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 불친절은 의도한 것이었나요

연극 < 이방인 > 리뷰
글 입력 2018.09.0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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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심 기대가 컸던 작품이다. 원작 이방인은 예전부터 워낙 좋아하는 소설이었고, 거기에 좋은 작품과 연기로 각각 깊은 인상을 남겼던 극단 산울림과 전박찬 배우의 조합이 더해져 나를 설레게 했다. 소설을 연극으로 각색하는 것에 으레 수반되는 걱정이 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이 조합은 실패할 수 없다는 작은 확신을 갖고 극장을 찾았다. 그러나 극이 끝나고 내게 남은 것은 커다란 물음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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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재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연기는 다섯 명의 배우 모두 흠잡을 데 없었다고 생각한다. 무심하면서도 어딘가 순수한 면을 가진 주인공 뫼르소를 제대로 표현해 낸 전박찬 배우뿐만 아니라, 1인 다역을 연기하며 극 중 인물을 풍부하게 만들어 준 강주희, 정나진, 박윤석, 문병주 배우 역시 훌륭했다. 여러 명을 연기하지만 인물 간의 혼동이 전혀 없을 정도로 각 캐릭터의 특징을 뚜렷하고 능숙하게 연기하는 모습에 감탄과 존경심마저 들었다.

또한 조명이나 음향 등의 무대 장치도 훌륭했다. 원형의 동선에 높이 차를 두어 다양한 공간을 표현해 낸 무대 구성부터 마음에 들었다. 절제된 비애가 느껴지는 기타 선율도 극의 분위기와 잘 맞아들었다. 무엇보다도 이 극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조명 활용은 내 기대를 그대로 채워주었다. 쏟아지는 햇살, 긴장감 가득한 연못가, 새벽 감옥에서의 푸른 빛 등 각 공간에서의 실제조명 뿐만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와 기분까지도 조명 하나만으로 표현해냈다. 특히 중요 장면에서는 안개 장치를 함께 사용하여 숨을 옥죄는 햇빛의 답답함을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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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좋은 재료들을 요리하는 방식에 있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극을 관통하는 주인공의 독백. 이 극에서 양적으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이자, 그만큼 나를 괴롭게 만든 요소이기도 하다. 극 중 뫼르소의 독백은 거의 다 원작 소설의 문구를 그대로 따라가는데, 시종일관 어색함을 주된 포인트로 삼았다.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말하자면 ‘국어책 읽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단조로운 톤이었다. 다른 인물과 대화를 주고받을 때도 주인공의 말투만 굉장히 기계적이라 혼자 튀었다. 배우의 연기력은 믿어 의심치 않으므로, 이 어색함은 의도된 연출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아마 뫼르소를 정말 이방인답게 그리기 위해 일부러 어색한 연기를 요청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의도까지는 좋았지만, 실제로 그 의도가 성취되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소설의 문장을 그대로, 그것도 매우 단조로운 톤의 독백으로 옮기다 보니 때때로 그냥 책읽어주는 라디오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이럴 거면 소설을 읽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지 않나 싶기까지 했다. 그 딱딱한 독백이 끝나자마자 이어지는 인물 간의 대화는 또 너무나 자연스러운 연기라서 앞선 독백과 부자연스럽게 충돌했다. 그 때문에 연극 전체의 분위기가 종잡을 수 없이 극과 극을 오가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더없이 무미건조하다가도 갑자기 긴장감이 넘치고, 경직되다가 갑자기 부드러워지고, 사이코패스처럼 무심하다가도 한 순간 두려워하고 분노한다. 의도된 어색함과 무심함이 연극만의 극적이고 감정적인 요소들과 강한 마찰을 일으켰다.

그나마 나는 원작을 읽어보았기에 좀 나았다. 원작 소설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쩌면 불친절한 연극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나와 같이 보러 갔던 사람은 소설을 안 읽어봤다고 하는데, 극 중 계속해서 이어지는 독백이 오히려 집중력을 떨어뜨렸다고 말했다. 원작의 문장들이 에세이처럼 쉽게 읽히는 평이한 문장들도 아니고, 생각보다 묘사와 비유와 추상이 많은 그 문장들을 그대로 대사로 옮기다보니 처음 이방인을 접하는 사람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원작의 문장들에 감명이 깊었던 사람에게는 그 독백이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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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아니었나 싶다. 원작의 독특한 무심함을 살리면서, 연극이라는 장르 특유의 극적인 성격도 지키고 싶었던 욕심. 원작의 좋은 문장들을 변형 없이 전달하면서도 인물의 현실감도 더하고 싶었던 욕심. 한편으로는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과장되고 감정적일 수밖에 없는 연극이라는 장르가, 소설 전반에 짙게 깔려있는 무심함이라는 정서와 충돌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주인공이 때로는 원작처럼 무감각한 인물이다가도 어느 순간 ‘보통의’ 인간처럼 감정을 표출하는 그런 모순성을 보이는 것 아니었을까. 원작의 독보적인 무감각함을 사랑하던 나로서는 이 극의 자연스럽지만 부자연스러운 인간미가 아쉽기만 했다.

모든 당연한 것들과 자연스러운 것들에 대해, 단 하나의 진리인 ‘죽음’의 이름으로 거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소설 이방인. 생각할 거리도 이야기할 거리도 많은 이 소설을 연극으로 재탄생시킨 극단 산울림의 시도는 좋았다고 본다. 어쩌면 ‘고도를 기다리며’를 잇는 극단의 대표작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런저런 아쉬운 부분들이 나의 마음에 걸린다. 이것이 연극의 필연적인 한계인지, 아니면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될 여지가 있는지를 판단할 능력까지는 내게 없는 듯하니, 무책임하게도 이는 극단의 몫으로 돌리면서 다음 이방인 공연에 대한 작은 기대도 함께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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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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