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angle] Episode 5. 멍때리는 이야기

정원과 여름
글 입력 2018.09.1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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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마지막 에피소드


*


정원과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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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angle}
Episode 5. 멍때리는 이야기



[6월 23일]

한 열흘 지났나
마지막으로 이걸 잡고 있던 게.

겨우 그 바쁜 시기를 마무리하고, 내 집, 내 이불 속에 쏟아져 버리고 하루 이틀을 더 고여 있었다. 정신 차리니까 찾아온 여름 공기에 눅눅해진 이불 내음을 진정제 삼아 뒹굴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내가 정말 지쳤구나 싶었다. 11일에 겨우 끄적인 것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나를 잊고 살았다. 나를 찾는 것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지쳐서 그냥 살았다. 겨우 기억이 닿는 마무리 이후부터 계속 그대로 수면에 미동조차 일지 않는 안쓰러운 웅덩이로 고여 있었다. 모든 곳이 무겁고 축축해서 몸에 이끼가 잔뜩 껴버렸다. 팔 하나 들기도 너무 무겁다. 그래서 굴러다녔다.

그리고 오늘, 습관이 무섭다. 할일 하나 있다고 데굴데굴 굴러서 집 근처 카페까지 왔다. 굴러오면서 이끼가 좀 떨어졌는데 동시에 나를 좀 많이 흘린 것 같다. 나는 나와 놓고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


나를 괴롭히던 일들이
정말 잔인했던 건지

그냥 내가 보잘것없는
한낱 약한 사람인건지


나는 항상 후자였지만 이제는 그 중간까지 나아왔다. 아마 이 글과 그림을 시작한 게 그 나아옴의 시작이었고. 약한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나를 채찍질 할 일이었나 질문까지 떠올리기도 한다. 그래 내가 좀 약할 수도 있지. 그렇지 않을까. 아닌가.


정말 놀라운 변화다.

아무도 모르는 변화를 발견하고 혼자 기뻐한다. 여전히 안개 속에서 혼자 즐거워하고 있다. 아, 아마 혼자가 아니지. 이 글을 읽는 누군가를 위해 작은 창문 하나 안개에 두고 있다. 이 창문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잘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창문이 얼마나 큰지, 깨끗한지 나도 모르겠어서.

아니 그러니까, 내가 또 다시 카페까지 와서 안쓰럽게 고이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멍 하니 벽에 기대서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방황하고 있다가, 시선이 허공에 떠다니는 것조차 귀찮아서 겨우 시선을 화면에 옮기고 지금 이러고 있다. 뭐라도 쓰자며.

사실 요즘은 맨날 그래서 지금은 함께 흐르고 있는 글과 그림들보다 무책임하게 탄생시킨, 글이라기엔 부끄러운 일기 조각들만 곳곳에 싹을 틔우고 있었다. 물도 주고 바라봐 주고 햇빛도 쬐어 주고 그래야 잘 자랄 텐데, 지금 나는 또 다시 무책임하게 글을 하나 탄생시키고 있다. 이 글이 어떤 에피소드에 자리 잡을지, 아님 새로운 에피소드의 시작이 될지, 아님 그냥 이렇게 버려질지 나는 모르겠다.

그렇게 '나' 어딘가의 방 안이 자라지 못한 새싹들로 가득 찼다. 그래서 내가 어린 풀냄새만 겨우 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몇 자 적었다고, 조금 정신 차렸다고 믿어보고 방치되어있는 새싹 하나 찾아보기로 한다.



[6월 25일]

내가 또 이 글에 찾아온 건 '멍때리고' 있다는 걸 증명한다. 이러다가 정말 하나의 에피소드가 될 것 같다. 이 '멍때리기만' 하는 글이 말이다. 가끔은 내가 정말 너무한 글을 쓰고 있나 싶기도 하다. 맨날 이런 식이다. 생각이 굳은 채 나아가려고 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도 싫다. 어쩌면 나의 억지고 욕심이다. 어린 풀냄새만 겨우 나는 사람일 거라는 이틀 전에 쓴 표현이 정말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서툴다, 내가 피워낸 새싹 하나를 파릇파릇하게 완성 시키는 것이. 그래도 이미 완성하고 완연한 모습을 햇빛 아래에서 자아내고 있는 겨우 몇 개의 꽃들을 보면 그게 좋다고 계속 나는 거기에 머무는 것이다. 새싹을 보다 모르겠으면 이미 피워낸 꽃을 보며, 그러다 뭔가 힘이 나면 다시 새싹에게 돌아가 어설프기 짝이 없는 손길로 햇빛을 주워 담고 물을 줘보며 보듬는다.

머릿속에 정원 하나가 지어진다.
정원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작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


[6월 27일]

와. 여름이다.

생각하기를 그만 두게 하는 묘한 더위에도 괜히 관심이 간다. 여름에 안긴 기분이다. 계속 눈이 감긴다. 기분 좋게. 지나친 여름의 온기에 한숨이 나오기 시작하면 미리 준비한 차가운 물을 입에 담으면 된다. 그렇게 다시 여름에 안기고, 그렇게 애증스러운 여름과의 포옹이 이어진다.

물 컵에 맺혀있던 찬 이슬이 잔뜩 손에 묻었다
그 손으로 여름을 쓰다듬는다.
너는 덥지도 않니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

음음
너는 너고 나는 나인데.


*

발을 휘적이니 나뭇잎이 나를 간지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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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

안녕, 이 글아.
나는 또 ‘멍때리러’ 왔단다.

누구에게 인사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쓰니까 ‘멍때릴려고’ 작정하고 온 사람 같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특이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있잖아 딱 느껴져, 글의 말투가 바뀌고 있다는 게. 나만 그런가.
약간 지금 변화의 시간을 걷고 있는 것 같아. 음..., 그런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쓰면서 그림을 그리니까 내가 변화하는 과정에 더 오래 머물 수 있게 된 것 같아. 항상 변화는 한참 후에나 알았던 내가, 이제는 조금 더 선명하게 나의 변화가 보여.
       
근데 이런 생각이 드는데 왜 무섭다는 말이 생각난 걸까. "무섭다". 그래놓고 "아닌가, 좋은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 근데 "무섭다'"에는 붙지 않던 물음표가 "좋은 거"에는 붙는 거야. 왜 그럴까. 지금까지 몰랐는데 변화를 선명히 본다는 게 무서운 것이었을까, 너무 많은 걸 바로 안다는 게 무서운 것이었던 걸까, 아님 그저 이런 기분이 처음이라 그렇게 느낀 걸까.

이 글을 올릴 때 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있을 미래의 너는 알고 있을까.


*


그래, 나는 한 명이잖아.
한 명이지.
한 명이야.
너무 당연해.
근데 나는 아닌 것 같아.
미안, 모순이 취향이라
당연하다고 해놓고 아니라고 해버렸네.


현실적인 이야기는 재미없지만, 이 글과 그림을 연재한지 세 달이 지났고, 이 글과 그림을 시작한지는 네 달이 지났다고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이 한 달이라는 평범한 간격이 내게 준 건 지금 보니 엄청난 것이었어. 나는 지금 과거의 내가 쓴 글을 마무리하고, 지금의 나는 당연하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이 글의 마무리도 미래의 내가 해주겠지? 기분이 이상한거야. 결국 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건 나인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지금과는 다른 모습인 과거의 글들을 살펴보고 있으니까 과거, 현재, 미래의 내가 더 선명하게 따로 분리되는 기분이 들어. 타인 아닌 타인 같은 거랄까.

그래서 지금 나의 변화가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는 걸 거야. 아마도.

사실 지금 쓰는 글이 과거의 내가 쓴 글과 지금 쓰고 있는 글의 차이가 갈수록 선명하게 느껴져서 약간 해명 아닌 해명인 글로 쓰고 있는데, 이 글마저 미래의 나의 손을 거쳐서 세상에 보이겠네. 뭔가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듬어주는 기분이야. 보살핌 받는 느낌? 이랄까. 7월에 쓰는 해명(아닌 해명)을 9월, 10월 즈음에나 공개하게 되다니! 제 때에 올리지 못하는 이 글이 과연 해명일까. 이상해. 근데 이상한 이게 좋기도 해. 이런 간격 사이에서 나도 내가 흥미롭게 느껴져서. 그래서 내가 모순인가 봐.

아 그리고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가장 사랑스러운 글이 완성됐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 삼일 동안 썼는데 여섯 편이야. 정말 많이 썼지, 특별한 에피소드로 따로 올리기로 했어. 이름은 아직 안 지었고, 아주 사랑스러운 글이야. 지금의 나는 그런 생각이 드네. 이 글을 마지막으로 수정하는 너는 어떤 생각일지는 모르겠어. 어쨌든 아마 지금 계획대로라면 이 글 다음부터 연재할 것 같아.

생각해보니 여섯 편이면 거의 두세 달 동안 그 글을 올린다는 거잖아, 가을 내내 여름 이야기를 해야 한다니. 사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이 '특별한 에피소드'를 올리고 싶었어. 근데 안 돼. 왜냐하면 그 이전 글을 만나지 않으면 이 '특별한 에피소드'들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거든. 너무 불친절함에서 조금 불친절함이 되길 바라는 말도 안 되는 바람이랄까. 나는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데, 이 글을 만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마음이 조마조마해. 미래의 나도 내 글을 어떻게 봐줄지도 조마조마 하고.

그런 마음이야 지금.



[7월 22일]

이쯤 되면 특기가 ‘멍때리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에피소드를 네 편 끝낸 것 치고는 (물론 지금의 나는 그 글을 다 올리지 않은 시점이지만) 네 달이나 흘렀고, 요즘은 다시 혼란스럽다. 그래서 글을 쓰고 정리하는 걸 잠시 멈춘 상태다. 겨우 미리 완연하게 자라난 글들이 썩지 않게 미약한 온기일 수 있으나 시선을 쬐어 주고 있다. 그것마저도 안하면 내 정원이 시들어버릴 것 같았다.

겨우, 겨우, 겨우. 지겨운 말이지만 어쩌면 모든 나의 모습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슬픈 걸까.

그런 중에 겨우 내가 한 일은 이 정원의 시작이었던 글을 읽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표현해버리면 내 초심이란 것이 어땠는지 궁금했다. 사실 나의 한계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도 한 몫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쓴 글들을 보면 이 글들의 타이틀인 Untangle이라는 말의 의미가 얼마나 작용하고 있는지 의심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에 읽어보고 싶었다.




여기서 많은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아무렇게나 안개 속에 뒹굴면서 '나'라는 맥락에 맞춰 걷고 있는 내가 신기하다는 작은 놀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에도 이 길만은 어떻게든 돌아오게 되는 걸까. 아마 원래 그래왔던 것을 이제야 겨우 안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Untangle이라는 이름에 대한 의심. 사실 지금 나를 보면 엉킨 걸 풀기는커녕 그게 뭔지 살펴보는 걸 더 즐기는 것 같다는 것이다. 푸는 게 의미가 있는 걸까, 라며 사실 몇 개는 엉킨 상태로 그냥 두고 싶다. 아니면 이게 나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더 애매하게 정의를 내려 볼까. 풀 다 마는 걸 즐기는 것 같다. 아껴뒀다가 나중에 풀어야지! 이러면서. 이유가 따로 있기 보다는 나는 그런 사람인 것 같았다. 생각보다 더 애매하길 그렇게 자처해 버린 사람.
 
그렇게 글의 처음에서도 나를 소개한 '모호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여전할 것 같다. 어쩌면 더 중심이 될 것 같다. 아니면 이게 나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아니, 한계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의미다. '한계'라는 단어를 나의 세계관에서도 부정적인 의미로 상징될지는 아마 내가 또 풀어야 할 숙제인 것 같다.

나는 모호하고 싶다. 남들이 나를 함부로 판단할 수 없도록. 그게 나의 세계를 지키는 방법인 것 같다는 생각을 그냥 늘 해왔었다. 너무 방어적인 자세라고 썩 기분 좋지 않은 생각도 들지만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인 것을 무작정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고 싶다. 한편으로는 모호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무너지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되길 바라는 나의 소망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나도 상대를 함부로 판단할 수 없음을 늘 기억하고 싶은 소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도 안다, 온갖 의견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자신의 선명한 입장 없이 사는 사람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건 '세상을 살고 있는 나'가 계속 해서 지어갈 것이다. 나는 이 세계에 대한 지도를 그려야 하는 의무를 맡았을 뿐이다. 나의 의무는 중요하다. 세상을 살고 있는 '나'는 내가 없으면 죽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선명해질수록 나는 또 궁금해진다. 나를 언제까지 말도 안 되는 애매한 경계들로 분리하고 있을 것인지. 지금 이 질문은 그대로 남겨두기로 한다.


음, 유리 조각이 쌓인 언덕 같은 글이 돼 버렸다.



[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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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d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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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
 
안녕

'7월 15일의 나'야,
내가 너의 글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 봤는데,
아마 그게 '성장'이란 건가봐.

무서운데 좋은 거라고
괜히 물음표 달아보게 되는 게 성장인가 봐.

너는 자라난 거야.
햇빛과 물을 먹고 성장한 거야.
그래도 여전히 작은 새싹아.


***


[9월 3일]

'정답'

그거 사실 되게 도박 같은 말 아닐까
잘 생각해봐,
너의 '한계'라는 그것이 정말 어떤 것인지.

너는 '정답'이란 게 빼곡히 뒤쪽에 숨어있는 재미없는 문제집도 아니니까.
막연히 부풀어버린 온갖 까슬한 솜뭉치들이 숨 막히게 담겨버린 유리병이 네게 더 어울리니까. 뚜껑을 열 생각을 도통 하지 않는, 유리병. 솜뭉치, 안개인가, 구름인가.


*


[9월 14일]

음음음
왜 이렇게 내게
질문을 많이 남긴 거야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하지 않을게
근데 꽤 잘해온 것 같아
시작부터 지금까지

모호하고 안개뿐이네

잘했어


*


사실 나는 너를 마무리하는 것도 처음이야
이제 이런 것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다 됐구나.
아니 좀 덜 된 것 같기도 하고.



*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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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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