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도 걸렸겠다,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연휴를 보내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몸을 움직여 하는 일을 멈춘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머리가 하는 일’도 벌이지 않기로 다짐한 속내가 있었다. 연휴 마지막 날, 돌이켜보는 지난 쉼은 그러나 쉽지 않았다고 고백해야겠다. 누워있어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몸은 정지 상태였지만 머릿속에선 끊임없이 무언가 재생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수상한 나무들이 보낸 편지>를 읽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쉴 수 있었다. 한 번 보지도, 경험해보지도 못한 ‘수상한 나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그 시간엔 잠시 딴 세상으로 가는 여행길에 오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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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선사하는 즐거움을 아래 세 가지로 말할 수 있겠다.
첫째, 세실 감비니의 일러스트덕에 눈이 즐겁다. 단순히 나무 하나를 그린 그림이라기보다,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일러스트라 그런지 본문 내용을 그림을 보며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다. 표현 방법을 뜯어봐도 재밌다. 드로잉, 아기자기한 패턴과 다양한 텍스처와 콜라주가 더해진 그림은 시각적인 재미를 더한다.
셋째, 나무를 좋아하지만, ‘수상한 나무’까지는 알지 못했던 나 같은 사람은 머리까지 즐겁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그림책 같지만, 이 책은 과학책이기도 하다. 본문에는 나무의 이름 뿐 아니라 학명, 서식지, 왜 ‘수상한’ 특질을 띠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과학적 지식이 소개되어있다.
나는 모든 방향으로 마구 걸어 다니지는 못해요.
다만 바다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요.
- 걷는 나무
소재도 소재이지만, 중요한 건 ‘말하기 방식’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예를 들어, ‘걷는 나무’로 소개되는 ‘붉은 맹그로브(학명: Rhizophora mangle)’가 바닷가에서 뿌리를 내리는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처음엔 “바다를 향해 조금씩 나아간다”고 말하고 나서, 뒤이어 ‘뿌리에 진흙과 퇴적물이 끼어서 쌓이면, 습지는 점점 메마른 땅으로 변해서 뿌리도 함께 마르기 때문에 새로운 뿌리가 바닷물 쪽으로 뻗어서 자란다’는 과학적 사실을 설명했다. 나무의 별칭과 그림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에 관해 과학적 원리를 어렵지 않은 이야기로 말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이해가 잘 됐다.
이렇듯 과학 지식을 시적인 표현으로 풀어내는 문장이 눈에 띈다.
이렇게 나는 위에서 태어나
아래로 자랐답니다.
- 목졸라 나무
나는야 바닥을 기어가는 꼬마나무.
기어갈 뿐, 절대 꺾어지지 않지요.
- 꼬마 나무
진짜 폭탄이 터진 것은 아니에요.
내가 낸 소리일 뿐이에요.
- 다이너마이트 나무
덧붙여, 조금 귀찮을지 모르겠지만 나무의 학명을 구글링해서 이미지를 직접 찾아보면 어떨까. 책에 소개된 별칭이 재밌긴 하지만, 별칭만으로는 실제 나무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의외인 건 별칭이 아닌 한글로 된 나무 이름으로도, 사진 검색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도 학명이 같이 기재되어 있어 다행이었다.
사진을 찾아보니, 꾸며낸 것만 같은 이야기가 실제 사진을 보니 오히려 자연스레 떠올라 약간 충격을 받기도 했다. 예를 들어 '걷는' 나무 사진은, 누가 보더라도 나무가 걷고 있다는 생각을 떠올렸겠다는 이상한 확신이 들 정도였다. '유리병' 나무의 실제 모습은 진짜 유리병처럼 유연한 곡선이 놀라웠고, '무지개' 나무는 그림보다도 더 알록달록한 색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책을 보는 독자들도 그림과 사진 사이를 유영하며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재미를 꼭 맛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