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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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에, 짝사랑을 시작했다. 굳이, 내 나이 24을 언급을 하는 이유는 그 긴 시간 동안 짝사랑을 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대부분 난 누군가가 나에게 먼저 다가오기 전에는 감정이 잘 생기지 않는 편이며, 대부분 친한 사이에서 연인으로 발전된 경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대에 다녀와 복학하고 만난 동기처럼, 사랑은 또다시 새롭게 나에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이었다.
나에게 바뀐 번호를 물어볼 때도, 같이 야구를 보러 가자고 말해줄 때도, 밥 먹자고 말할 때도, 인생 상담이 필요하다고 말을 걸어올 때도, 움직이지 않았던 내 감정은 눈을 맞추고 한 한마디에 완전히 흔들릴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눈들에 넌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 속에,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고 나를 찾는다는 것이 고마웠고, 단지 난 그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감정을 부정했다. 친구로서의 감정으로 치부해버리고, 우리를 막고 있는 여러 벽들 앞에 몇 번 씩 무너져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괴로움에 새벽 4시에 깨어나곤 했다. 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내 기분과 생활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인가. 어떻게 이런 외로운 감정싸움을 혼자 이겨내야만 하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들을 어떻게 마주할까. 아트인사이트에서 사랑과 관련된 글들을 읽어보았다. 거기서 만난, 책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난 이미 그것이 사랑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확인이 필요했을까. 정말 이 감정이 무엇인지. 친구들도 소용없고 남동생도 소용없었다. 바로 이 책이 결국, 내가 그를 향한 것이 사랑임을 확인시켜줬다.
01. 낭만적 운명론
왠지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
안심시켜주고 싶은 :
아니면 내 손이라도 잡으라고
내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람을 꿰뚫어보는 일을
중단하고자 하는 순간적인 의지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설혹 그 과정에서 눈이 약간 먼다고 하더라도?
사랑은 아주 갑자기 느끼게 된 것이다.
클로이를 비행기에서 처음 만나고, 말을 하게 되면서 그는 묘한 낭만적 운명론을 믿게 된다. 결국 그런 운명을 믿고 싶어 하는 것은, 불안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그녀는 단순히, 비행기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지는 그런 잠깐의 관계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가방을 찾으러 오면서 짓는 찡그린 표정에,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고 안심 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것이 정말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처음 만난 그녀를 알고 싶고, 그녀가 살아온 배경, 자신과는 다른 것들을 알아내기 시작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건 이미 그녀에게 눈이 멀어버려, 그녀를 '알고자'하는 일을 중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고 더 혼란스러워진다. 지금 이 감정이 과연 사랑일까 하는.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묘한 상실감, 슬픔을 느꼈다.
이것이 정말 사랑일까?
겨우 아침을 함께 보낸 주제에
사랑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낭만적 미망과 의미론적 우둔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최초의 꿈틀거림은 필연적으로
무지에 근거할 수 밖에 없다.
마지막 문장이 굉장히 와닿았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우리가 사랑할 때 다는 여러가지 조건들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운명처럼 비행기에서 만나, 그와 그녀가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0인 지점에서 시작해서 서로 채워져 나가는 것이지, 그와 그녀가 가진 50의 무언가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와 같이 24년을 산 사람, 나와 다르게 겪어온 이야기들. 그것들을 알기에 내가 그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다. 그와는 단순히 대학교에서 처음 만난 사이였으며, 2학년 때까지는 말도 잘 섞지 않던 사이였다. 난 단순히 그가 던진 단 한마디로, 사랑에 빠진 것이었다.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02. 사랑이냐 자유주의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에게 기대고 싶어진다.
알베르 카뮈의 말을 빌려보면,
'우리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 사람이 밖에서 보기에
매우 온전해보이고
주관적으로 자신을 보면
굉장히 분산되어있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그렇다. 지금 내가 불안하고,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남에게서 찾게 된다. 그리고 안정감을 바란다. 하지만, 그것이 일치하지 못하고 그 역시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불쾌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상대방은, 내가 갖지 못한 무언가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의 대가를 나중에서야 깨달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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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는 어느 날, 구두 한 켤레를 사 오게 된다. 하지만 그의 눈엔 그 구두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론은, 역시 다툼이다. 그의 생각이 반영되길 바라면서, 상대의 눈은 다른 곳으로 간 '희비극적인 불일치'를 깨닫는 순간이다. 그런 구두는, 내 기준으로는 맞지 않는데 굳이 그런 구두를 사온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사랑을 나누는 과정에서 생겨난 '라이프 모티프(Life Motive)'는 중요했다. 서로가 서로를 기억한다는 명백한 증거, 우리가 어느 과정에서 다툼을 했던, 결국 '우린 남이 아니다'라는 느낌을 주었으며, 함께 끌어낸 의미를 기억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나의 확인 :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 받기 전에는
온전히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기 전엔, 온전히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하면서, 사랑을 받으면서 내가 존재함을 느끼고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느낀다. 그러면서, 나라는 존재는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 확인 받을 수 있게 된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3. 선악을 넘어서 : 결말, 내가 널 사랑하는 이유에 대하여
그래도 죽음 뒤에는
우리가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위안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계의 끝이 반드시 사랑은 아니며,
더군다나 삶의 끝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아는 연인에게
그런 위안은 없다.
만남이 있었으면, 헤어짐도 있었다. 클로이가 자신의 동료와 바람이 났다는 것을 믿지 않기 위해 자신의 허위의 욕망 속 믿음을 가진 그는, 결국 그녀가 고백한 사실에 무릎 꿇게 된다. 헤어지게 된다. 그녀와 지냈던 몇 달간의 일들이 아코디언이 줄어드는 것처럼 수축해버린다. 진실을 믿고 싶지 않은 충동과 늘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관계의 끝을 먼저 맺어버린 클로이에게 잘못이 있는 것일까? 아니라고 대답한다. 사랑의 감정은 도덕적인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사랑과 이타성을 동일시하고 거부와 잔인성을 동일시할 수 없다. 그는 문득 그녀가 했던 질문에 대해 떠올린다. 지나가는 불행한 여자를 보고, 내가 저런 모습이 여도 사랑 할거야? 라고 묻는다.
상대방에게 무엇 때문에
나를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묻지 않는 것은 예의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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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눈 색깔이나 다리의 길이나
수표 책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네 영혼 깊은 곳의 너 자신 때문이다.
흔히들, 연애를 시작하면 내 어디가 좋았어?, 뭐 때문에 좋아진 거야? 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나라는 사람이 왜 좋을까 의문이 생긴다. 일종의 확인받고 싶은 마음일 수 도 있는 것이다. 그냥 너라서, 너를 사랑하는 거야. 이 책의 제목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일종의 답과 같은 부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너를 사랑하니 너도 날 사랑해달라는 다소 구원 섞인 말로 끝을 맺는다.
사랑의 보답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사랑을 받고 싶다는 오만이 생겨났다.
나는 내 욕망만 가지고 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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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해다오!
무슨 이유 떄문에?
나에게는 흔히 써먹는 지질하고
빈약한 이유밖에 없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이 책의 끝에서,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그가 나를
사랑해주길 바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감정들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음을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상처만 가득해서 시멘트처럼 굳어버린 내 마음에
균열이 되어도 괜찮은 너니까.
[김아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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