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발적 귀머거리가 된 남자, 음악 혐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소리.
글 입력 2018.06.2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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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혐오 (La Haine De La Musique)


파스칼 키냐르 (Pascal Quignard)
2017년 06월 29일 1쇄
프란츠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는 그 흔한 음악소리 (BGM)가 들리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고요함을 깨는 극 중 인물들의 대치하는 상황에서의 소리들이 긴박감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또 다른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아예 소리를 내면 죽는다라는 설정을 가지고 장편의 공포 영화를 만든 케이스다. 일반 가정집에서 느낄 수 없는 사운드를 접하는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아주 효과적인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소리는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효과적인 장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기술적인 점을 뛰어넘어 소리에 있어서 한없이 근본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남자가 쓴 책이 바로 음악 혐오이다.

 원제는 La haine de la musique. 'haine'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혐오'보다 '증오'로 해석되는 단어이지만 책을 읽고 있으면 단순한 '증오'를 넘어 국내판 제목에서 사용한 '혐오'라는 단어가 더 적절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토록 눈에 띄는 강렬한 단어를 사용한 파스칼 키냐르라는 작가가 음악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기만 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정의내릴 만한 뚜렷한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다. 얼핏 보면 단순한 산문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소리에 관한 신화나 실제 역사, 그리고 여러 단어들의 어원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중간 중간에 작가의 직접적인 생각과 경험을 쓴 부분을 포함해 대부분의 내용은 소리의 불가피한 성질과 공포의 근원을 파악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그래서인지 내용이 조금은 난해하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소리의 근원을 파악해 나가는 과정과 그 영향력에 관한 깨달음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절로 흥미로워진다. 최초의 악기는 식량이 될 동물들을 유인하여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 성 베드로가 수탉의 울음소리를 듣고 오열한 '베드로의 슬픔' 이야기, 홀로코스트 때 끌려가는 유대인들에게 들려주는 음악에 관한 이야기 등 이 책에서의 모든 구절은 음악, 즉 소리가 지니고 있는 무서운 영향력과 그에 관한 일관된 두려움에 대해서 처절하게 외치는 듯하다.


음악은 고통을 준다. (p. 205)


 유독 궁금했던 것은, 유서깊은 음악가 집안 출신이자 본인 또한 음악으로 꽤나 큰 성공을 거두었던 파스칼 키냐르가 1994년 이후 잠깐 동안의 잠적기 동안에 무슨 일을 겪었길래 이토록 (문학적으로도) 비극적이고 아름답게 '혐오'를 부르짖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책은 물론 다른 자료들을 살펴보아도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와있는 게 없어 더욱 미스테리하게 느껴진다.

 정확히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점은 그의 생의 중간에 인간이 얼마나 소리 앞에 수동적이고 약한 존재인지 처절하게 깨달은 순간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순간이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도 찾아왔듯이.

 귀에는 눈꺼풀이 없다는 말, 곰곰이 생각해본 적 없지만 굳이 해보자면 어쩐지 조금은 섬뜩한 말이다.
 가볍게는 수능 금지곡이라는 밈 (meme)의 등장이라던가, 최근의 선거철만 되면 무조건 나오는 선거 유세 소음 공해에 관한 기사라던가, 층간 소음이나 백색 소음 등 소리는 우리를 언제나 둘러싸고 있는데 새삼 그것을 거부해본 적도, 거부할 수는 있는지 생각해본 적 조차 없다.
 개인적으로도, 나는 큰 소리나 파열음에 태생적으로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잘 느끼지도 못하는 소리들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여 움찔하는 순간이나 털이 곤두서는 순간이 많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은 예고도 없이 찾아와 피할 수도 없어 반드시 공포감으로 물들게 만든다.
 그러고보면 우리의 눈을 해치는 것들에 대해서는 눈꺼풀을 통해 차단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우리의 귀를 해치는 것들에 대해서는 차단할 수가 없는 것 아닌가. 그것을 깨달은 순간이 파스칼 키냐르에게는 증오를 넘어 혐오를 느끼는 하나의 사건이 되었으리라.


'음악 혐오'라는 표현은 음악을 그 무엇보다 사랑했던 이에게 그것이 얼마나 증오스러운 것이 될 수 있는지를 말하고자 한 것이다. (p. 189)


 반면 그의 이런 말을 통해 비단 그가 소리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오로지 공포감과 혐오감뿐만이 아닌, 일종의 애증이기도 하다는 것을 가늠해볼 수 있다. 어쩌면 그는 이토록 커다란 소리의 세계를 오롯이 혼자 감당할 수 없기에 역사와 이야기의 힘을 빌려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려 한 것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의 안식은 소리가 극도로 차단된 곳에서 이루어질 것이고 아주 평화로울 것이라는 묘사와 곧 언젠가 또 다시 소리를 받아들이는 순간은 극도로 고요한 순간에서부터 탄생할 것이라는 묘사 또한 이를 나타내는 것 같다.

 사실, 이 책에는 강박적으로 느껴질 만큼 소리에 대한 나쁜 면만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 측면의 반대편에는 소리로 인해 치유받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다.

 나도 이런 책은 처음 접했고 그래서 흥미로웠다. 단순하고 전형적으로 보이는 텍스트의 속에 작가가 느끼는 감정이 오롯이 느껴진다는 점이 그러하다. 하나의 감정을 느끼고 녹여낸 결과물이 이런 문학적인 산문이 될 수 있다니.
 그가 부르짖는 혐오스러운 소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전마띠아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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