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의 육면체에 누군가를 들인다는 것 [공연]

우리는 그렇게 성장해간다.
글 입력 2018.08.30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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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은 한 마디로 주인공 소녀 ‘덕’의 성장스토리이다. 다른 사람이 내민 손을 잡고 세상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덕을 보여주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연극이 성장시키는 것이 비단 ‘덕’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연극은 내가 아직 어리다는 것을 깨닫게 했으며, 하여 ‘어른’이라는 어려운 개념에 한 걸음 다가갈 방법을 고민하게 했다.
 
 
 
우리는 다함께 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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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인간이 세상과 만나는 여러 개의 ‘면’을 6개의 면으로 간소화시켜 생각했고, 주변 세상과 만나면서 살아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육면체'로 보았다.

이러한 주변 대상들의 무쌍한 변화 속에서 '한 인간'은 '혼자, 한 몸뚱아리로' 지구상에 서있다.

- 각색/연출 임지민

 
무대가 정육면체 구조로 설계된 데에는 임지민 감독의 이러한 생각이 상당부분 반영된 듯하다. 덕분에 지금껏 그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무대가 구성되었다. 여하튼 그 무대를 2시간 내내 보고 있었던 탓인지 내 머리 속에도 정육면체 안에 홀로 들어앉아있는 인간의 형상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내가 해석한 방식은 이러하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여러 개의 집단에 동시다발적으로 부딪힌다. 가장 원초적인 집단인 ‘가족’부터 학교, 직장, 동아리, 친구집단 등등 다양할 것이다. 집단들은 각각 다른 처신을 요구할 것이기에 그 집단에 속할 필요가 있는 개인은 조금씩 자신의 형태를 바꿔가며 집단들의 취향에 최대한 맞춰주기 위해 노력한다. 묘사하자면 이런 것이다. ‘나는 나의 정육면체 중 가족에게 닿아있는 면을 빨간색으로, 학교에 닿아있는 면을 파란색으로, 직장에 닿아있는 면을 노란 색으로 칠했다.’ 하지만 크고 작은 변신술을 구사하는 와중에도 그 개인이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서만 존재하는 시간은 분명 있다. 즉, 내가 아무리 내 정육면체 면의 색깔을 바꿨다 한들 그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면의 너머에는 오로지 ‘나’, 그 자체로서의 ‘나’를 위한 육면체의 공간이 있는 것이다. 이 작은 공간 안에서 나는 가장 나답게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육면체 내부에 1년 365일 나 혼자 있는 것은 아니다. ‘면’이라는 경계에서 몇 번 맞닿았던 외부의 조직 중 내가 끌렸던 사람들을 내부로 끌고 들어오기도 한다. 이를테면 부모님이라든가 형제, 자매, 친구, 애인, 좋은 스승 등의 사람들을 내부로 데리고 들어오면서 좀 더 내밀하고 깊은 교류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슬픔과 고민을 이해받고 동시에 이해하면서 깊어져간다. 다른 사람들 역시 각자만의 정육면체를 가지고 있기에 우리는 모두 면을 비비며, 혹은 스치며, 가끔은 깨기도 하고 또 가끔은 내부로 들어가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인간은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이니까.

- 영화 < 굿 윌 헌팅 >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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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정육면체 내부의 세상은 분명 불완전하고 어딘가 결점을 가지고 있다. 하여 초대한 사람, 혹은 초대받은 사람은 그 결점으로 인해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극 중 사회복지사 린다 언더힐의 정육면체에도 역시 결점이 있다. 덕의 생활을 수박 겉핥기로 슬쩍 한 번 살펴본 후 오로지 자신의 기준에만 근거해 덕을 ‘도움이 필요한 아이’라고 분류해버리니 말이다. 이러한 언더힐의 충분한 이해의 부재는 후에 덕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상처를 자신만의 의미로 메워내는 과정에서 덕이 한 단계 더 깊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인간들은 그렇게 서로를 서로의 불완전한 세상으로 끌어들이고, 서로 상처를 주고, 받고, 또 치유하고 같이 아파해주며 다함께 커나가는 것이다.
 
 
 
나는 아직 어리다.

 
나는 종종 내가 폐쇄적이라고 느꼈다. 따지자면 나의 정육면체 안으로 다른 사람을 잘 안 들인다는 것이다. 하여 누군가에게 고민, 혹은 힘든 경험을 털어놓은 기억이 딱히 많지 않다. 이유를 따지자면 누군가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쉽사리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고, 더 자세히 말하자면 기대를 했다가 실망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도 같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그것은 고인 물만 만들어낼 뿐이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인지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자기 자신과 세상을 배울 수 있다. 이거 하나는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유달리 겁이 많은 탓에 다른 누군가를 나의 불완전한 세상 안으로 끌어들이고 나 역시 그의 초대에 응하는 데 유독 소극적이지 않았나 싶다. 내가 스스로 분발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좀 더 다양한 사람들과 넓은 세상을 받아들일 여유를 아직 충분히 지니지 못했다. 이게 고작 23년밖에 안 살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 성향 자체가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나에게 바라는 것은 이거다. 나는 내가 지금보다 좀 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좀 더 많이 상처받고 좀 더 많이 치유했으면 좋겠다. 좀 더 많이 품어낼 수 있는 깊고 폭 넓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

예전부터 종종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던 문제였다. 하지만 정육면체 이론과, 자신의 정육면체 안으로 그토록 싫어하던 언더힐을 초대하는 덕을 만난 후에야 명확하게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아마 그래서인 것 같다. 연극을 본 후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꽤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있었던 것은 말이다.





집에 사는 몬스터
- The Monster in the Hall -


일자 : 2018.08.20(월) ~ 09.02(일)

시간
평일 20시
토요일 15시, 19시
일요일 15시

08.21 화요일
08.27 월요일
공연 없음

장소 : CJ아지트 대학로

티켓가격
몬스터석 35,000원
1층석 30,000원
2층석 15,000원

제작
라마플레이(LAMA PLAY)

주관
CJ문화재단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95분




문의
라마플레이(LAMA PLAY)
070-7705-3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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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민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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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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