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페미니스트 작가 신중선, 제 발로 찾아온 작가의 삶

글 입력 2018.09.18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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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언니가, 엄마가, 할머니가 걸어온 길 여성이라서 강요받는 침묵에 주목했다


"아버지는 그저 책을 많이 사왔지. 퇴근길에 직접 들고 오기도 하고 더러는 집으로 배달되어 올 때도 있었다. 거의 다 전집류이거나 시리즈물이었다. 아버지는 왜 그렇게 많은 책을 구매하게 되었는지, 엄마는 성화는 물론이었고…. 그리고 어찌하여 낱권은 사지 않았을까?"

정이 많던 시골 면장을 하시던 아버지는 그렇게 지인들 권유에 못 이겨 책을 사오곤 했다. 그러니 원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신중선 작가의 소녀시절은 그랬다. 그러면서 '여성'이란 존재에 눈을 떴다. 나이 예순을 훌쩍 넘긴 중견 작가 신중선은 조용하면서도 옹골찬 페미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특한 소재를 찾아내 엮어내는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소문나있다.

특히 여성이란 존재를 드러내 평등주의를 추구하는 운동가라는 이미지는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렇지만 결코 남앞에 나선 적이 없다. 차분하면서도 현실에 조응하는 그의 성격 때문인가. 우리 사회 소외된 존재를 향해 예리한 시선으로 써내는 글재주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나의 삶 나의길'이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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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선 작가는 인터뷰에서
"페미니즘 소설들을 통해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하나다.
가족이라는 친밀한 관계 안에서 생겨나는
생채기를 낱낱이 들여다보자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난해 '미투운동'으로 한국 문단은 또 한번 홍역을 치렀다. 독자들은 낯 뜨거운 진흙탕 싸움이라며 혀를 찼다. 실망한 독자들의 외면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신중선 작가를 만났다. 인터뷰는 2시간여 이어졌다.

"우리 언니가, 엄마가, 할머니께서 걸어온 그 길을 나도 똑같이 걸어왔다. 사실 그동안 많은 여성 작가들이 써온 숱한 소설도 그런 사상이 다분히 들어 있다. 다만 과거에는 그 소설들을 그저 하나의 서사로만 인지했지 그것을 가지고 아무도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신 작가의 테마 가운데 여성과 함께 가족이 자주 등장한다. 최근 출간한 소설집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내일의 문학)』도 여성과 가족을 차원 높게 버무려낸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소설은 여자와 남자가 엄마와 아버지, 자식이라는 위계적 역할 속에서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가를 치밀하게 추적해 내면서 가족 판타지를 망치질하고 있다. 소설의 끝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손쉬운 해피엔딩이 아니다. 대신 무거운 질문다발을 안기며 우리 사회의 근간을 다시 직조해내길 요청하고 있다.

신 작가에게 가족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평범하지만 의미 담긴 답이 돌아왔다.

"이번 소설집의 한 대목을 들어 풀이한다. 단편 '묘화는 행복할까'에 이런 게 있다. 묘화가 화자인 '나'에게 묻는다. '가족이 뭐라고 생각하니?'라고. 그러곤 자문자답한다. '세상이 버린다 해도 끝까지 나를 지켜줄 보루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라고. 이 소설에서 묘화는 굉장히 불행한 환경에 처해 있는 소녀로 등장하는데, 나는 묘화의 입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짚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나를 지켜줄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가족 중 누군가를 매몰차게 버리고 심지어는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가족은, 가족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되는데…."

신 작가의 낮은 목소리 톤이 점점 높아갔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하나였다. 가족이라는 친밀한 관계 안에서 생겨나는 생채기를 낱낱이 들여다보자는 거. 특히 한국이라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부당한 대우, 여성이라서 강요받아야 했던 침묵 같은 것에 나는 주목해왔다. 더러는 잔혹하게 더러는 슬프고 애잔하게 그렸다. 독자들은 이런 유의 소설이 읽기에 편치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우리의 얘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직장 여성 위에 놓여 있는 보이지 않는 가로막을 가리켜 '유리천장'이라고 한다. '솔직히 여성의 능력이 부족한가, 아니면 여성적 리더십이 불필요해서인가?' 누가 뭐래도 우리는 아직 남성 지배사회임은 분명하다.

'페미니즘이라는 말로 포장해 칸막이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기자 물음에 신 작가는 한마디로 답했다.

"페미니즘이란,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를 말한다. 페미니스트란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페미니스트들이 바라는 건 단지 여성이라는 성별 때문에 차별당하지 않는 세상을 살고 싶은 것이지 남녀를 차별하려는 게 아니다. 남녀가 동등한 세상에서 살고 싶은 것, 그것이 여성들이 바라는 삶이다."

왜 '소설가가 되었는가'라는 물음에 신 작가는 의외로 단순한 답변을 했다.

"내가 택했다기보다는 소설이 제 발로 찾아왔다고 하는 게 맞지 싶다. 젊은날 내 꿈은 일관되게 기자였다.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시험에 수없이 낙방했다. 포기하고 시름에 잠겨 있던 차 어떤 월간지 기자로 채용됐다. 그것이 내겐 기회였다. 수습기간 뭐 이런 것도 없이 바로 기자가 되어 맘껏 쓸 수 있었으니까. 르포도 쓰고 신간 다이제스트도 하고 연극이나 영화 리뷰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그냥 막 아무거나 다 시키더라. 초짜임에도 이상하게 그 모든 일이 크게 낯설지 않았다. 혹시 어려서 읽었던 책들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하루 부장이 심각하게 권했다. "너 이러지 말고 소설을 써보면 어떻겠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던 거라 깜짝 놀랐지만 그때부터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던 기억이 난다. 소설가라니! 내가? 뭐 이런 기분이었을 거다. 이후 소설이란 명제가 내게서 떠날 줄을 몰랐다."

신 작가에게 현학적 미사여구는 불필요하다. 쿨하면서도 명료한 그의 삶이 그대로 작품으로 그려진다.

"나는 문단에서 특별히 활동하지 않고 있다. 그게 뭐 대수인가. 쓸모없는 일이다. 그저 쓰는 게 좋아서, 소설이 좋아서, 다작은 아니지만 꾸준히 쓰고 있다. 그런데 소설밖에 모르던 내가 한 2년 전 가슴 떨리도록 기쁜 일 하나 발견했다. 그림 그리는 일이다. 일러스트 작업…. 나는 조그만 빌라에 살고 있는데 빌라 마당에 어슬렁대는 길고양이를 먼저 그리기 시작했다. 길 생활을 해야 하는 고양이를 볼 때마다 어쩐지 슬프고, 어쩐지 가여웠다. 그러다 드로잉북을 손에 쥐게 되었다. 무수히 그렸다. 그것이 좀 더 발전하여 지금은 간단한 인물도 그리고 있다. 그림 그리는 일이 너무 좋아서 이따금 혼자 슬며시 웃기도 한다. 그러니까 난 아마추어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것이다. 현재 ‘문학나무’라는 문예지에 짧은 인물소설을 일러스트와 함께 연재하는 중이다. 그동안 이상, 김동인 등 한국 작가와 오윤, 바스키아 등의 미술가, 재니스 조플린, 데이비드 보위 등의 뮤지션 그리고 박진영이나 이병헌 같은 한국 연예인도 그리고 썼다. 문예지 측에서 최대한으로 자유를 주기 때문에 아주 재미나게 하고 있다. 아마 내년 초쯤 글과 그림이 있는 단행본으로 낼 거 같다."

신 작가가 바라는 사회는 어떤 세상일까 다소 애매한 기자의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다.

"내가 쓰는 것들은 성을 떠나 남녀 모두 동등하게 책임지고, 평등하게 의무를 다하고,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꿈꾸면서 쓴 소설들이다. '여자라서' 행복한 게 아니고 또한 '남자라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 남녀 모두 하나의 인간으로서 다 같이 공평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 작가는 자신의 페미니즘 소설에 어떤 ‘운명’ 같은 게 작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작가들은 흔히 책에도 운명이 있다고 말하곤 한다. 나는 그 어떤 언질도 없이 원고를 넘겼다. 이번에 낸 소설집에는 동네 아저씨에 의한 아동성폭행이 나오고 가사와 육아에 지친 주부가 나오고 아들선호사상 때문에 피해를 입어야 하는 딸이 등장하는데, 원고가 출판사로 넘어가서 에디터가 검토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미투운동이 벌어졌다. 눈 밝고 유능한 그 에디터는 소설의 성격을 대뜸 간파했을 것이다.(출판저널 정윤희 대표를 지칭) 여성과 남성은 적이 아니다. 우리 여성들이 원하는 건 바로 이것이다. 우리, 다같이, 행복하자고…."

'소설가로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신 작가는 결론처럼 답을 냈다.

"소설이란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을 상상해서 풀어내는 것이다. 백인백색의 사람에게 비쳐지고 해석되는 것에 그 묘미가 있다. 사실 저자가 자신 소설에 대해 설명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독자들이 각각의 몫만큼만 읽어내면 되니까."


인터뷰 및 글/ 세계일보 정승욱 선임기자
사진 및 글/ 세계일보 이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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