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러 음이 모여 하나의 곡이 되기까지 -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음악]

글 입력 2018.05.24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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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기 전 항상 들르던 곳이 있었다.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피아노학원이었다. 건반에 손가락을 올려 연주하는 피아노는 어린 나에게 장난감이었다. 누르면 소리가 나는 신기한 장난감. 손에 닿는 차가운 감촉과 내 손가락이 무거운 건반 하나하나를 누를 때 청명하게 울리는 소리가 신기했다. 바이올린은 줄을 제대로 누르지 않으면 정확한 한 음보다는 불안한 음들이 겹쳐서 들린다. 그러나 건반 하나에 하나의 음을 가지고 있는 피아노는 항상 정확한 소리를 냈다. 피아노의 그 점이 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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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선물을 받고 그 뒤로 혼자서 피아노와 노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중학생이 되면서 학원을 그만뒀지만, 집에서 좋아하던 곡은 수시로 연주하고 배우고 싶은 악보는 서점에서 사 와서 몇 시간을 연습했다. 그러다 예전에 학원에서 쓰던 악보에 월광이라는 곡을 발견했고 자주 쳤다. 처음부터 천천히 시작되는 도입부의 음은 비장하면서도 씁쓸한 알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재미로 처음에 치다가도 음이 주는 느낌에 빠져 진지하게 임했던 기억이 난다. 심연에 가라앉은 묵직한 한방 같은 느낌. 이 곡을 연주하면 나의 어두운 부분을 마주 보는 듯했다.

그러다 베토벤의 월광을 제대로 연주한 곡을 듣고 싶어 이 노래를 자주 검색해 들었다. 들을 때마다 이 곡이 좋았고 어느새 피아노곡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되었다. 단순한 세 음이 주는 웅장한 느낌이 파도가 치기 전에 폭풍전야 같은 상황이 그려졌다. 곡을 듣고 상황을 생각해보게끔 한 곡이었다. 학교에서 듣던 클래식 음악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그건 내가 진정으로 들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 후 월광 소나타에 대해 궁금해졌고 자세하게 알고 싶어 책을 찾았다. 그 책에는 내가 느낀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해낸 단어와 용어가 적혀있었다. 월광은 전체적으로 단조 형태로 구성되어있고 악보에 쓰인 표현을 살펴보면 large(폭넓게, 표현 풍부하게), grave(무겁고 장중하게) 라고 쓰여 있다. 소나타는 총 3악장이나 4악장으로 이루어진 기악 독주곡이다. 독주 악기를 위한 소나타를 호모포니라고 부르는데 고전주의 시대의 소나타 형식은 호모포니를 전제로 한다. 베토벤이 태어난 시기에는 프랑스 혁명 이후 시민계급이 새로운 문화 담당층이 되면서 공개 연주회가 일반화되었다. 그전까지는 자신을 고용한 주인집에서 주인이 원하는 음악을 만들고 연주했던 음악가들은 고전주의 시대에서는 그 형태가 사라져갔다. 그래서 베토벤은 모두의 만족을 얻기 위해 머리를 더 쥐어짜야만 했다. 한 사람만을 만족시키기만 하면 됐던 그 전 시대와는 달리 모두에게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드는 데에는 힘이 들었다.

클래식 음악을 광고나 프로그램에서 많이 사용한다. 그만큼 귀에 익은 곡들도 있지만, 클래식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곡이 가지는 분위기와 느낌을 먼저 느낀다면 그 후에 공부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클래식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저 듣고 느끼면 된다. 우리는 클래식까지도 공부하고 파악하려고 한다. 하지만 클래식은 수학 문제가 아니니 그저 편안히 앉아 소리에 귀 기울이고 느끼면 그만이다. 악기가 내는 소리에도 철학과 정보가 필요하다니 그건 클래식을 제대로 듣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각자 악기가 가지고 있는 음역대와 표현하는 방법, 진동에서 오는 느낌은 다르다. 소리가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고 그 음을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음악을 만든 사람이 원하는 느낌을 청중이 제대로 느끼면 된다.

바이올린을 시작으로 장구, 하모니카, 피아노 등 악기를 다루면서 피아노가 재밌었던 이유는 다양한 음이 존재하고 열 손가락으로 만드는 음의 조합이 또 다른 소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올린, 첼로, 플롯 등으로 꾸려진 오케스트라가 가지는 매력도 존재한다. 필자는 피아노를 시작으로 클래식을 접했는데 다른 사람도 이처럼 자연스러운 계기를 통해 클래식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다. 우선 하나의 악기를 시작으로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백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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