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엇으로 사는가

연극 '우리가 아직 살아있네요' 리뷰
글 입력 2018.06.30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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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다'라는 말은 때로 잔인하다. 그 말은 평범한 무언가를 이미 갖고 있는 이에게는 그것이 대단한 게 아니라는 느낌을, 갖고 있지 못한 이에게는 남들 다 가진 것조차 가지지 못했다는 박탈감을 안긴다. 누군가에게 평범한 삶은 노력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것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평범한 삶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평범함'의 무게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연극 '우리가 아직 살아있네요'는 평범하게 '살기 위해' '죽을 만큼' 노력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족, 아이들의 엄마인 여자는 그저 저녁이면 온 가족이 거실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평범한' 삶을 꿈꾼다. 여자는 손에 닿을 듯 말 듯 한 목표를 향해 달리지만, 삶을 위해 택한 그 길은 오히려 가족을 죽음으로 내몬다. 실패한 부부는 자신들 없이 홀로 남겨질 아이들이 걱정되어 아이들을 먼저 죽인 후 자신들도 그 뒤를 따르려 한다. 그러나 죽음은 마음먹은 것처럼 쉽지 않다. 몇 번의 자살시도에 실패 끝에 이들은 결국 다시 삶으로 떠밀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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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보내고 홀로 살아남은 부부의 현실은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욕심을 낸 결과로는 지나치게 가혹하다. '우리가 아직 살아있네요'는 열심히 노력해도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힘든 사람들을 보여주며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고발한다. 하지만 단지 그것 뿐이라면 부부가 살아남는 데서 연극이 끝났을 것이다. 연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살에 실패한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연극은 도피생활을 하는 부부에게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는 대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부부는 그토록 사랑하던 자식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도 살아 있다. 그저 살아 있을 뿐만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도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살아'간다'. 부부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시간은 흐르고 계절도 바뀐다. 매일 새롭게 불어오는 바람은 살고자 하는 본능을 일깨운다. 농가 일을 하며 번 돈으로 해보는 사치 아닌 사치는 달콤하다. 그들은 죄책감에 매 순간 자살을 결심한다. 그러나 살아 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 이들의 발목을 잡는다. 생생한 삶의 감각은 괴로움과 기쁨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우리를 죽게 만드는 것과 살게 만드는 것이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이들을 지켜주기 위해 든 두 손이 아이들의 목을 졸랐고, 죽고자 차를 몰았던 손이 습관적으로 안전벨트를 맸듯이 말이다. 모순적이게도 삶은 늘 죽음을 껴안고 있다. 연극에서 '죽기 좋은 아름다운 날'이라 말하는 기상캐스터의 목소리와 '너무 행복해서 지금 죽고 싶다'라는 여자의 대사, 그리고 부부가 철쭉 축제에서 다짐하던 1년 뒤의 죽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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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 속에서도 살고자 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기에, 여자가 택한 방법은 끊임없이 잊는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복하다'라며 '절규'하는 것이다. 연극의 기능은 신문기사나 뉴스에서 접했다면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 여겼을 사건을 '우리의 이야기'로 인식하게끔 한다는 데 있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 '우리가 아직 살아있네요'는 우리의 삶 역시 여자가 살아가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삶은 무엇이며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연극의 인물들처럼 극단적인 상황은 아닐지라도 죽음이라는 정해진 결말 앞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삶을 회의한다. 아주 단순하게 보자면 우리는 우리의 부모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고자 하는 본능에서 기인한 결과물에 불과하다.우리는 삶을 선택한 적이 없다. 우리는 그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이다. 이런 삶에 동기를 부여하는 모습이 극중 여자의 절규와 비슷하게 느껴진다면 너무 비약이 심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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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단면은 이처럼 허망하다. 그러나 그 말에 반박하기라도 하듯, 많은 사람들이 삶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평탄하고 행복하기만 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 재미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지금으로서는 어렴풋하게밖에 알 수가 없다. 부부에게 삶은 한번도 쉬웠던 적이 없지만 죽음은 더 어려웠다. 사는 게 즐겁기만 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죽음의 공포가 삶의 괴로움보다 훨씬 더 크기에, 그리고 그 괴로움 속에서도 작은 즐거움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간다.

문득 연극에서 아이들이 사랑이 무엇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엄마의 간지럼이나 머리를 쓰다듬는 아빠의 손길이라고 답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쩌면 막연하고 추상적인 삶에서 무언가 구체적인 이유나 의미를 끄집어낼 수 있을 때 삶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다행히도 우리는 아직 살아 있기에, 그걸 찾을 수 있는 시간은 남아 있다.





- 살아있다는 것, 산다는 것 -

일자 : 2018.06.20(수) ~ 07.01(일)
시간 평일 8시 토, 일 4시 월 쉼
장소 : 대학로 나온씨어터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제작 떼아뜨르 봄날
관람연령 만 12세이상
공연시간 9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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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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