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화가가 아닌 사상가 '고야'를 만나다 [도서]

글 입력 2018.04.28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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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의 저자 츠베탕 토도로프는 “고야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괴테나 50년 후 등장한 도스토옙스키에도 뒤지지 않는 심오한 사상가였다”고 말했다. 화가와 사상가라니 좀 의외였지만 책을 읽은 후 고야는 그 시대의 사상과 변화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던 사상가였음을 알게 되었다. 책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초상화나 정물화, 종교화 등은 다루지 않는다. 이 그림들은 고야가 왕실 아카데미 일원으로 그린 그림들이기 때문이다. 고야만의 생각과 사상은 평생 동안 고야가 남긴 엄청난 양의 판화와 흑백 데생 스케치들에 담겨있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유럽 전체에 계몽주의의 사상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시기는 고야가 화가로서 명성을 얻어가던 시기이기도 하다. 오래된 관습을 타파하고자 하는 계몽주의는 ‘빛’과 ‘이성’을 필두로 한 사상이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계몽주의를 스페인 점령의 통치수단으로 사용했고, 스페인과 프랑스의 대치는 이성보다는 광기, 살인, 고문이 계속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몽주의 사상을 지지하던 스페인의 진보주의자들은 모순에 빠져 괴로워했다. 이 혼란을 가장 잘 표현한 사람을 고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고야는 마드리드의 계몽주의들과 교류하며 계몽주의의 그늘에 가려진 것들을 끊임없이 탐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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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짓이다! 시체를 가지고">


우선 그의 그림들을 보면 전쟁의 폭력성과 참혹함을 느낄 수 있다. 이는 고야의 판화집 중 하나인 『전쟁과 참화들』에서 잘 드러난다. 이 판화집은 개인이나 집단 처형 장면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진 처형 장면들은 인간의 증오와 적대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그림들은 단순히 적대감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행위의 폭력성뿐만 아니라 무심함, 더 나아가 냉정하게까지 처형 행위를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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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마찬가지다>(참화 36)


판화집의 <여기서도 마찬가지다>(참화 36) 속 교수형에 처한 한 남성의 시체 앞에 앉아있는 프랑스 군인이 이를 잘 드러낸다. 그는 죽은 시체를 턱을 괴고 비스듬히 앉아 매우 침착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고 있다. 전쟁과 폭력에 무뎌진 모습을 그려내면서 고야는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와 감정을 망각한 상태의 공포를 말하는 것이다. 계몽주의를 명분으로 행해진 전쟁이었지만 잔인한 폭력은 사상을 지우고 폭력행위 그 자체만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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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베탕 토도로프


작품을 통해 고야의 삶을 봤을 때 그가 얼마나 당대의 사상과 철학,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했는지 알 수 있었다. 더 나아가 토도로프는 고야가 보여주는 것들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제시해준다. 계몽주의 사상이 지금까지 이어져 우리 사회의 사상과 철학의 밑바닥에 존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민감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빛과 그늘을 구별하는 절대적인 오만함에 대해 우리는 항상 스스로를 비판하고 감시해야 할 것이다.
 
 
[정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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