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평가, 내가 노래할 줄 알면 나를 구원할텐데 [연극]

진실과 거짓, 그 사이에서의 허풍때리기
글 입력 2018.08.2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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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

2018년 8월 18일 토요일,
종로 5가역 인근 space 111에서.



1.

장소를 찾는 게 힘들었다. 원래는 문이 제대로 있는 쪽으로 갔다가 그 길이 아닌 것 같아서 돌아나와 더 걸어가 골목길로 들어왔더니 잠겨있었다. 괜히 돌아서 가느라 몇 초 정도 늦어버렸고, 나와 함께 늦게 들어온 5명과 함께 로비에서 화면을 보고 관람하다가 10분 정도 지나서 다 같이 입장을 할 수 있었다.

지각하는 걸 정말 싫어하고, 친구들과의 약속이나 교수님의 강의에 지각한 적이 거의 없는 나는 요즘들어 아트인사이트 공연들에 자꾸만 지각을 하게 된다. 도대체 왜 그럴까? 저번에 했던 프레디 켐프의 에뛰드 리사이틀도 늦느라 제때 들어가지 못해 1부의 앞부분을 놓치기도 했고 이번에도 앞부분 도입 부분을 놓치고 말았다. 화면으로는 볼 수 있었지만 빛이 너무 반사되어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내용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초대받는 입장이라 거만해진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좀 싫어진다.



2.

나이가 어느 정도 먹고 연극을 제대로 본 건 처음이다. 초반에 몇번 언급했듯 나는 알바를 해서 용돈을 모으는 입장이라 한달에 30 만 원도 겨우 벌어들인다. 밥값을 하다보면 그 중에 절반 이상이 날아가고, 사고싶었던 레깅스 등등을 사다보면 남는 돈이 없다. 그래서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하던 공짜 미술 전시회만 보곤 했었는데 아트인사이트의 문화초대 덕택으로 공연, 연극, 전시 등 값비싼 문화혜택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사전 지식은 별로 알지 않고 무턱대고 가는 편이다. 남자친구에게도 같이 가자고 할 때, 남자친구가 무슨 이야기를 다룬거냐고 묻길래 모른다고 했다. 아트인사이트에서 보내주신 링크를 타고 들어가 그제서야 보여주면서 이런이런 거라고 알려주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건지 아닌지 미리 내용을 보고 확인하고 가는 모양이다. 나는 시간이 되면 내용도 알아보지 않고 가는 편이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싫어하는 분야, 좋아하는 분야 따지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내용을 잘 흡수하게 되고 주제를 편식하지 않게 된다는 장점도 있는 것 같다. 나누어주는 팜플릿도 미리 읽어보지 않고 공연이 다 본 뒤 재점검으로 읽어보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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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많이 울었다. 비평가와 극작가의 2인극 대립구도 작품이었다. 왼쪽 사람이 비평가, 오른쪽 사람이 극작가이다. 10년 전부터 비평가는 이 극작가에게 혹평을 하고 때로는 기대를 남기는 말을 하고, 그가 발전할 것을 믿는다고 말해왔다. 그러면서, 비평가는 생각도 깊고 점잖고 늘 진지하며 솔직한 것처럼 보인다. 자기가 평을 할 때는 사심을 전혀 담지 않고 비평을 하기 때문에 만약 극작가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자신의 비평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이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모든 사람은 최대한 객관적이려고 하는 순간에도 자기 자신의 주관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 존재가 사람이라는 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이 하는 말에는 그 사람이 평생동안 살아온 믿음, 고정관념 등의 판단 기준이 존재하고, 그런 기준을 뒷받침하여 평가를 내리게 된다. 자기가 가장 객관적인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가 이 세상 사람들의 가장 표준적인 위치에 있다는 가장 주관적인 평을 내린 것이다. 객관적인 평을 내리며,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객관적일 수 없다는 그런 말을 한 것과도 마찬가지라고 여겼다. 여기서부터 굉장히 역설적인 인간이란 게 증명된다.

비평가와는 반대로, 극작가는 어리고, 생각도 짧고 성공에 눈이 멀어 대중성과 상품성있는 극을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보인다. 젊음과 피, 권투, 싸움, 클라이막스와 흥분에 광분하는 것 같은 그의 연기를 보면서 우리 젊은 세대의 진실된 이야기는 제대로 된 극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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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극작가는 비평가의 보이지 않는 제자이자, 비평가는 극작가의 보이지 않았던 스승이라는 반전이 밝혀진다. 성공에 눈이 멀어, 진짜 사랑을 해 본 적이 없기에 '여자'가 아닌 여자처럼 보이는 형체를 보여주었고, 극작가가 진짜 이야기를 담을 가능성을 그동안 보아오다가 이번에는 '작은 사람들이 작은 신을 모시는 세계로' 가버렸다며 실망해버린다.

그때부터 눈물이 쉴새없이 터져나왔다.

자기가 10년간 믿어온 사람에 대한 실망을 그보다 더 자조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사실 비평가는 세상을 경멸해온 것이다. 세상에 자기 의견을 말하면서도, 세상에서 나올 새로운 인재를 기대하면서도, 세상을 '작은 신을 모시는 작은 인간들의 집단'으로만 여기는 것이다. 애초에 세상을 믿지 않았고, 그 중 믿어온 단 한 명이 자신을 배신해버리니 세상 자체에 모든 경멸을 한번에 표현해버린다.



4.

극작가의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관람객들은 극작가의 공연에 기립박수를 15분 동안이나 쳤다.

사람들이 극작가의 공연에 기립박수를 친 이유는, 사람들 자신들의 살의 거짓말을 옹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 관람객들은 기립박수를 쳤다.

그렇게 비평가는 극작가의 공연을 평한다.

프레디 켐프의 피아노 리사이틀에 갔을 때, 사람들은 그의 공연이 끝날 때마다 엄청나게 박수를 쳐댔다. 나는 멋도 모르고, 음악의 ㅇ 자도 모르지만 따라서 박수를 쳤다. 그 박수에 감응해 프레디 켐프가 앙코르 공연을 칠 때마다 박수 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하지만 그 중에 진심으로 음악을 알아서 박수를 친 사람은 과연 몇 명일까?

학창시절에 교장의 연설이 끝나면 다들 박수를 친다. 행사에서 누군가의 인사말이 끝나면 박수를 친다. 의미없는 두 손바닥의 만남이 마찰되어 공기를 진동시키는 그 물리적인 행위는 감정을 담고 있지 않고 공허하다. 빨리 마찰이 되면 부딪히는 진동의 폭이 좁아져서 더 높은 소리가 나기도 하며, 느리게 치면 둔탁한 소리가 나기도 한다. 내가 자기소개를 끝내고 박수를 받았다, 하면 그게 너무 잘해서 라고 해석하기보다는 한 차례가 끝났다는 환기의 의미가 더 강해졌다.

기립박수는 다를까? 일반 박수에 플러스로, 앉아 있던 관객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손바닥을 부딪히는 행위 더하기, 물리적으로 무릎을 굽혀 뒷허벅지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지탱하며 일어나는 행위가 기립박수이다. 자신의 귀찮음을 감수하고서라도, 기립박수를 하는 자기 자신을 봐주길 원하며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내가 너를 이만큼이나 찬양하고 있다. 너의 작품은 내가 이런 귀찮은 행위를 감수할만큼 훌륭한 것이었다.' 라는 말을 직접 할 수 없으니 몸의 행위로 전달한다. 극장 위에 올라가있는 사람은 말을 들을 수 없으니 관객들의 비언어적 표현을 보고 자신의 작품이 어땠는지 해석할 것이다.

감동을 하는 방법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직접적으로 눈물을 흘리는 방법, 막상 그 장소에서는 가만히 있다가 집에 와서 감동을 받고 글을 쓰거나 2차적인 창작을 하는 방법, 만든 사람에게 직접 달려가서 온갖 극찬을 해대는 방법 등. 누군가에게 감동을 전하고 싶어서 죽겠다, 이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극찬이 터져나온다.

왜 그런 감정을 가지는데?

극작가가 그런 감정을 갖도록 의도했기 때문이다. 관람객의 슬픔이라거나, 고통이라거나 문제점을 사정없이 건드릴 때 우리는 뜨끔하는 감정을 받으며 뭔가를 깨우치게 된다. 그리고, 뭔가를 깨우친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이 건드려졌다는 것을 되려 알려주려고 한다. 우리는 무엇을 깨우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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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 비평가도 무언가를 깨우치지만 알아채지 못한다. 오히려 기립박수를 치는 사람들이 거짓말에 동조하고 있다고 비난할 뿐이다. 자기 자신은 모른다. 알아버리면 더 상처입을 사실일 때 그것을 마냥 피하려고 하는 무의식이, 사람에게는 존재한다.



5.

연극 중간중간의 빛, 조명이 극작가의 클라이막스에 주목되게 면적이 줄어들거나, 색이 더 강해지거나 할 때도, 그게 별거 아닌 연출인 걸 아는데도 이상하게 더 눈물이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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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인정한 스승에게, 인정받지 못할까봐 느껴온 10년간의 두려움이 절실히 느껴졌다. 애타게 스승의 인정을 갈구하고 또 갈구했다. 진심으로 우는 것 같은 극작가의 연기에, 그 조그맣고 여린 몸에서 어떻게 그런 혼신의 연기가 나올까 싶기도 했다. 아마 키도 나랑 비슷하거나 더 작은 것 같고 더 여리여리하기도 하고 끝없는 외침과 연속되는 강렬한 행위. 시선을 한순간도 저버리지 못할 연기에 감탄했다.

비평가의 연기도 만만치 않았다. 처음부터 분위기를 잡아끄는 것은 묵직한 목소리와 무거운 움직임. 차분한 말투. 그러면서도 간간히 웃음을 주는 유머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볼 때 남자 2인극이라면 진부했을 이야기가 여자 2인극이었기에 더 참신하다고들 말한다. 여자들이 남자 역할을 맡아서 한 여자를 두고 싸우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간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라서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다고.

작품을 보기 전에 한 줄 지나가는 글로,

"삶과 예술 그 어느 것이든 진정한 자기 목소리를 찾는 일에 남녀의 구분이 필요할까?"

라는 것을 언뜻 읽기는 했다. 그런데도 막상 홍보글이나, 리뷰글을 보면 '남자'2인극이 아닌 '여자'2인극이라 신선했다는 말이 나온다. 남자 2인극이면 어떻고 여자 2인극이면 어떤지. 사실은 아무 상관도 없는 문제아닌가?

물론 그것은 작품을 관람하는 관점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다. 연극 자체의 내용에 집중하는 나같은 사람과, 연극이라는 장르 자체를 판단하는 다른 사람들의 입장으로 서로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연극 자체에 집중한다면 사실은 누가 연기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지만, 연극에 조금 일가견이 있고 많은 배우들을 보아온 사람이고 서로를 비교할 줄도 알게된다면 그런 신선함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연극이라는 장르가 관람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 그 자체의 장르인지, 아니면 그 속에서 하는 행위들을 우리가 보기 위한 것인지 그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를 굳이 나누는 그 사람들을 비판할 필요는 없고, 우리는 그저 보는 관점이 다르구나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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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연극 속에서 거짓을 알아챈다면, 자신의 삶에서 그것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가 노래할 줄 알면 나를 구원할 텐데."


*


비평가
- 연극창작의 본질을 묻는 메타 연극 -


일자 : 2018.08.17(금) ~ 09.01(토)

시간
평일 8시
주말 4시
월요일 쉼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제작
극단 신작로

기획 : 두산아트센터, K아트플래닛

관람연령
만 13세 이상

공연시간
100분




문의
극단 신작로
02-742-7563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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