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비겁한 나와 비루한 혹자를 위한 감각 : 연극 < 처의 감각 >

글 입력 2018.03.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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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나, 비루한 혹자


어른이 된 후로 겁이 많아졌다. 예전엔 누군가의 슬픔과 누군가의 괴로움에 함께 오열하곤 했는데, 요샌 공감마저 버겁게 느낀다. 누군가의 고통을 안다. 근데도 가끔 눈을 감고 귀를 막아버린다. 감당하기가 버거워서, 내 안의 약한 부분을 마주하기가 무서워서. 알고 있기에 낮을 비(卑)자가 덧붙는다. 내 겁은 다른 말로 비겁이다.
 
누군가의 내면으로 뛰어드는 일은, 그리고 누군가의 약자성을 마주하는 일은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마주했다간 비루한 인식만 남는다. 나처럼 지레 겁먹어 눈 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의 약자성을 미워하고 규격화하는 혹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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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즐겨보고 있는 옛 시트콤을 예로 들어볼까 한다.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엔 가난한 초등학생이 하나 등장한다. 그는 부모와 생이별하고, 언니가 식모살이하는 집에 얹혀살고 있다. 으레 그 나잇대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갖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매일 짜장면을 먹고 싶어 하고, 깜짝 생일 파티를 기대하고, 집에 친구를 데려오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의 욕망은 현실의 벽에 부딪쳐 굴절된다. 그래서 가끔 떼를 쓰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본 많은 사람들은 그를 ‘염치없다’고 욕했었고, 지금도 종종 그런 댓글이 달린다. 어린 날의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가난을 미워하고, 좌절된 욕망을 미워했다. 적당히 할 수 있는 것만 꿈꾸지. 가난한데 별수 있나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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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현실의 예를 하나 들어볼까. 한 남자가 후원 아동에게 롱패딩을 사준다고 의사를 밝혔다. 아동은 브랜드 롱패딩을 갖고 싶다고 말했고, 남자는 아동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아동이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는 말까지 더해져, 그는 아동이 자신을 기만한다고 생각했다. "감히 의식주가 부족하지도 않은데 내 후원을 받아?" 이런 생각이었겠지. (후원자가 먼저 롱패딩을 제안한 것이고 아동은 유행하는 롱패딩을 골랐을 뿐이고, 실은 피아노도 정부 지원으로 배우고 있었는데 말이다.) 화가 난 그는 이 ‘썰’과 함께 아동의 신상을 인터넷에 게시했다. 거기에 두고 보기도 힘들 정도로 상스러운 비난들이 가세했다. 놀랍게도 2017년의 얘기다. 약자성에 규격이라도 있는 건지, 혹자들은 그 규격을 벗어나기만 하면 약자성에 조롱과 욕을 퍼붓는다. 그리고 "감히~한 주제에"라며 그들의 욕망을 잘라내려 한다.
 
이는 다른 말로 ‘약자 아닌 자가 허락한 약자성’이다. 애초에 약자성을 지닌 누구는 철저히 타자이고, 자신은 '그를 온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시혜의 주체'라고 선을 긋는 것일지도. 혹은 약자의 내면은 내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약자가 아닌 나’, ‘그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나’에 빠진 일종의 나르시시즘일 수도 있겠다. 나는 알고 있기에 비겁하고, 혹자는 도취되어 있기에 비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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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숲에 버려진 한 남자가 동굴에 혼자 살고 있는 한 여자에 의해 목숨을 건진다.
 
그녀는 숲에서 길을 잃은 뒤 한때 곰과 살았고 그와의 사이에서 아기를 낳았으나,
사냥꾼에게 발견되어 아기는 죽고 곰 남편과도 이별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룻밤의 동침으로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된 여자는 그를 따라 도시로 떠나고,
그들을 가정은 꾸리는 평범한 생활을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아내와 자식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에 점점 지쳐가고, 여자는 인간들의 잔인한 본성에 환멸을 느끼며 점점 집안으로만 숨는다.

 
 

되찾아야 할 감각

 
아, 오해하진 마시라. 모두가 비겁하고 비루하단 소리는 아니니.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이 시대 속에 이 비겁하고 비루한 사람들이 현존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7년, 우린 역사의 파고를 넘어왔다. 굴곡진 시대를 향해 무대는 사회적 목소리를 내었고, 여러 힘이 합쳐져 함께 2018년에 당도했다. 그래서 이제 2018년의 무대는 인간의 내면으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한다. 파고를 넘으며 생채기 난 내면은 없는지, 비겁하고 비루해지진 않았는지, 이제 갑옷을 벗고 상처를 살필 때가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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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당하고 비난받아, 결국 숨어버린 약한 성질, 애써 외면하는 약자의 감각. 고연옥 작가는 이를 신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처의 감각>은 곰의 감각을 되찾으며, 약자가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세상, 그래서 약자가 숨어버린 세상 속, 약자의 감각을 찾는다. 이는 약자가 아닌 자의 비난도 아니고, 기만적인 시혜적 태도도 아닐 거다. 규격에 갇힌 약자성은 더더욱 아닐 테다. 오히려 타자의 자리에 선 약자성을 주체의 자리로 복원하는 여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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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의 감각을 되찾는 것은 상처를 감춘 살을 도려내고 다시 새 살을 자라게 하는 수술일 것이니, 비겁한 나도, 비루한 혹자도 누군가의 내면을 마주하고, 곧 자신의 약자성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우린 좀 더 나은 사람, 나은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성찰과 되짚기를 2018년의 테마로 내세운, 남산예술센터의 첫 시즌 프로그램 <처의 감각>에 기대를 걸어봄 직하다.





예매하기 : 남산예술센터  / 인터파크


INTRODUCTION

■ 공 연 명 : <처의 감각>
■ 기    간 : 2018년 4월 5일(목) ~ 4월 15일(일) (월요일 공연 없음)
■ 시    간 : 평일 오후8시 / 주말 오후3시
■ 장    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 주    최 : 서울특별시
■ 주    관 : 서울문화재단, 프로젝트 내친김에
■ 제    작 : 남산예술센터, 프로젝트 내친김에
■ 관 람 료 : 전석 30,000원 / 학생 18,000원
■ 관람연령 : 만13세(중학생)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 120분



CREATIVE STAFFS
 
■ 출    연 : 윤가연, 백석광, 이수미, 최희진, 황순미, 임영준, 최순진, 권겸민, 김정화

■ 스 태 프
작(고연옥), 연출(김정), 무대(김은진), 조명(신동선), 의상(김우성), 분장(백지영),
사운드(지미 세르), 움직임(권령은), 사진(이강물), 영상(박태준), 무대감독(김성철),
조연출(박정호), 기획 어시스턴트(윤영은), 프로듀서(조하나), 인쇄물디자인(디자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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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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