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선은 필사의 의지다.', 인간에 대한 탐구 연극 - 공포

글 입력 2018.05.13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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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필사의 의지다."


이번 아트인사이트의 문화초대는
연극 <공포>입니다.

비가 오는 날,
침착하게, 또 격렬하게,
깊게 내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연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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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그것이 무엇인가?

 '공포', 연극의 제목이자, 원작의 제목인 그 감정들을 찾아보기 위해서 애쓰며 이 연극을 봤습니다. 본 연극의 완성도와 모든 면이 정말 뛰어났지만 개인적으로 제게는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연극보다는 단편 소설을 읽는 것 같았고, 그리고 그 소설들의 내용이 현대가 아니라 19세기~20세기의 러시아 지식인층들을 화자로 잡아둬서인지 그들의 표현이 어렵게 다가왔고, 그로 인해 두 시간의 공연 시간동안 머리가 지끈했습니다. 그들의 빠르고 많은 말들 속에서 본질을 찾아내려 했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또 계속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공포'가 무엇일까? 본 연극에는 여러 인간 군상이 등장하고 그들이 겪는 고통, 아픔들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도시에서 도망쳐 온 농장주 드미트리, 드미트리의 아내이자 그의 친구 체홉을 사랑하는 마리, 유명한 러시아 소설가 안톤 체홉, 마리를 보필하는 하인 빠샤, 가브릴라와의 관계로 쫓겨난 하인 까쟈, 알코올 중독자로 쫓겨난 하인 가브릴라, 가브릴라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조시마 신부, 사할린에서 체홉이 만난 요제프 신부까지……. 이들의 사연들과 생각들은 무수히 많은 대사들로 쏟아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대사를 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상류층에 속한 인물들이 주로 이야기합니다. 하인 꺄쟈와 가브릴라는 그 삶 자체의 피로감이 쌓여있고, 힘든 삶을 살고 있기에 그에 대한 '공포'가 있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제가 보기에 여기서 진정한 공포를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상류층, 농장주 드미트리, 그의 아내 마리, 소설가 안톤 체홉, 조시마 신부인 것 같았습니다. 물론 본 연극에서 '공포는 '이것'이다!' 라고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포의 종류가 다 다르겠지만 그 뿌리에 있는 마음은 하나일 것입니다.


'마음 속에 있는 진심을 직면하는 것.'


 저는 본 연극을 보는 내내, 인물들의 긴 대사를 들으며, 자, 그럼 저 인물은 무엇을 저렇게 두려워하기에 저렇게 감싸는 말을 많이 하는 걸까 생각했습니다. 모든 인물들은 자신 본연의 마음을 꺼내놓기 위해서 꽤 많은 서론을 펼쳐둡니다. 이는 어찌보면 자기방어적인 측면이 존재한다고 봤습니다. '마음 속에 있는 진심을 직면했을 때, 그것이 선이 아닐 수 있다는 그런 불안감.', '그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누구나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두려워하죠. 아무리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어도 그럴 것입니다. 그 내면 깊숙한 곳에는 자신도 기억하지 못했을 아픔, 또는 불안, 불편한 진실들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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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치에서 오는 공포

 내면의 나와 현실의 내가 불일치함으로 인해 오는 '공포', 저는 이 공포야말로 모두에게 존재하는 공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물들은 상당히 불일치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마리와 체홉의 숨겨진 사랑처럼말이죠. 그리고 그러한 불일치가 가장 많이 보이는 인물은 농장주 '드미트리'였습니다. '드미트리'는 계속 삶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말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술을 마시고, 전혀 웃기지 않은 상황에서 웃음을 보입니다. 그리고 '자비'에 대해서 심각하게 논하면서 실제로 '자비'를 보이는 모습은 자신의 권력에만 기대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 같습니다. 또한 자신의 아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의 곁에 있으려하는, 외도 사실을 직면하고서도 완벽히 회피해버리죠. 이러한 모습들은 내면의 실체적인 진실을 계속 그가 회피해왔음을 보여줍니다.

 '드미트리'는 유일하게 극 중에서 이명소리를 듣고, 결말부에 어느 상자에 담긴 것을 보고 밖으로 가져나가며 불안해하고 구토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저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이 연극은 '드미트리'라는 인물이 불일치에서 오는 공포를 직면하게 되는 과정을 말해주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니라고 생각했던 아내의 외도를 인지하고도 그저 웃으며 잘 다녀오겠다고 말하던 그가 상자 속에 있는 것을 보고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고 결국 밖에서는 구토를 해버리는데, 이러한 모습은 숨기고만 싶었던 실체를 깨달아버린 후의 '드미트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면의 불안감, 불편함의 진실을 마주한 우리들의 모습 역시 그렇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외에도 조시마 신부, 아내 마리, 체홉 역시 표면과 내면이 다른 모습 또는 달랐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상당히 표면적으로 본인들을 완벽한, 완성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그들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그들은 공포를 느낍니다. 불편한 내면의 진실이 드러날까봐. 자신이 보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까봐.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순간은 본인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순간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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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필사의 의지다

 본 연극에는 기독교적인 메세지가 꽤 많이 등장합니다. 성경의 구절이 막과 막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며, 신에게 호소하는 장면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사할린에서 체홉이 만난 요제프 신부와의 대화에서 체홉은 신에 대해 묻습니다. 선은 대체 어떤 것이냐고, 요제프 신부는 '선은 필사의 의지'라고 합니다. 그만큼 선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신에게 호소하지만 그 신은 그러한 번뇌를 관찰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제 표현이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논쟁들에서 저는 '신 존재 증명'이라는 철학 입문 시간에 배웠던 논쟁들이 떠올랐습니다. (이에 대한 논쟁은 상당히 많고, 여러 논리들이 존재하는데 찾아보고 생각해보면 꽤 즐거웠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왜 악이 존재하겠느냐'는 물음은 꼭 등장합니다. 신인 절대 선이라면 왜 인간세상에 절대 악이 존재하도록 두는가에 대한 생각들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또 이런 논증도 존재합니다. 인간이 도덕적인 관점을 갖게 된 것은 모두 최고 선인 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도덕에 대한 기준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이죠. 실제로 도덕의 시작이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인 것과 같습니다.

 이렇듯 여러 이야기에 걸쳐 신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는 이러한 인간의 공포가 어쩌면 '의심'에서 시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를 의심하고, 마음 속의 나에 대한 의심들,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의심은 현재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감정일테니 말이죠. 이해할 수 없어, 공포스럽다는 드미트리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

 연극 <공포>는 많은 생각을 안겨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공포에 대해 이렇게 많이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그저 모르고 지나쳤던 감정들에 집중해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보여준 무대 연출과 소품들의 퀄리티는 정말 높았고, 한정된 무대공간을 어떻게 하면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하는 깊은 고민들이 엿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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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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