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평, 창작,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 _ 연극 '비평가'를 보고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는 자와 아직은 그 작품을 사랑하지 않는 자
글 입력 2018.08.2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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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작품을 사랑하는 자와
아직은 그 작품을 사랑하지 않는 자,
스카르파와 볼로디아


한때는 비평가를 꿈꿨었다. 평가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게 글을 적고, 그것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 멋있어보이기만 했다. 하지만, 뭔가. 알면 알수록 어렵고 힘들 직업이다. 예술적 작품을 그저 향유하지 못하고, 오밀조밀 뜯어보고 의미를 찾고, 또 수많은 작품을 향유해왔기에 그만큼 테이스트의 높이도 엄청나다. 마음에 쏙드는 무언가를 찾으면 누구보다 기쁠테지만, 그런 일도 드물 것이다. 때로는 잣대 없음의 기쁨도 있는 것이다.

이 연극은 그런 자들의 연극이었다. 자신의 작품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창작자>와 아직 그의 작품을 사랑하지 않는 <비평가>. 비평가의 집에, 그 날 초연을 치른 창작자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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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당신이 어떻게 글을 적는지 보고 싶어요.”
- 스카르파


이리저리 실갱실갱을 하며 둘은 싸운다. 창작자는 나는 당신의 비평글을 쓰는 모습을 꼭 보겠다, 는 것이고 비평가는 자신은 누군가에게 자신이 글을 쓰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 둘의 싸움은, 대체 왜 저런 것으로 싸우지 스러웠다. 물론 글을 쓰며, 다른 사람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 하는 일을 즐기는 필자는 당연히 비평가 ‘볼로디아’의 편이었다. 무례한 창작자 ‘스카르파’의 모습을 보며 가만히 연극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극은 연극에 관한 이야기였다. 연극에, 연극에 의한, 연극을 위한 연극이었다는 말이 잘 맞지 않을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연극의 창작에 관한 이야기였다.



연극의 창작을 말하기 위해 창작된 연극


창작자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연극에 관해 이야기한다. 비평가가 몇마디 말로 평가해버리고 줄여버린, 자신이 사랑하는 그 연극을 위해 연기를 불사하고, 책상 위에 올라가고, 또 눈물을 흘리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정말 사랑했다. 그리고 아직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본인의 연극의 묘미와 백미, 그리고 온갖 사랑스러운 부분들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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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불안증> 제작 현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얼마나 사랑하고 애정하는 지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몇마디 말, 왓챠플레이에서 별 몇개를 달며 평가를 해버리는 사람들의 손가락 뒤에는, 사실 그 1시간을 위해, 2시간을 위해 노력을 쏟아붓는 수많은 창작자들이 있다. 오, 이번에 영화를 만들며 느낀 필자의 개인적인 소감이기도 하다. 정말 많은 노력이 들어가더라.



사실은 둘의 사랑이야기

 
사랑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다. 연인끼리의 ‘사랑해’뿐만 아니라 온갖 데에는 사랑이 녹아있다. 친구와, 사제지간에도, 부자지간, 모녀지간 어디에나 사랑은 녹아있다. 결국 모정, 부정, 우정, 존경 수많은 단어와 수식어가 있지만 모두 사랑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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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 하는 비평도,
너한테 하는 이야기였어.”


볼로디아는 소리친다. 스카르파 당신의 첫 작품에서 휘갈겼던 그 비평, 아픈 말들을 쓰면서도 사실 자신은 당신의 재능을 알고있었다고. 그 이후로, 자신이 하는 모든 비평은 당신에게의 비밀 레슨, 즉 암호로 이루어진 수업을 바라는 것이었다고. 스카르파도 알고 있었다. 볼로디아가 내뱉는 모든 것이 자신에게 하는 말인 것만 같아, 볼로디아 당신의 비평을 모조리 찾아 읽었었다고.

둘은 다투고 사이가 안좋아 보이고 가는 길이 다른 창작자와 비평가처럼 보였더라도 결국, 사실은 서로의 재능을 사랑하며, 안목을 사랑하고, 또 그들의 지성을 사랑하며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럴 줄 알았지. 서로의 지성을 사랑하는 비평가와 창작자, 창작자와 창작자는 역사 속에서도 수많아 왔다. 또 우리 수용자들은 그런 관계와 이야기를 사랑한다.



마지막에야 동등해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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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같았던, 평가자와 피-평가자의 관계같았던 둘의 이야기는 마지막에야 동등해졌다. 스카르파의 연극에 대한 볼로디아의 평가는 이것이었다. ‘ 가장 최악인 것은 비사실적으로 설정된 여자 캐릭터였다.’ 하지만 그 연극에서 사실인 것은 그 여자 캐릭터일 뿐이었다.

스카르파의 말은 이것이었다. 사실, 자신이 무엇도 쓰지 못했던 시절에 당신 볼로디아의 집을 찾아왔다고. 그리고 그 여자와 당신의 모습을 보았고, 당신이 키스를 거부하자 그 여자가 집을 나가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갔다고. 그리고 공원에서 그 여자를 마주하고 나눈 이야기 모두가, 연극 속의 그 여자일 뿐이라고. 결국 가장 사실을 가려낼 수 있다고 생각한 볼로디아는 무너졌고, 창작자와 비평가 둘 사이의 관계는 전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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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정각 12시 연극의 비평을 묻는 전화벨이 울리고 스카르파는 볼로디아 대신 자신의 연극에 대한 자신의 비평을 읊는다. 사실 제대로 기억은 안난다. 그저 위에 있던 볼로디아의 평가가 구겨지고, 스카르파의 두루뭉술한 문장들이 읊어졌다는 것만 알 뿐이다. 누군가의 창작물에 대해, 평가하고 저울질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우리는 임의로 그 권한을 부여받아, 그 작품에 대한 자신의 취향, 인상과 생각만을 임의로 놓아둘 뿐인 것이다.

건방지게 남기는, 이 연극에 대한 마지막 비평은, 이제는 이런 연극도 나올 때가 되었었다는 것이다. 여자 남자의 구분이 없는 미디어를 보고 나서, 조선시대가 아니라 이런 시대를 살고 있었지 참, 싶었다.


[손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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