다. 이 글을 읽게 될 누군가가 자살과 관계 없는 사람이길 기도하지만, 동시에 정말 필요한 이가 이 곳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작별은 언제나 슬프지만, 그것이 조금 더 따뜻할 수 있다면 세상 살아갈 용기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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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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