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것도 하나의 사랑입니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3.22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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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이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미술상까지 4관왕을 거머쥐었다.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을 보면 과연 사랑의 모양이라는 것을 하나로 딱 잘라 정의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어떤 모양의 용기에 담기느냐에 따라 항상 모양이 달라지는 물처럼 사랑의 모양도 그렇게 자유로운 것이 아닐까. 셰이프 오브 워터를 보며 느꼈던 사랑의 다양성을 최근 한 노래를 들으며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 자린 그냥 여기 이렇게 멀찍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 는 순 이
순전히 너만을
네가 어디서 무얼하든
이유같은 거 없이 널 좋아하는 이
난, 순이
순순히 너에게
내 시간과 마음을 바쳐
너를 아는 데에 몽땅 써버릴 이
사실 난 바빠 정말이야
일분이초가 모자라는 workaholic
그런 내가 생판 남인 너 때문에
하고 있는 이 짓들을 봐
Becasuse I'm just out of control
한심하다 해도 이 맘을 어쩔건데
지친 내 일상 속에 유일한 에너지
욕을 먹어도 난 좋아
나 는 순 이
순전히 너만을
네가 어디서 무얼하든
이유같은 거 없이 널 좋아하는 이
난, 순 이
순순히 너에게
내 시간과 마음을 바쳐
너를 아는 데에 몽땅 써버릴 이
네가 정말 좋아
어쩔 줄 몰라 나는
네가 정말 좋아
네가 정말 좋아
어쩔 줄 몰라 나는
네가 정말 좋아
망가져도 귀엽게 봐줄게
나쁜 짓만 하지마
많은 걸 바라지는 않을게
손 한 번만 흔들어 줄래
나 는 순 이

선우정아, 순이 中


 마음에 쿡쿡 박히는 가사를 써오던 가수 선우정아의 '순이'. 제목을 보는 순간 이 노래 속에 담긴 이야기를 '아!'하고 짐작하신 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순이, 우리가 흔히 '빠순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나온 순이다. '빠순이'의 정의를 찾아보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운동선수나 가수, 배우 등을 쫓아다니면서 응원하는 여자'라고 되어있다. 이 사전적 정의에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지 않다. 단지 '응원'을 하는 여자라는 의미뿐이다. 하지만 '순이'가 느끼는 감정이 그것뿐일까? 선우정아의 노래에서 순이는 이유도 없이, 어쩔 줄 몰라 하며, 크게 바라는 것도 없이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다 바쳐 그를 알아가는 데 힘을 쓴다. 이런 감정들이 우리가 보편적으로 겪는 사랑의 감정과 큰 차이가 있을까?

 노래 속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심하다'라는 이야기를 하며 '빠순이'와 '빠돌이'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나이가 어릴 때는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딴짓을 한다고, 나이가 들어서는 나이가 들어서 무슨 짓이냐며, 하지만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무리 주변에서 뭐라고 해도 자신의 감정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걸. 헛된 일이라고 조롱하지만 그들에는 이 또한 특별한 사랑의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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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 취하는 행동-말이 많아지고 늘반쯤은 공상에 잠긴 그 상태를 이해하면서도 우리의 수다스러움은 참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일수록 더 절실하다는 걸 알면서요. 원래 타인의 사랑은 웃음거리가 되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거기에 더해 비난의 대상이 돼요. 단지 특수 직업군에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말예요. 우리의 말이나 행동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일이나 혹은 질병처럼 다뤄지지요. (11쪽)


 멀리서 바라보는 수밖에 없는 이 특수한 사랑의 형태를 그린 소설, '환상통'. 한때 나 또한 거쳤던 감정이지만 한 번도 그걸 사랑이라고 여기지 못했다. "팬으로써 연예인을 좋아한다는 마음이 그 크기가 작든 크든 어떻게 '사랑'이라고 불릴 수 있겠어?" 항상 이렇게 생각했었다. 이루어지지 않을 확률이 이루어질 확률보다 많은 이 사랑을, 아무리 사랑을 퍼붓고 관심을 주어도 내가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않는 일방적인 사랑, '팬'이라는 넓고 엄청나게 광범위한 틀에서만 나를 하나의 '집단'으로만 기억하는 사람을 향한 사랑. 이 소설에 담긴 너무나 간절해서 칼로 마음을 후비는 것 같은 아린 문장들을 읽으며 나는 이 또한 하나의 '사랑'이었음을 느꼈다.


 내가 이렇게 비딱하게 연애소설을 봤던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사랑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팬의 사랑은 대중매체가 등장하기 전엔 존재하지 않았던 이상한 사랑이다. 모든 연애소설, 심지어 짝사랑을 다루는 소설에서도 이물은 어떤 방식으로든 상대방과 '관계'라는 걸 맺는다. 그러나 팬의 사랑은 관계 자체가 성립되지않는 사랑이었다. (41쪽)


 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 감정을 겪지 않은 사람이라도 책 속에 비유된 문장들을 읽어나가면 금방 그 감정을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특수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 '사랑'이 갖는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다. 누군가를 짝사랑했던 기억이 있다면 '환상통' 속 안에 차곡차곡 쌓인 문장들이 조금씩 마음을 헤집어놓으며 이것 또한 '분명한 사랑'임을 강렬히 느낄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끼는 존재가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닌 네 손톱 길이에, 추운 날 드러난 발목에 신경을 쓰는 것처럼 너도 마찬가지일 거였다. ······ 나는 이 모든 것을 알았고 내가 그중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견뎠다. 나는 구석에 앉은 얌전한 학생. 손을 들어 주의를 환기하기보단 조용히 앉아 나를 들키길 희망했다. 그러나 기대는 배반되기 마련이고, 나에겐 방과후 면담도, 하굣길의 우연한 만남도 없었다. 나는 속내를 숨긴 채 책상 위로 엎드리다가, 점점 너의 눈에서 멀어졌다. 복도에 늘어선 검은 머리 중 하나가 되었다. (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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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과 스타의 사랑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랑이라며 구구절절 슬픈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생각보다 그 결과가 좋았던 이야기들도 있다. 실제로 배우 박해일은 연극배우 시절 자신의 팬이었던 부인과 결혼했다. 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으며 결혼했던 송혜교와 송중기 역시 학창시절 송중기의 이상형이 줄곧 송혜교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팬과 스타와의 사랑이 마냥 반쪽짜리 사랑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또 다른 성공적인 스타와 팬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1999년 개봉한 영화 '노팅힐'에서 런던 노팅 힐에 사는 평범한 남자 '윌리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 '안나'와 우연히 자신의 책방에서 마주치게 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는 그녀가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다가간다는 것 자체를 주저하기도 하며 여러 우여곡절을 겪는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모든 시련을 지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팬과 스타의 사랑, 주변에 흔히 널려있는 것 같으면서도 사랑의 종류를 나눈다면 아주 특수한 곳에 위치한 사랑의 유형. 열렬히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 순간이 있었던 것처럼, 그 대상에 내 앞에 좀 더 멀리에, 손 닿기 어려운 곳에 있을 뿐 '순이'의 사랑도 '사랑'이다.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며 화를 내고 손가락질하며 쯧쯧거릴 일도 아니다. 그들은 사랑에 빠진 것뿐이다. 아주 열렬하고 특별한 사랑에 말이다.





이미지 출처
'환상통' 표지 문학동네 홈페이지
영화 '노팅힐' 스틸컷 - 네이버 영화




[김하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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