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기타]

집단과 옳고 그름의 문제, 신념 지키기의 어려움, 그리고 권태
글 입력 2018.03.1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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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오피니언에 일기 같은 글을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쓰더라도 최대한 특정 문화예술 컨텐츠와 연관지어서 글을 쓰려는 편이며, 누군가가 얻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가 있어야 한다는 주의이다.
 
 그런데 요즘은 정말 나의 내면이 뒤흔들릴 정도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어서, 내 손으로 쓰는 글에 내 아픔이 스며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오늘 오피니언에서는 내가 최근에 겪은 일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고, 이를 통해 겪은 감상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구체적인 상황을 이야기 할 수는 없겠지만, 이 글을 읽는 분이 있다면 나의 에피소드를 통해 본인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1. 집단과 옳고 그름의 문제


" 나는 동아리를 나왔다. "


 이렇게 한 마디로 얘기하면 정말 하찮고 귀여워보일 정도로 내가 겪은 일이 아무것도 아니며, 대학 안에 갇힌 한낱 대학생이 부리는 투정 쯤으로 보일 것이다. 나의 생활에서 크게 변화된 지점이라 한다면 3년 간 몸담고 있던 동아리를 나왔다는 것, 그것 하나이다. 하지만 그 전후로 나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듣고 나면 표정이 일그러지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게 일어난 일들이 워낙 많은데다 예민한 문제까지 겹쳐있어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겪은 여러가지 문제 중 가장 큰 것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내 신념을 시험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윤리에 비추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했을 때에도 옳지 못하다고 생각되면 내가 속한 집단을 바꿔야한다고 생각하고, 만약 온건한 방식으로 바꿀 수 없다면 내가 그 집단에서 나와야한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 발로 이 집단에서 나왔고, 아끼던 많은 사람들과 한 번에 연을 끊었다. 내가 가장 아끼던, 동아리의 간부에게도 동아리를 나올 것을 권유했지만 그 친구는 동아리가 현재 하고 있는 방식이 부당하다는 것을 어느정도 인정하면서도 본인의 책임을 다하는 쪽을 택했다.

 나는 집단이란 그 구성원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마치 지난 글에서 이성과 감성을 놓고 이야기했을 때처럼, 규율과 통제, 집단의 대표자에게 주어지는 힘 등은 구성원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 집단이 그 역할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고, 나에게 맡겨져 있던 모든 책임과 계획을 내팽개쳐둔 채로 나왔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정말 많은 사건과 고통이 있었지만, 단편적으로 보면 그랬다. 다른 일들을 다 제쳐놓고 이 상황만 보고 판단한다면, 동아리 내에서 내게 맡겨진 의무를 다 하지 못하고 나왔다는 점에 대해서는 달리 변명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 간부인 후배와도 연을 끊게 되었지만, 나는 그 후배의 선택도 이해한다. 집단이 옳지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해도 본인에게 맡겨진 책무를 이행하는 것 역시 책임감 있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만약 집단이 내린 결정에 불복했다면 그 친구 역시 집단 내에서 무책임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고, 소외되었을 것이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물론 나의 경우에도 다른 여러 일들이 겹치지 않았더라면 집단의 잘못된 결정에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서 나는 집단의 결정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자였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했다. 집단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여러분은 구성원으로서 침묵한 채 그 결정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집단을 박차고 나올 것인가? 둘 다 아니라면, 끝까지 남아 집단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혼자 싸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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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자는 것조차 힘들다고 하니
룸메이트가 만들어 준 드림캐처.



2. 신념 지키기의 어려움

 동아리 입장에서는 우발적으로 갑작스럽게, 나의 입장에서는 3년 간 속에 쌓인 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집단을 박차고 나오자 동아리에서는 나에게 공식 입장문을 보내왔다. 내가 아주 무책임하며, 큰 잘못을 했고, 동아리 차원에서는 왜 내가 그런 돌발적인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고, 동아리 내 공지방에도 그 글이 걸렸다고 한다. 동아리를 나온 것을 후회하고 있던 내 생각은 그 원망조의 입장문을 받아본 뒤로 '애초에 이 동아리에 왜 들어갔을까', '왜 일이 터질 때마다 참고 혼자 남아있었을까'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상황 설명을 구체적으로 해주지도 못하면서 이런 식의 내 입장만 일방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매우 비겁한 짓이다.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겠다.


상대의 말과 행동에 귀를 기울이기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말하기
표현에 신경쓰기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기


 등의 단순한 신념들은 초등학생들도 알지만 지키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왜 그것을 지키기가 어렵느냐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상대는 나를 전혀 배려해주지 않는 것 같은데, 어째 나만 상대를 배려해주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땐 참기 어려운 온갖 유치한 감정이 든다. '왜 나는 이렇게까지 신경쓰는데, 너는 내 반의 반만큼도 나를 신경쓰지 않아?'라는 식의 속마음. 세상 사람들이 다 나 같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인내심을 잃고 배신감에 휩싸이고 만다.

 나에게 입장문이 온 그 날 밤, 나는 다시는 인간을 믿지 않겠다고, 이렇게 내 선의를 배반당한 건 처음이라고 친구에게 울분을 토했다. 몇 일 간 정말 세상이 뒤집히고 눈 앞이 다른 색깔로 보일 정도로 힘들었다. 스스로 자기 검열이 심하다 보니 주변에 내 얘기를 하면서도 '어차피 객관적이지도 못할 내 입장만 얘기하고 있으니 설득력 있게 들리지도 않겠네' 싶어서 괴로워 했다.

 하지만 나는 곧 정신을 차렸다. 여전히 집 밖에 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괴롭지만,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신념을 지키겠다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 마음을 지킨 데에는 내 편 들어서 좋을 것 하나 없는 이 상황에서마저 내가 옳다고 확신을 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3. 동아리를 나와보니 ... 권태. 나의 세상이 얼마나 좁았던가


"왜 내가 자신을 비틀고 괴롭히는지 물어보시라. 대답은 내가 아무 할 일도 없이 너무 무료했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렇다. 여러분 자신을 잘 관찰하면, 그것이 사실임을 이해할 것이다. 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모험을 생각해내고 내 삶을 만들어나갔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일부러 화를 냈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 여러분, 이 모든 것은 권태, 권태 때문이다. 무력감이 날 짓눌렀다."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 중


 동아리를 나왔다고 친구에게 말하자, 친구가 놀라며 말했다.


"그 동아리, 거의 네 인생의 전부 아니었어?"


 생각해보니 그랬다. 나는 3년 동안 내 정신력의 80%를 이 동아리에 쏟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동아리 일에만 몰두하며 살았다. 그래서인지 초기의 2~3일 동안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았다. 내 세상의 거의 전부가 동아리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친구의 말을 듣고 나니 집 안에 틀어박혀 있던 나날 동안 나를 괴롭힌 것은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과 개인적 힘듦보다도 권태였음을 깨달았다. 무엇을 해도 재미 없고 심심했으며, 나는 계속 동아리에서의 일들만을 곱씹으며 살았다. 여태까지 거기에만 온 신경을 쏟고 살았으니 오죽 안 허전하겠는가. 3월 이 시기도 가장 바쁜 시기 중 하나인데, 갑자기 모든 일이 취소됐으니 그 무력감이 날 힘들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아리를 나오고 나서야 나는 조금 깨인 느낌이 들었다. 바쁘다며 늘 거절했던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이 떠오르고, 등지고 살았던 과 생활이 눈에 들어왔다. 진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이렇게 혼자 슬퍼만 하고 있으면 나만 손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그들은 전부 내가 바쁘다며 충분히 마음 써주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또 나에게 상처되는 것들만 붙잡고 있었구나. 동아리만 하지 말고 시야를 좀 넓게 가지라고 했던 부모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러고 있다고는 했지만, 아예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시야를 넓히려는 건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시도할 시간이 많이 생겼다. 때로는 본인이 몸 담고 있는 환경을 의식적으로라도 바꿔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어떤 강연자의 말이 기억났다. 실로, 체감했다.

*

 내 세상이 뒤집히던 그 날, 아트인사이트의 해서님이 써주신 내 인터뷰를 켜놓고 한참을 오열했다. 그는 매사에 쿨하지 못한 나를 강한 사람으로 표현해주었다. 그 표현이야말로 나의 결정과 생각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해주었고, 나를 강하게 해주었다. 별 볼일 없는 나를 인터뷰 해주셨음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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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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