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은 매번 찾아오지 않기에 더욱 빛난다 [전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샤갈 Love & Life 전 리뷰
글 입력 2018.08.04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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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매번 찾아오지 않는다. 나는 샤갈이 그린 붕 떠 있는 연인들의 모습을 이제야 이해한다. 전시를 찾아가기 이전에는 그가 그려낸 하늘에 떠 있는 연인들, 혹은 꽃에 둘러싸여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그 모습이 조금은 허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이상을 그린 것인가, 사랑에 대한 자신만의 세계를 다소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데 생각이 그쳤다. 그러나 비단 사랑만이 아닌 샤갈의 탄생, 유년기의 추억, 그리고 죽음에 대한 사유까지 드러나는 누군가의 인생 전반을 놓고 보자, 그 속에서 사랑은 더욱 빛날 수밖에 없었다. 샤갈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 할지 언정, 만약 연인들을 그린 그의 유명한 작품만을 볼 수 있는 공간이자 전시였다면 나는 그의 사랑을 마음에 담거나, 이해하고, 또 잠시나마 슬퍼하는 감정들을 그만큼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사랑은 내 인생의 특별한 시기이고, 매번 찾아오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욱 빛난다.



유대인의 삶을 살며 고향을 떠나간 삶과, 또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그려낸 샤갈의 마음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이토록 따뜻한 그에게 과연 벨라와의 사랑은 얼마나 더 크고 완전한 것일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치 한여름 밤의 사랑 같은, 한 번 불타오르고 마는 사랑이 아니었다. 샤갈에게 벨라는, 주변의 사람들과 그 관계를 따뜻하게 그려내고 언제나 그들을 생각하는 사람이 마음으로 알아본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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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자화상과 일생 부분을 지나, 연인들의 공간에 들어오게 되자 나 역시도 사랑에 빠진 듯한 기분이다. 누군가의 탄생과 일상을 그린 일생 역시 일기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지만, 인생 중 행복한 시기인 몇 찾아오지 않는 사랑에 빠질 때에 그가 느꼈을 것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이 공간에 들어서면서부터 설레고 왠지 감정이 고조됨을 느낀다. 그의 인생 중 가장 행복했다는 시기를 이제 보게 되다니. 그의 '강렬한 색채들은 눈을 넘어 내 마음속으로 퍼지는 듯한 기분을 줄 것 같다'고 나는 그림들 앞에 서기 전, 그 공간 초입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이렇게 썼다.



자신의 인생, 연인 벨라, 그리고 가족과 고향에 대한 각기 다른 주제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가, 주제가 바뀔 때마다 공간에도 다른 색의 벽지를 구성해 놓은 것이 흥미로웠다. 샤갈이라는 화가에게 ‘색채’라는 단어를 뗄 수 없는 것처럼, 여러 색의 공간들은 어떤 인생 요소들이 샤갈에게 어떤 색채로 다가왔을지, 내심 짐작해보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연인들’을 그린 공간에 들어서게 되자, 마침내 그의 인생에서도 붉은 색감과 마찬가지로 펴 올랐을 사랑의 감정 속에 내가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꽃은 만개해있고, 우리는 영원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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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사랑하는 연인들과 꽃'. 샤갈이 그린 연인의 그림들은 꽃이 만개해 있었다. 형형색색의 색을 뽐내며. 꽃들은 오직 만개한 채로 그림 속에서 그칠 줄을 모르고 피어 있는 듯 보였다. 떠다니는 연인들의 모습들도, 계속 사랑 안에서 떠있을 것이라는 듯 더없이 편안한 표정으로 함께 해 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은, 마치 시간의 흐름에 관계없이, 그 순간을 붙잡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꽃은 만개해 있고, 우리는 영원히 떠있을 테니까. 더 없이 편안해 보이는 모습의 연인들이었지만 그들은 내게 분명히 말해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직접 보게 되면 꽃이 더욱 아름다울 거라, 그저 황홀할 거라 생각했던 그 그림 앞에서, 나는 편안함보다는 사랑과 영원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것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샤갈의 그림은 내게 사랑에 대한 용기, 에너지를 주었다.



그는 마법을 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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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것 없는 생일, 벨라에게 꽃을 받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고 말하는 샤갈. 그가 날아가는 연인들을 그린 것은 정말 우리가 날아가는 기분이라고 할 때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샤갈의 다소 허구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더없이 순수하고, 진실된 감정의 표현들이란 걸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생일이라는 말에 나는 이 샤갈의 그림을 영상으로 재 탄생시킨 이 공간에 꽤 오래 머물렀다. 특별할 것 없는 생일. 그 문장이 나오는 순간을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었기에 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특히나 생일은 특별해야 한다고만 생각해왔던 내게, 그래서 더 큰 씁쓸함과 초라함을 느끼곤 했던 나에게 샤갈은 말을 건넸다. 생일은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그렇지만 한 사람으로 인해 그날이 특별해질 수는 있다고 말하는 듯한 그에게 나는 위안을 받았다. 생각지 못한 단 여덟 글자의 문장에 큰 위로를 받고, 그리하여 또다시 사랑과 한 사람의 존재에 다시 희망을 걸고, 그제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렸다는 말보다는 담아냈다는 말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물론 색채의 마법사라는 샤갈의 수식어에는 동의하지만, 마법보다는 일상으로, 오히려 평범함으로 그의 작품들을 설명하고 싶다. 특별함 역시 평범함에서 동떨어지지 않은. 그렸다는 단어보다는 담아냈다고 표현하고 싶다. 샤갈의 그림들은 언제 봐도 좋을 것 같다. 사랑이 하고 싶을 때, 마음이 추울 때, 그리고 가끔은 생일이 초라한 그런 날들까지. 언제든 좋을 이유는 그가 우리의 일상을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남윤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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