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야에 대한 인식을 뒤집다 -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글 입력 2018.04.27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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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고야, 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
검은 분필, 195x150mm



[Review]
고야에 대한 인식을 뒤집다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그래, 인정하자. 필자가 고야를 접한 첫 그림이 자기 자식을 뜯어먹는 사티로스와 마녀들이었기에 고야는 '미친 화가'처럼 보였다. 그가 그린 그림에는 어떤 분노와 공포가 엿보였다. 그래서 필자는 그 이름을 광기와 분노를 그리는 작가로서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삶에 대한 단서는 그가 격정적인 시대를 살았다는 점과, 외로운 말년 청각장애를 앓았다는 점 뿐이었다. 고독한 삶에서 불안과 공포를 되새기는 것은 쉬운 일이고, 불안을 표현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많은 이득을 가져다 준다. 책을 덮고 나서, 지금까지 필자는 다소 고야를 단순화시켜 이해해 왔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를 읽어 고야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한 지금, 고야의 그림을 단순히 공포의 승화로 해석하기엔, 사회의 격동기와 개인의 철학 속에서 얻어낸 것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고야를 단순히 '사상가'로 정의하는 것도, 똑같이 그의 예술관에 대한 과도한 단순화가 된 정의라는 생각이 든다. 독특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고야의 평가에 있어서, 필자는 책의 제목에 깊게 공감하는 바이다. 단순히 그는 '계몽주의자'가 아니라, '계몽주의의 그늘'에 선 예술가다.

물론 필자는 책을 모두 읽고 나서도 그의 그림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불신과 공포를 찾아낸다. 하지만 프란시스코 고야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광기에 찬 화가'보다는 '수행자'로 전환되었다. 필자가 가장 먼저 올린 <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라는 그림이, 고야의 그런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때 그는 살롱과 권위자를 위해 그림을 그렸지만, 그는 세속을 위해 그림을 그린 시간보다 더 오래 '가난하고 헐벗은 채'로 그림을 그렸고, 그 순수한 열망은 말년까지 이어져 눈 맑은 수행자의 모습으로 남았다.

필자는 전 시대에 살았던 예술가들의 마지막 생각을 상상할 때가 있는데, 책을 읽고나서 고야가 그가 마지막 순간에는 늙고 지쳤지만 순례자의 모습으로 자신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필자가 고야가 그린 여러 그림 중에서도 유독 이 데셍이 가슴 깊이 박히는 이유도 그와 같다. 그 초라하지만 꼿꼿히 짚은 두 지팡이가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필자에겐, 이 데셍이 그 어떤 그림보다, 그가 스스로 단 훈장같은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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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잠이 괴물을 깨운다


그의 그림이 다분히 '검었'던 것은 사실이다. 예술의 다양성이 꽃피워 그로테스크한 표현이 익숙하게 받아들여지는 오늘날에 보기에도 그의 그림은 끔찍해보인다. 하지만 표현이 '검었'을 뿐, 그의 정신이 검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쟁의 참상을 그려낸 거칠고 투박한 그림의 이면에 담겨있는 것은 인간애가 존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야가 그토록 마녀와 악마와 같은 이미지를 그려냈던 것도, 그들이 인간과 완전히 닮지는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검은 표현은, 오히려 인간의 맨얼굴을 크게 왜곡시켰기 때문에 뚜렷히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그의 철학이 고스한히 담겨진 <이성의 잠이 괴물을 깨운다>가 그의 철학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 속에 드러난 화가의 분신은 팔에 기대 잠에 든다. 작가가 의도한 이 그림의 메시지가 이성의 부재가 괴물을 깨운다는 것인지, 이성의 세계 자체가 괴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필자는 후자의 해석이 더 와닿는다.

여기서 필자가 정의한 '이성'은 우리가 인지하는 똑바른 세계를 말한다. 다시말해, 고야의 캔퍼스에 나타나는 것처럼 마녀도, 악마도, 괴물도 없는 정상적인 세계를 말한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극적인 모습을 하지 않아도 그런 악행이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나타난다. 고야는 그 자연스러운 방식을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표현하려 했다. 책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어떤 가면은 맨 얼굴 표정보다 그 자신을 잘 드러낼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작은 파편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계몽주의 지식인과 교류하고, 사상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세계에서도 인간의 생명이 사라지는 것에 참혹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는 검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그가 인간에게서 그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었다면, 그의 날카로운 의식을 표현하는 섬세한 붓터치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세계가 정말로 진실에 가깝지 않다는 감각은, 고야의 예술관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고야는 예술이 세계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신과같은 창조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세속을 떠나면 떠날수록 내적 소리에 따른 그림을 그렸다. 그가 정의한 예술이 '신적'이고 '내적소리'를 따른 것이기에, 그가 그린 모든 그림은 진실을 찾아 고행하는 순례자의 그것과 같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프란시스코 고야는 아이러니한 휴머니스트로 생각되어진다. 그는 진실로 정치적 분쟁과 사상이전에 그는 '인간의 생명'의 무거움을 아는 사상가였고, 인간의 잔혹함 사이에서도 진실을 고민하는 순례자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청각장애와 고독한 말년 속에서도 발견한 진실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참된 예술가였다.
  

지은이∥ 츠베탕 토도로프
옮긴이∥ 류재화
펴낸곳∥ 아모르문디
발행일∥ 2017년 8월 30일
판  형∥ 신국판 변형
면  수∥ 328면
정  가∥ 16,000원
ISBN ∥ 978-89-92448-63-5 03600
분  야∥ 예술, 예술가, 예술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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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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