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운을 시험해보겠습니까? [도서]

글 입력 2018.06.28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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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어딜 가든 토끼풀이 많았다. 보통 토끼풀은 잎이 세 개지만, 어떤 것들은 잎이 네 개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들 아는 행운의 상징 네잎클로버다. 행운, 말 그대로 좋은 운수다. 나폴레옹이 전쟁터에서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고개를 숙인 덕분에 총알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운수가 좋아진다면 절로 행운이 따라올 거라 믿는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이란 꽃말을 가진 토끼풀 무더기 속에서도 오직 '행운'의 네잎클로버만을 찾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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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룰렛, 은희경
('중국식 룰렛', 창비, 2016년)


오늘의 운을 시험해보는 술집이 있다. 술집 주인 K는 정해진 가격을 받고 세 잔의 술을 내민다. 각각의 잔에 어떤 술이 담겼는지 손님은 알 수 없다. 손님은 그중 하나를 골라 마시고, 그 술이 그날 마실 것으로 선택된다. 당신이 오늘 무수한 토끼풀 사이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을 만큼 운이 있는 사람이라면, K가 내미는 세 잔의 위스키 중 가장 비싼 술을 마시게 될 것이다. K는 끝까지 손님에게 술을 종류를 비밀로 한다. 당신의 운이 좋은지, 나쁜지는 K만이 알고 있다.



당신은 자신이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K, 그리고 그의 초대로 온 '나', 술집에 있던 아르마니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와 중년 남자. 넷은 술집에 모여 이야기를 주고받게 된다. 그들 모두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서로가 가진 불운의 모양은 다르지만, 모두 각자의 사연으로 불행하다.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는 마치 누가 더 불행한지 경쟁하는 것만 같다. 아내로부터 이혼 서류를 받은 나,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해야 했던 K, 각종 불행이 삶을 점령하고 있던 중년 남자, 그리고 자신의 성향과 맏지 않은 직장에 아버지 덕택으로 들어간 젊은 남자, 각자의 이야기로 불행한 이들이 잠시 누릴 수 있었던 행운이라곤 이날 밤 비싸고 특별한 술을 마셨다는 것뿐이다.

인물들이 가진 사연으로 이야기가 따로 놀듯 흘러가다 중반에 다다르면 제목 그대로 큰돈을 건 '룰렛'을 하고 있는 것처럼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사연이 엉키고 설켜 긴장감을 자아낸다. K의 제안으로 네 사람은 술잔으 앞에 두고 진실 게임을 시작한다. 핑퐁처럼 날카로운 질문과 진실된 대답, 거짓된 대답이 왔다 갔다 하며 그들은 자신의 불운을 확인한다. 지나온 시간의 실수, 놓쳐버린 기회를 되돌아보게 한다. 위스키를 마시며 올라오는 몽롱한 취기와 달리 그들의 불행한 삶은 점점 더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정말, 그들은 지독히도 불행한 사람들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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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조금 운이 없는 사람인 거죠.


그들은 정말 불행한 사람인가에 대한 소설의 대답이다. 그들은 조금 운이 없었을 뿐이다. 인생의 모든 부분이 행운으로 가득 찬 사람은 아마 어디서도 만나기 힘들 것이다. 행운아처럼 보이는 사람도 자신을 불행한 사람이라 여기는 시간이 분명 있을 것이다.

"위스키는 숙성시키는 동안 매년 2퍼센트에서 3퍼센트 정도가 증발하죠. 그걸 '천사의 몫'이라고 불러요." 이들이 이날 밤 마셨던 위스키에도 천사의 몫으로 조금씩 빼앗긴 부분이 있다. 모든 위스키가 공평하게 조금씩 천사들에게 빼앗기는 부분이 있듯이, 우리에게도 천사가 조금씩 빼앗아간 행운이 있는 것이다.


천사들은 술을 가리지 않아요. 모든 술에서 공평하게 2퍼센트를 마시죠. 사람의 인생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증발되는 게 있다면, 천사가 가져가는 2퍼센트 정도의 행운이 아닐까요. 그 2퍼센트의 증발 때문에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군요.


우리는 틈틈이 행복하고, 또 틈틈이 불행하다. 하지만 저들이 마시는 비싸고 특별한 위스키같은 행복보다 천사의 몫으로 삶에서 빼앗긴 불행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불행한 사람이야." 생각보다 행운과 불행은 공평할 수도 있다. 비슷한 양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슬프게, 때로는 절망하게 만들 것이다. 단지 우리의 삶에서 천사의 몫으로 빠져난 것이 2퍼센트인지 3퍼센트인지에 따라 조금은 더 행복하고, 조금 더 불행할지는 모지만.


취한 네 사람은 분명 운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단지 조금 불행한 것처럼, 그래서 단지 약간의 행운이 필요할 뿐인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불운의 총량은 어차피 수정될 수 없는 것이니까.



[김하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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