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름의 미학, 타인의 취향에 대하여 [영화]

글 입력 2018.04.1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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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Gout Des Autres, The Taste Of Others
:타인의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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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 타인의 취향.

이 글에서는 영화의 내용이나 단순한 감상이 아닌,
영화 속 인물들이 마주하는 타인의 "취향"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01. 취향은 공유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취향은 공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취향의 주인공들을 예시로 들자면 카스텔라가 조카가 출연한 연극인 <베레니스>를 보러가서 여주인공을 맡은 클라라의 연기에 매료된 순간, 카스텔레와 클라라의 취향은 공유되었다. 카스텔라의 삶이 클라라의 연기로 인해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취향이 공유되며 카스텔라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카스텔라와 클라라의 취향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카스텔라는 본래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그저 먹을 것에만 반응하는 한 회사의 사장이었다. 또 집을 관리하는 것에 있어서도 모두 아내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자신의 취향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에 비해, 클라라라는 카스텔라와 달리 자신의 취향이 아주 뚜렷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문학을 잘 아는 사람이었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그렇기 때문에 나는 클라라의 연기를 그녀의 취향으로 생각했다). 또 그러한 자신의 취향을 연기로써 표현해내는 배우이기도 했다.

 이렇게 카스텔라와 클라라는 아주 상반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카스텔라가 우연히 조카의 연극을 보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한다. 그가 클라라의 연기에 큰 감명을 받은 것이다. 그는 연극의 무대나 의상이 형편없다고 불평하는 아내의 목소리는 듣지도 못한 채 클라라의 연기에 매료되었다. 이후 그는 일부러 클라라가 공연하는 장소에 찾아가고 그녀의 주위사람들과도 친해지려고 노력한다. 그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쉴 새 없이 농담을 하고 자신이 술값까지 계산하는 등 그는 자신이 클라라,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과 친해지기를 원한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클라라의 취향 연극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카스텔라에게 공유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삶은 클라라의 취향이 공유되며 엄청난 변화를 맞이한다. 카스텔라는 여전히 그림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전시회를 보러가고, 기분 좋게 느껴지는 그림을 구입했다. 급기야 공장에 벽화를 그리기까지 한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던 그가 자신의 부하를 이해하고자 했고 자신이 집에 걸어둔 그림을 아내가 치운 것을 알고는 내 집에 내가 좋아하는 것 하나쯤은 놔둘 수 있지 않냐며 소리친 후 집을 나간다. 연극을 보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고, 아내가 집을 어떻게 꾸미던지 간에 전혀 신경 쓰지 않던 과거 카스텔라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단순히 연극 한편으로 누군가의 삶이 완전히 변화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조금 웃기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만큼 그 연극이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카스텔라는 연극을 통해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어울리고자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으며 이 과정 속에서 변화했다. 카스텔라는 그만의 취향을 찾은 것이다.

 취향은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누군가와 취향을 공유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나의 취향이 공유되거나 내가 타인의 취향을 공유 받거나.우리가 속한 상황이 전자이든 후자이든 나는 우리가 누군가와 취향을 공유한 시점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카스텔라처럼 우리만의 취향을 찾기 위해 고민을 거듭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02. 취향은 향상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취향은 향상될 수 있을까? 나는 취향이 향상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취향의 향상은 일반적인 의미와 조금 다르다. 향상이란 실력, 수준, 기술 따위가 낮은 것에서 높은 것으로 나아지는 우열을 의미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향상은 같은 것을 다르게 바라볼 줄 아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의 카스텔라와 현재의 카스텔라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카스텔라는 그림을 전혀 볼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연극은 더더욱 볼 줄 몰랐고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연극 한편을 볼 바에야 그 돈으로 빵을 사먹겠다고 했을까. 그런데 그렇게나 예술에 문외한이었던 그가 클라라의 연기를 본 이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카스텔라가 갑자기 예술적인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극이나 전시회를 일부러 찾아갔고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그림들 앞에서 그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카스텔라가 왜 전시회에 사람이 많은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계속해서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그의 노력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는 자신의 감정을 동요하게 하는,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선택할 줄 알게 되었고 클라라에게 연극의 특히 어떤 부분이 자신에게 감동을 주었는지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카스텔라의 취향이 향상된 것이다.

 이제 우리의 삶 속에서 취향이 향상된 경우를 생각해보자. 나는 아기공룡 둘리를 예시로 들고 싶다. 나는 내가 유치원생일 때 아기공룡 둘리라는 만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내 기억으론 재방송까지 모두 챙겨봤던 것 같다. 어릴 적에는 마법기타를 통해 공간을 이동하는 둘리가 너무 멋있었고 엄마를 찾으러 여행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울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그런 둘리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구박만하는 고길동 아저씨가 아주 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고길동 아저씨에게 둘리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자신의 집에서 살지를 않나 툭하면 갑자기 사라졌다 나타나고 집을 무너트리고……. 늘 사고를 몰고 다니는 공룡이 예뻐 보였을 리가 없다. 내가 고길동 아저씨였다면 아마 둘리를 당장 내쫓고 경찰에 신고했을 것이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나는 많은 지식을 배웠고 다양한 각도에서 한 사건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릴 적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고길동 아저씨의 입장을 고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취향의 향상은 이런 것이다. 다양한 영역을 경험하고 지식을 습득하면서 과거에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할 줄 알게 되는 것. 7살의 나와 비교했을 때 20살인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는 다양한 예술작품을 접했고 더 수준 높은 지식을 쌓아왔다. 이 글에서 예시를 만화로 들긴 했지만 카스텔라처럼 그림을 감상했더라도 7살 때 내가 그 그림을 보고 느낀 것과 20살의 내가 느낀 것은 천지차이일 것이다. 이처럼 취향의 향상은 같은 것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들며 우리가 훨씬 더 풍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한다.



03. 취향에도 우열이 존재하는가

 나는 취향이 공유, 향상될 수는 있지만 누군가의 취향을 우열로는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개인의 취향을 가지고 있다. 좋아하는 옷의 종류나 음료, 노래나 영화 장르 등 일상의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도 늘 취향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우리는 매 순간 각자의 취향에 따라 선택을 하게 되는데 과연 이것을 우열로 구분 지을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것과 카페라떼를 좋아는 것 사이에 우열이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런 가벼운 것에서는 우열을 나누지 않지만 예술, 문화의 영역에서는 유난히 우열을 구분 짓는 것 같다. 취향이란 개개인의 선택을 의미하는데 어떻게 취향에 우열과 같은 등급을 나눌 수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영화에서 클라라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영화를 보면 예술에는 전혀 지식이 없는 카스텔라가 클라라에게 반해 그녀를 늘 따라다니는 데 클라라는 그런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녀와 그녀 친구들의 술자리까지 눈치 없이 끼며 저급한 농담을 하고 그녀의 친구들이 인형의 집이라는 책으로 그를 조롱하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그가 클라라에게는 너무 무식해보였을 것이다. 극의 중반부에서 그녀가 카스텔라의 고백의 거절한 이후 클라라는 자신의 화가 친구가 카스텔라의 공장에 벽화를 그려주기로 한 것을 알게 되고 그가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알지도 못하는 벽화를 그리기로 결정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게 찾아가 자신이 이에 대해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여기서 카스텔라의 대사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당신에 대한 내 호의를 이용해요?
난 그림이 좋아서 샀는데 뭐가 문제지요?
내가 왜 그림을 샀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을 기쁘게 해주려고?
근사하게 보이려고?

아주 잠깐이라도 내가 그 그림이 좋아서
샀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요?

날 그런 사람으로 보나요?
난 그 그림들이 좋아요.
믿을지 모르겠지만
당신 때문에 산 게 아니에요.
날 좋아할 수 없다고 진작 말했잖아요.”


 카스텔라가 클라라에게 한 말이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클라라가 카스텔라에게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재력에 있어서는 카스텔라에게 훨씬 뒤쳐짐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보는 안목과 취향만큼은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녀는 예술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취향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어떤 계기를 통해(이 영화에서는 클라라의 연극이 해당된다)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또 다른 예시로는 카스텔라의 아내, 안젤리크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취향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영화를 보면 그녀는 자신이 집을 꾸미는 것에 일가견이 있고 전문가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자신의 생각대로 집을 꾸며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2가지 사건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첫 번째는 시누이가 집을 옮기면서 나타난다. 시누이가 불편해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굳이 전문가인 자신이 집 꾸미는 것을 도와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누이의 취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생각대로 집을 꾸민다. 두 번째로는 카스텔라가 집에 걸어둔 그림을 이상하다며 그의 의견은 묻지도 않은 채 치워버린 것이다. 카스텔라는 이에 화가나 “이 집에 내가 고른 물건 있어? 내가 좋아하는 거 하나쯤 놔두면 안 돼? 여기는 완전히 인형 가게 같아. 핑크색에 온통 새 그림, 꽃 그림. 더 이상은 못 참아.”라고 소리치며 집을 나선다.

 안젤리크는 자신의 취향이 뛰어나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너무 강해서 타인의 취향을 전혀 배려하지 못했다. 자신이 타인보다 우월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는 그녀에게 타인의 취향은 너무나 열등한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개성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안젤리크처럼 자신의 생각과 선택만을 강요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막고 관계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카스텔라가 집을 나간 것처럼 말이다.
 
 취향은 너무나 개인적인 것이어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특별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취향을 우열로 구분 짓는 클라라와 안젤리크가 한 바보 같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개개인의 취향은 모두 존중받아야 하며 그 자체로 충분히 특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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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내용을 관통하는 주제, 취향은
비단 영화 속 인물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은밀히 자리잡고 있을 취향문제를
영화를 통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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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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