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과 이별의 뮤지컬, < 오! 당신이 잠든 사이 > [공연]

시간을 때우러 갔다, 이번에도 나를 찾고 돌아오다
글 입력 2018.09.2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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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소통하고 사람을 위한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사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신청한 것은 어떤 위대한 작품성보다는 여가시간을 좀 더 특별하게 보내기 위해서였다. 시간을 아무 의미없게 보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인생이란 어떤 목적을 가진 행위들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나친 목표지향적인 성향을 가져서 그런가 쉬면서 시간을 잘 보내지 않는다. 요즘 들어서는 스스로에게 많이 여유로워져서 이런 저런 취미 생활을 가지며 쉬어가는 편이라 토요일 저녁을 최선을 다해 한가롭게 보내기 위해서 뮤지컬을 보게 되었다.

꽃님이라는, 환자복에 파란색의 체육복을 입은 아이와 의사선생님이 나와서 비상구의 위치를 알려주고 극의 시작을 알려주었다. 꽃님이라는 아이의 발성에 대단히 놀랐다. 작은 체구에서 쩌렁쩌렁 약간의 혀짧은 목소리가 명랑하게 울려퍼졌다. 아이와 의사선생님은 매우 장난스러운 몸동작으로 관객들과 소통했다. 마치 관객에게는 들리지 않는 숨겨진 박자라도 있는 것처럼 그들의 호흡은 잘 맞아떨어졌고, 안녕을 의미하는 손짓도 경쾌했다.

그리고, 주요인물들로 보이는 6명 남짓의 사람들이 나와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린 흉내만 잘 내는 줄 알았던 꽃님이가 힘차게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또 여기서 정말 놀라운 재능의 세상을 엿보았다.

대학교 1학년 때 스트릿댄스를 배웠던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아는 비보잉, 힙합 같은 춤인데, 음악에 맞춰서 선배들이 춤을 붙이고, 우리들은 그 춤을 연습해 오디션을 보고 무대에 올라 학교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나는 태생부터 엄청난 음치에 박치라서, 춤에는 재능이 정말 없었다. 아무리 노력형 인재라도 스포츠, 공부, 등의 영역은 남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음악은 그게 불가능한 영역이었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 사실 어떤 가사가 나올 때 어떤 동작을 취해야 하는데, 그걸 외우는 것도 힘들었으며 선배들과 같은 동작을 따라하는 것도 무척 힘들었다. 분명 같은 자세라고 따라하고는 있지만, 비보잉 선배들이 출 때는 멋있다고 느끼는 동작을 내가 추면 다들 귀엽다고만 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노력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재능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스트릿댄스를 그만두었지만 아직도 음악과 춤 등에 대한 동경이 강하게 남아있어서 그런 재능을 보면 무척 감탄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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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tv에 나오기로 했던 환자 최병호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병원장인 베드로는 최병호의 병실로 찾아가서 봉사자와 다른 환자들에게 이것저것 캐물어보지만, 환자들은 쉽게 무언가를 말해주지 않는다. 등장하는 각각의 주인공들의 목소리가 담긴 뮤지컬들이 극의 중간중간 진행되면서 그들의 상처를 한가지씩 보여주며 서서히 이야기의 막이 드러난다.

치매 환자 할머니의 연기는 정말 놀라웠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뮤지컬로 나타나기 전, 회상 장면에서 할머니의 흰색 파마 머리 가발을 벗으니 완전 어린 얼굴이 나와서 놀랐다. 저 아이가 할머니 연기를 한 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할머니일 때와 자신의 본 모습일 때 가발만 다를 뿐이지 전혀 다를 것 없는 얼굴인데도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없었다. 한 우편부와 사랑에 빠졌지만 전쟁터로 간 남편을 기다리며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모습이 참 가슴에 와닿았다. 우편부와 돌다리를 건너가며 서로의 손을 잡고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귀여웠다. 아무런 장식도 없었지만 그들의 부끄러움과 설렘이 이까지 전달되어왔다. 그러나, 곧 할머니의 남편이 등장했고 분위기는 반전된다. 무대의 조명과 주인공의 고함 소리가 울러펴졌다. 우편부와 사랑의 도망을 갔지만 우편부는 또 물에 빠져죽고 할머니 혼자만 살아남는 그런 이야기. 할머니의 삶은 사랑과 그 상실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살아생전 수많은 이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이가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이 얼마 전 뉴스로 나왔다.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찬 삶이 치매로 잊혀진다면 그것은 분명 슬픈 일이지만, 평생을 다른 사람을 괴롭게 했던 사람이 그 기억을 잃어버리다니. 어떻게 인생은 그토록 결말이 똑같을 수가 있을까. 그 사람은 자기가 다른 이들을 고통스럽게 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그는 그 기억을 잊고 싶었을까?

사실 치매 환자는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초기에만 인식하고, 나중에 갈수록 아무것도 모르게 되어 가장 힘든 것은 본인보다는 그 주변 사람들이다.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 자신이 잊혀지는 사실이 제일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괴롭게해서 그 사람을 증오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람이 너를 괴롭혔다는 사실을 다 잊어버렸다는 것을 알려준다면 또 가장 괴로운 것은 피해자들이다. 일반적인 질병이 병이 걸린 본인을 괴롭히는 것에 반해서 치매란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서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빼앗아가는 정말 고통스러운 질병이다. 다른 병들과는 다르게, 병이 걸린 주변 사람들이 더 고통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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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걸로 일했던 옆자리의 아줌마의 과거 이야기도, 봉사자의 과거 이야기도 흥미롭게 들었다. 인생은 어쩌면 사랑과 그 상실로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사랑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토록 인생에서 생생한 감각에 집중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토록 미치도록 살아있는 순간이 없을 것이기도 하다.

쇼걸 아줌마의 과거 뮤지컬이 나올 때의 서비스 장면들도 굉장했다. 병원 옷만을 입고 있던 환자들과 봉사자가 완전히 파격적인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대중 뮤지컬의 특성상 그런 장면이 하나쯤은 등장하겠다 예상은 했지만 공연 중간에 직접 마주하는 그 장면에서 나 역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환자 옷을 입고 연기를 하던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의 다른 모습. '연기'라는 장르, 직업이 매력적인 이유는 어쩌면 그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영혼이 담겨있는 듯한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진실되다고 착각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또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는 그 사람을 발견한다. 뻔히 다 알 수 있는 사람보다는 알기가 전혀 힘든 사람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연예인의 사생활을 그토록 궁금해한다. 우리가 보지 않는 곳에서 그 사람은 어떤 사람과 어떤 표정으로 어떤 행동을 할 지를 궁금해한다.

나도 친해지고 싶은 애가 있었다. 하지만 그 애는 끝까지 내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물어보면 많은 것을 말해주면서, 아무와도 어색하게 지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속깊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언젠가 한번 술자리에서 자기도 친해지고는 싶은데, 어린 시절부터 전학을 계속 다녀와서 친해질 수가 없는 게 습관이 되었다며 더 깊은 얘기는 해주지 않고 울기만 했다. 다른 친구들이 그 애와 여행을 가자고 약속을 잡았는데 그 친구는 여행가기 직전까지 잠수를 탔다. 왜 그랬냐고 묻는 다른 친구들의 말에, 그 친구는 아무 말도, 변명도 하지 않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그 친구는 왜 그랬을까. 3년을 노력했지만 친해지지 못해 우리들은 그 애를 포기했다. 그냥 얼굴만 알고 그럴듯한 이야기만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애는 남자친구가 생겼다. 남자친구에게 그 애는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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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스토리의 중요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를 싫어하는 분이라면 나가주시길 바란다.

꽃님이의 역할이 단순히 환자만은 아닐 거라 예상했던 게 맞았다. 아, 꽃님이라는 환자 자체를 말한 건 아니고 그 연기를 하는 배우를 말했다. 연기력도 뛰어나고 춤도 잘 춰서 분명 메인 주인공일 거라 생각했는데 꽃님이 역할은 그냥 봉사자를 괴롭게 하는 환자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1인 2역으로, 최병호의 딸 역할로 tv에서 최병호를 보고 봉사를 하기 위해 찾아온 봉사자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쓰고 배게에 숨겨둔 편지를 하나하나 찾아 읽으며, 어둡고 지독하게 슬픈 노래를 시작할 때, 그 노래를 멀리서 최병호가 받아줄 때. 그리고 감정에 지나치지 않게 무뚝뚝하게 병실에서 아버지를 마주하던 순간. 감정이 절제되어 있지만, 그 감정을 관객들이 다 알아차리는 그 엄청난 연기에 감탄했다. 그리고 최병호가 쓰러져서 다리를 움직이지 못할 때, 딸에게 미안하다고 수도 없이 외치는 그의 목소리와, 아버지를 때리며 우는 딸의 모습이 너무나 가슴 속에 아련하게 들어와 박혀버렸다. 고함만 잘 지르는 줄 알았던 최병호 역 연기자는 우는 연기도 너무 가슴 찢어지게 잘했다. 곧 극장 속은 콧물을 마시는 소리로 가득찼다.

사람들을 울게 하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간의 이별, 부모자식간의 이별, 싸움과 화해 등. 그리고 보통은 그 요소, 주제를 활용하여 울게 하는데 정말 엄청난 연기가 더해지면 그런 구질구질한 요소로 울음을 짜내게 한다는 생각마저 없어진다. 마치 눈 앞에서 펼쳐지는 모습이 진짜 현실같아 저절로 공감하게 되고 눈물이 그냥 떨어지게 된다.

옆에서 둘의 사연을 듣고 있던 할머니와 알코올 중독자 아줌마, 그리고 의사선생님은 딸과 최병호의 탈출을 도와준다. 결국 최병호의 탈출은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었다. 정말 상상도 못한 공범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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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뮤지컬, 공연은 무척이나 신선하고 경쾌했다. 중간중간 의사선생님이 아주 유쾌한 소년과 매력남으로 변신해서 편지를 전달해주거나, 장미를 선물해주기도 했다. 이야기가 진행되고 다른 극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해주고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관객들의 참여도 유도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남자분에게도 귀엽다, 뭐 사랑한다 따위의 말을 해서 관객들을 웃기고는 했다.

우습게도 처음에, 봉사자의 머리에 왜 저런 수술같은 걸 달아놨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나중에 다른 배우들에게도 달려있는 걸 발견하고 마이크라는 걸 알아차리긴 했는데, 왜 여자들에게만 마이크를 달아뒀지? 궁금증에 휩싸였다. 그래서 남자들은 전화기를 사용할 때 노래를 부르던데 전화기가 마이크인가? 추측했는데 사실 앞머리에 가려서 안 보이는 거지 마이크가 다 이마를 통해서 달려있었다. 일반적으로 상의 앞에다가 마이크를 달던데 왜 이 공연은 이마에다 달아놓은걸까 그것도 궁금했는데, 과거 회상 장면도 있고 서비스신도 있어 옷을 여러번 벗고 갈아입어야 하니 그냥 얼굴에다 부착한 것 같았다.

단순히 시간을 때우려 보러 간 뮤지컬인데 예상 외로 엄청나게 휩싸이고 돌아와버렸다. 때론 너무 심오한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 있을만한 일에도 의외의 것을 얻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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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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