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은 사랑, 누군가에게는 아픔 [영화]

글 입력 2018.04.0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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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이처럼 따뜻하고 아름답고 복잡한 감정이 어디 있을까. 사랑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고, 그 사랑의 결실을 맺은 연인들은 더욱 반짝이며 빛이 난다. 완성된 사랑은 어느 것으로도 가릴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강렬하게 빛을 낸다. 그러나 그 뒤에 숨은 불완전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는 완전한 사랑보다 불완전한 사랑이 많다는 것을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서 쉽사리 떠올리지 못한다. 당신이 세상의 중심이 된 것처럼 행복하게 사랑을 누리는 동안, 어디선가 당신의 사랑만을 기다리며 가슴 아파하고 있을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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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 (Wicker Park, 2004년)


 '매튜(조쉬 하트넷)'는 2년 전 자신을 떠난 '리사(다이앤 크루거)'의 목소리를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듣게 된다. 다시는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리사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리사가 남긴 흔적을 따라 그녀를 찾아 나선다. 그러다 그는 리사와 이름은 똑같지만 얼굴이 전혀 다른 한 여자와 마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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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와 리사



1) 같은 공간, 전혀 다른 두 세계

 영화는 두 가지의 전혀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다. 매튜와 리사의 간절한 사랑을 중심으로, 매튜의 사랑을 얻기 위해 가짜 리사 행세를 할 수밖에 없었던 '알렉스(로즈 번)'의 사랑을 중심으로. 매튜, 리사, 알렉스 세 사람 모두 한 도시에 있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세계는 전혀 다르다. 매튜와 리사의 세계는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며 그리워하는 중심에 위치한 세계, 반면 알렉스의 세계는 뒤에 숨어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감추고 사랑하는 이에게 선택받지 못해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변두리에 위치해있다.

 모든 이야기 안에는 주연과 조연이 구분 지어진다.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는 어떤 인물의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등장인물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완성된 사랑인 매튜와 리사의 관점에서 영화를 보면 알렉스는 그저 자신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방해꾼, 또는 악역일 뿐이다. 하지만 불완전한 사랑을 하고 있는 알렉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녀를 마냥 사랑을 방해하는 못된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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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장을 한 알렉스



2) 나도 당신을 사랑했어요.

 분명 중심 이야기는 매튜와 알렉스의 사랑인데도 이 영화를 강렬하게 끌어가는 힘은 알렉스의 짝사랑에서 나온다. 주인공의 해결될 듯 해결되지 않는 안타깝고 간절한 사랑보다 알렉스의 절절한 짝사랑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관객들이 다시 이 영화를 찾는 이유도 매튜와 리사의 완전한 사랑이 아닌 불완전한 알렉스의 사랑 때문일 것이다.

 알렉스는 매튜가 리사를 알기 훨씬 전부터 매튜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의 주변을 맴돌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매번 매튜의 곁만 맴돌다 용기를 내어 매튜가 일하는 가게에 고장 난 카메라를 수리 맡긴다. 우연히 매튜는 알렉스가 맡긴 카메라에 담긴 리사의 모습을 보고 한눈에 그녀에게 빠져버린다. 그는 알렉스가 아닌 리사를 사랑하게 된다. 알렉스는 더 이상 매튜의 마음에 자신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한다.

 영화에서 알렉스가 연극 무대에 오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진한 분장을 하고 연극 속 인물을 연기하는 알렉스의 모습은 매튜의 사랑을 받기 위해 진짜 자신의 모습이 아닌 가짜 '리사' 행세를 해야 하는 그녀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알렉스가 무대에서 뱉는 대사 역시 그녀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아씨는 잘못 보셨습니다. 다시 생각해주세요. 저는 겉보기와 다른 사람입니다. 지금 제 모습보다 나을까요? 저에겐 하나의 마음과 하나의 진실이 있습니다." 마치 매튜에게 자신의 모습을 이해해달라며 간절히 부탁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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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을 바라보는 매튜와 리사



3) 모든 사랑은 또 다른 아픔.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나와 상대방이 세상이라는 무대의 유일한 주인공이 된다. 가끔 다른 사람들은 무대의 주변 인물, 그저 조연일 뿐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로지 서로에 대한 사랑뿐이다. 자신들의 사랑이 누군가에게는아픔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할 수 없다. 이렇게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장면이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매튜는 사랑하던 리사가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약혼자인 '레베카(제시카 파레)'에게 거짓말을 하며 리사를 찾아다닌다. 매튜는 자신이 레베카를 버리면 그녀가 어떤 상처를 입게 될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리사뿐이다. 리사를 향한 매튜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는 아주 낭만적인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러한 낭만적인 사랑때문에 한순간 버림받을 레베카처럼 숨겨진 누군가의 사랑은 버림받고 상처를 입게 된다.

 매튜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주변 인물 알렉스 역시 자신을 사랑하는 '루크(매튜 릴라드)'를 주변 인물로 밀어냈다. 심지어 매튜로부터 사랑을 받기 위해 루크를 감정적으로 이용한다. 루크는 알렉스가 매튜에게 헤어 나올 수 없이 빠져있는 것처럼 알렉스에게 완전히 빠져있다. 하지만 온통 매튜뿐인 알렉스는 루크가 자신으로 인해 안달 나고, 상처받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매튜의 사랑을 얻는 것 뿐이니까. 하지만 우습게도 알렉스는 사랑하는 매튜에게 리사라는 소중한 것을 의도적으로 빼앗으면서 매튜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준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매튜, 리사, 루크, 알렉스 모두 자신들의 '사랑' 때문에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다. 그들의 사랑은 어느 때는 완전한 사랑이라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또 누군가는 불완전한 사랑이기에 상처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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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만난 매튜와 리사


 로맨스 영화 중 명장면으로 꼽히는 리사와 매튜의 공항씬도 흥미롭다. 공항에서 두 사람이 헤매고 헤매다 가까스로 만나는 장면은 다른 드라마, 영화에 자주 등장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는 조금 특별하게 다가온다. '공항'이라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다니며 이별과 만남이 존재하는 공간. 이 공간에서 카메라가 보여주는 것은 드디어 결실을 이룬 매튜와 리사의 사랑이다. 하지만 카메라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들의 사랑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분명 또 다른 사랑이 존재할 것이고, 그로 인한 아픔이 존재할 것이다.

 방금 들은 노래 가사, 어제 본 영화, '사랑'에 관련된 것은 세상에 넘쳐흐른다.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는 이렇게 사랑이 넘쳐나는 가운데 그 사랑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그만큼 똑같이 사랑한다는 것, 그렇게 서로 연인이 되어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이 기적 같은 놀라움을 다시 새롭게 발견하게끔 한다. 또, 영화 제목인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처럼 내가 사랑하는 동안 어딘가에서는 내 사랑 때문에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주변을 더 깊이 둘러보게 된다. 그리고 묻게 된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 '아픔'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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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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