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공간 자체가 책이자 시간인 서점들, 도서 시간을 파는 서점

글 입력 2018.07.05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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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서생활자가 아니다. 굳이 부연설명을 덧붙이자면, 독서생활자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래서 나 또한 독서생활자가 되겠다고 늘 생각은 하지만 결과적으로 늘 실패하고 마는 인간이다. 그래서 사실 나는 서점을 잘 가지 않는다. 자주 가는 서점이라고 해봤자 중고서점 알라딘의 만화책 및 웹툰, 여성학 서적 구역 정도랄까.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최근엔 여행 구역을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 그 외에 책이 필요하면 보통 도서관을 가고, 꼭 사야하는 책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구매한다. ‘중고서점 알라딘’ 정도를 빼면 나는 정말 서점을 가지 않는 인간이다. 연남동 쪽에 여러 독립서점들이 생겨나고 있고, 독립출판도 이뤄지고 있다지만 내겐 먼 이야기였다. 그냥 그렇구나, 하는 감흥 뿐. 그 이상의 감흥은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시간을 파는 서점’을 읽는 데도 약간은 힘이 들었다. 수없이 많은 서점들을 보여주고, 거기서 얻은 감흥을 말하고, 그 의미를 말하는데. 서점을 드나들지 않은지 오래 된 내겐 먼 얘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가장 큰 것은 저기에 그렇게도 쌓여있는 그 보석같은 책들이 내가 읽을 수 없는 것이란 사실 때문이었다. 언어적 장벽 때문에 내가 차마 손을 댈 수 없는 책들은 내게 검은 활자와 하얀 종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래된 책이 주는 감흥이야 분명 있겠지만, 내가 읽을 수 없는 책이란 생각이 앞서니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러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수많은 서점들을 보여주는 이 책이 내겐 약간 힘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을 수 있던 건  작가 자신이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유럽 사람들이 ‘책’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는 몇몇 서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나는 내가 인상 깊었던 몇몇 개의 서점들과 그에 대한 나의 감상으로 리뷰를 작성해보고자 한다. 짧은 식견을 가진 나의 감상이라 가벼울지 몰라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읽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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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서점은 네덜란드 데이븐 떠에 있는 ‘선은 항상 그곳에’라는 서점이다. 이름부터가 철학적이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지만, 사실 이 서점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다름 아니라 바닥에 마구 쌓여있는 책들의 풍경 때문이었다. 골동품 가게에 들어온 듯한 풍경. 저자는 동양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평가했다. ‘오래된 책’들이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늘어져있고, 그 책들 사이가 곧 길이 되는 광경은 분명 매혹적이다. 나만의 아지트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환상의 세계로 향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심지어 해당 가게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도 있다고 한다! 정말이지 ‘환상적인 서점’의 모든 조건을 충족한 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딘가로 들어가면 마법사들의 세계로 가는 길도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쌓여있는 책들 사이 어디 구석탱이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눈길이 가는 책을 아무거나 집어 들면 만약 영어로 된 책일지라도 열심히 읽어보려는 노력이라도 하고 싶어질 것 같다. 책들로 둘러싸인 아지트에서 오래 묵은 종이에서 나는 미묘하게 퀘퀘한 냄새를 맡으며 책을 읽는 경험 자체가 무척이나 환상적일 테니 말이다.

구조가 여러개의 다락방들로 이뤄졌다는 암스테르담 아네테이움 서점도 매력적으로 느껴졌지만, 매력 포인트가 ‘선은 항상 그곳에’와 너무도 겹치기에 설명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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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서점은 부칸들 도미니카넌’과 ‘반더스 인 더 브루어른’이었다. 둘다 수도원 혹은 교회였던 건물을 서점으로 사용하게 된 케이스다. 일단 두 서점은 건물 자체가 뿜어내는 아름다움에 압도당했다. 저런 공간에 책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적이라고나 할까. 호그와트 도서관에서 받을 수 있는 아우라가 이런 느낌일까. (사실 네덜란드랑 호그와트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그냥 내가 해리포터 덕후라서 자꾸 연상하게 된다) 저런 공간에서 책을 고르고, 읽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격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유적’이 나의 생활공간이 된 듯한 기분이니 말이다.

각 교회들이 겪어온 역사의 시간들의 결과물이 ‘서점’으로 이어진다는 점도 묘한 감동을 준다. 결국 책은 인간들의 시간을 축적한 결과물인데, 그 ‘시간’들을 ‘시간’을 견뎌낸 표상과도 같은 건축물에서 판매한다는 점이 인상 깊다. 종교적인 목표로 만들어진 공간이 서점으로 쓰인다는 점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아주 예전엔 수도원 등이 정보들이 집대성 되던 곳이고 엘리트들의 공간이었다는 점과 더불어, ‘종교’와 ‘책’의 만남이라는 것 자체가 미묘하니 말이다. 특히 ‘반더스 인 더 브루어른’의 무명 청년의 영구전시 같은 경우는 한 사람의 삶을 대하는 유럽인들의 태도가 느껴저서 더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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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인상 깊었던 서점은 벨기에의 ‘쿡 앤 북’이었다. 저자가 서두에 적은 것처럼, 나름 애독자였던 어린 시절 나는 맨날 밥상머리에 책을 가져간다고 혼이 나곤 했다. 밥 먹을 때는 밥에만 집중했으면 좋겠고, 더 나아가서 가족들과의 대화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바람이었겠지만 나는 그게 항상 불만이었다. 그래서 오기를 부리며 책 다 읽을 때 까지 밥을 먹지 않겠다고 떼를 썼던 경우도 있었다. 서점 ‘쿡 앤 북’은 그 어린시절의 나의 바람을 실현시켜놓은 듯한 공간이었다. ‘북카페’ 정도가 아니라, ‘북식당’이라니. 음식을 먹다보면 책이 더럽혀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긴 하지만. 이거야말로 책을 ‘생활의 일부’로 여기는 유럽 사람들의 태도가 느껴지는 듯 해 인상 깊었다. 특히 식탁 위에 책들이 매달려 날개짓하고 있는 광경은 그 자체로 장관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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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로 인상 깊었던 서점은,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서점은 역시나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였다.

“낯선 이를 냉대하지 말라 변장한 천사일지도 모르니.”

이 얼마나 멋짓 모토인가! 낯선 이에게 친절하라는 감동적인 메시지 뿐 아니라, ‘변장한 천사 일지 모른다’는 환상적인 위트와 문학성이 마음을 울렸다. 게다가 실제로도 그 모토를 너무도 잘 실천하고 있는 곳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유명 인사들이 거쳐갔다거나, 많은 예술 작품이 여기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바로 이 모토였다.

왜냐하면 유명인사들이 거쳐가고, 또 수많은 명작들이 여기서 탄생할 수 있던 이유 자체가 그 모토였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관대함을 겪은 휘트먼이란 사람이, 그 관대함을 갚길 원해서 문호를 개방한 서점이라는 것은 그 시작부터가 낭만적이다. ‘책’이란 ‘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처럼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고, 심지어 작가 지망생들은 하루에 한권씩 책을 읽는 조건으로 서점에서 공짜로 머무를 수 있다니. 이것만으로도 이 공간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 작가들 스스로가 적은 그들의 신상명세가 적힌 쪽지는 그 자체로 인테리어가 되면서도 서점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낸다.

이런 서점의 모토와, 책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앙드레 지드나 폴 발레리, 스콧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 등. 수많은 작가들을 이 서점으로 끌어들이고, 또 그 작가들을 ‘명작 작가’ 반열에 올리는 환상적인 작품들을 써내려 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파리를 한번 갈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서점에 들르면 비록 가난한 여행자 신분에 거기 있는 책들은 내가 읽지 못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책 한권쯤은 꼭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산 책을 길에서 만난 어느 친절한 프랑스인에게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그의 관대함 덕에 탄생한 수많은 명작들, 그리고 그 명작에서 받은 감동을 내가 그에게 갚는 방법은 책을 사는 것 밖에 없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갚은’ 관대함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또 다시 관대함을 베풀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듯 하다.

*

물론 내가 독서생활자가 아닌 탓에 책을 다 읽는 것 자체는 힘겨워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인상을 남겨준 서점들이 있어서 좋았다. 특히 지금 유럽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꼭 가볼 서점 리스트'를 만들 수 있었어서 감사했다. 유럽에서 마주할 수많은 서점들과, 거기서 무언가를 느끼고 왔을 때. 그 때 이 책을 다시 펴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연남동에 독립서점부터라도 가면서 '서점을 느끼는 힘'부터 길러야겠다.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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