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영화] 비오는 날의 젖은 양말처럼 찝찝한 영화

글 입력 2018.08.3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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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이 싫은 가장 큰 이유는 찝찝함이다. 빗물이 튀어 몸에 착 달라붙는 바지나 만원 지하철의 눅눅함까지, 비가 오는 게 좋은 건 실내에서 듣는 빗소리뿐이다./실내에서 빗소리를 들을 때뿐이다. 어쩌다 신발 속으로 물이라도 들어갔다 치면 질퍽한 양말 속에서 발이 울부짖는 느낌이다. 연이은 폭우가 계속되는 요즘, 비오는 날의 젖은 양말처럼 찝찝한 영화를 추천해보려 한다. (찝찝한 게 망(亡)작을 뜻하는 것은 아님)
   
※주의 : 말 그대로 보고 나면 보고 나면 기분이 영 좋지 않은 영화이므로 찝찝한 영화가 불호라면 따로 찾아보지 않는 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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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말코비치 되기>
 
1999 미국
감독: 스파이크 존즈
출연: 존 쿠삭, 카메론 디아즈, 캐서린 키너, 오슨 빈, 존 말코비치
장르: 판타지 / 개봉: 2000.05.13
상영시간: 112분 / 청소년 관람불가
 
 
언젠가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육체가 나인가? 정신이 나인가?’ 이 심오한 질문이 들었던 건 아마도 신하균 주연의 한국영화 <더 게임>을 보고 나서였던 것 같다. 누군가가 내 정신을 지배한다면 (그렇지만 몸은 내 몸이라면) 그건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반대의 경우는 또 어떨지?
 
<존 말코비치 되기>는 이런 생각을 더욱 증폭시키는 독특한 영화다.
 
꼭두각시 인형 예술가 크레이그 슈와츠(존 쿠삭)는 꼭두각시 예술을 찾지 않는 현실에 입각해 새 직장을 구하러 간다. 뉴욕시의 한 빌딩 7과 1/2층에 위치한 어딘가 이상한 일터.

그곳에 취직한 크레이그는 캐비닛 뒤쪽에서 정사각형의 작은 문을 발견하는데, 그 문은 무려 존 말코비치라는 성공한 배우의 정신으로 통하는 문이다(실제 ‘존 말코비치’로 출연하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이 신기하다).
 
크레이그는 점점 존 말코비치 정신에 들어가는 것을 즐기게 되고 그의 동료 맥신(캐서린 키너)과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15분간 존 말코비치 체험을 시켜주는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게다가 크레이그의 아내 로테(카메론 디아즈)까지 존 말코비치의 정신으로 들어갔다가 남성의 눈이 되어 바라보는 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껴 상황은 복잡하게 흘러간다. 이렇게 존 말코비치는 더 이상 혼자만의 몸이 아니게 된다. 그러다 크레이그는 존 말코비치의 정신에 자리 잡아 빠져나오지 않는 수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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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매우 독특한 서사의 영화가 찝찝한 이유는 한 인간이 말 그대로 ‘너덜너덜해지는’ 순간을 두 눈 뜨고 지켜보게 하기 때문이다(게다가 너덜너덜해지는 인간이 단지 존 말코비치 한 명뿐만이 아니다). 존 말코비치는 점점 자기 자신을 잃게 되고 사람들이 그의 정신으로 가기 위해 두 무릎을 꿇고 기어가는 자세는 징그럽기까지 하다.
 
영화 속에는 신선한 스토리 아래 한 인간의 정체성이 말살되는 참혹한 과정이 잘 숨어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점점 민낯을 드러내고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끝을 보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대개 이렇게 끝을 보는 영화는 찝찝할 수밖에 없다.
 
“내가 즐겨 입는 값비싼 양복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어.” 존 말코비치의 정신이 되어버린 크레이그가 존 말코비치의 육체를 양복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는 이 대사는 영화의 섬뜩하고 기괴함을 한 번에 요약한다.
 
과연 존 말코비치의 몸과 크레이그 정신의 도합은 누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

  
-아직 찝찝함이 부족하다면-


<복수는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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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복수 3부작 중 첫 번째 이야기. 영화는 줄곧 안타까운 순간들의 연속이다.

청각 장애인 류(신하균)가 누나에게 신장을 이식하려는 과정에서 장기밀매단의 사기에 걸리는 것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다. 그렇게 해서 류와 그의 여자친구 영미(배두나)는 돈만 받고 아이를 돌려주는 일명 ‘착한 유괴’를 하지만 실수로 아이가 죽으면서 일은 또 틀어져 버린다.

끝없이 물고 이어지는 복수들 속에서 관객의 한숨은 멈추질 못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갈수록 악역이 늘어나는 신기한 영화.

(개인적으로 신하균 리즈시절이라고 생각한다)
 
     
<혐오스런 마스코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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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한 포스터에 속지 말자. 포스터만 보고 무턱대고 봤다가 심한 충격을 입은 이들을 꽤나 봤다. 중학교 교사로 사랑받던 마츠코(나카타니 미키)는 제자가 일으킨 절도사건으로 해고를 당하고 가출을 한다. 그리고는 점점 나락으로 빠지는데, 한 사람의 인생이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그 끝을 보는 영화.

‘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과 비슷한 느낌의 쌍둥이 같은 영화다. 정신 건강을 위해 이 책과 영화의 간격을 멀리 할 것.
   
   
<넷플릭스 블랙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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찝찝함을 즐기는 이라면 이미 보고도 남았을 미국드라마.

각각의 편들이 이어지지 않고 독립적인 이야기를 하는 옴니버스 형식이다.

찝찝하거나 신선한 스토리들이 무려 시즌4에 걸쳐서 등장하니 안 본 사람은 어서 보고 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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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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