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깊은 밤, 잠 못 드는 이름에게

글 입력 2018.03.02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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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오늘은 처음으로 (그리고 아마 마지막으로) 구어체 글을 써볼까 해요. 지면에는 분명한 언어와 정합적인 사고로, 글을 싣고자 노력하지만, 오늘 건넬 이야기엔 그런 게 없거든요. 저에게 닿은 질문과 제가 답할 답변에는 분명함과 확고함이 없기에, 편하고 주관적이고, 어쩌면 도움 안 되는 글을, 한 자 한 자 적어보고자 합니다. 저에겐 다소 불편하고 남세스러운 작업이지만, 이야기를 건네기 위해서라면 별수 있나요.
 
깊은 밤, 잠 못 드는 이름에게. 산 중 누군가에게 닿는 편지일 수도, 저에게 되돌아오는 메아리일 수도 있겠네요.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요새 가장 즐겨 듣는 이랑의 <신의 놀이>라는 곡인데요.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후렴이 제게 쿡 박혔습니다. 문학, 영화, 드라마, 공연 등, 다양한 장르에서 이야기는 수없이 생산되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좋은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 갈증이 채워지지 않아, 때로는 거센 언어로 작품을 비판하기도 했어요. 더 좋은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길 바라고, 더 좋은 이야기가 인간 이해의 외연을 넓혀주길 바라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답답하고 아쉬운 마음만 들었더랬죠. 이런 저에게 누군가는, 제가 공연장으로, 문학 속으로, 이야기 속으로 도피하는 거라 말하더군요. 근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어요. 숫자의 세계, 실용의 세계, 세일즈의 세계와 멀어졌을진 몰라도, “저는 이 속에서 마냥 행복하고 즐겁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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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어렵고 복잡할지 몰라요. 이야기를 만나는 건, 긴 줄을 돌돌 허리춤에 둘러매고, 타인의 삶 속으로 번지점프를 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이해하기 힘든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하고, 내 내면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인정해야 하니까, 더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세계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길 기다리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세계를 재미있게, 깊게 보여주는 것, 그게 현대의 이야기가 풀어야 할 실뭉치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이야기 속으로 쉽게 빠져들 수 있도록, 장르적 재미가 있어야 하겠고요. 기꺼이 빠져들었다면, 그들이 만나는 게 얕은 물웅덩이는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에 익숙한 사람도,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즐겁게, 감동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가장 사랑합니다. 좋아하는 뮤지컬을 물으시기에, 하나 답하자면, 제겐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그래요. 대중적 재미를 지녔으면서도, 꿈과 현실에 대한 깊은 사유까지 보여주다니! 장르적으로도, 서사적으로도 참 잘 만든 뮤지컬이라 생각해요. 한 아이의 성장 서사에 어떻게 사회상과 장르와 메시지와 재미를 꿸 수 있는지. 보고 나오면, 이야기가 가진 힘을 절로 실감하게 되더라고요.

 
 
좋아하는 것으로 먹고 살기

 
<빌리 엘리어트>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모두가 댄서가 될 순 없잖아.” 형 토니가 빌리에게 건네는 말인데, 요샌 저 대사가 그렇게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 세상으로 도약하려는 빌리와 적성도 모르고, 취향도 없이, 다시 탄광 속으로 내려가야 하는 토니의 대비에서, 참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최근의 고민과 닮아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겠지요.


크기변환_1발레스쿨로 떠나는 빌리와 탄광으로 돌아가는 광부들.jpg
  

빌리가 발레리노를 꿈꾸는 것처럼, 저는 이야기로 밥 벌어 먹고살고 싶습니다. 글 쓰며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현장에 계신 분이 이렇게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잘 생각해봐요! 좋아하는 걸 마냥 좋아하는 걸로 남겨두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를 거예요. 그 필드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건 취미가 아니라 일이 되는 건데, 지금처럼 마냥 즐길 수 없어요. 그리고 문화예술계는 앞으로도 계속 밥 벌어먹기 힘들 거예요. 그냥 다른 일로 돈 벌고, 좋아하는 건 취미로 남겨둬요.” 그리고 지금은 이 얘기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을 거라고 덧붙이셨어요. 맞아요. 지금은 잘 들리지 않아요. 그런데, 새벽만 되면 내내 귓가에 맴돌아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마냥 좋아하지 못하겠다는 슬픔, 그럼에도 이것 말고는 하고 싶은 게 없고, 이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불행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밤마다 깜깜한 공기 속에 감정의 입자들이 유영해 잠들기 힘들어요. 진짜, 정말, 우리,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하지 못할까요?
 
답을 하라면,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어요. 쉽게 대답하기도 어려워요. 근데 한 가지, 1년의 탕아 같은 휴학 생활을 하면서 실감한 건 있어요. 누구 말마따나, 몰락도 제가 선택했다면 실패는 아니라는 거. 제 자유도, 제 방황도 모두 제가 선택하고 결정했으니, 적어도 패배는 아니라고 그렇게 위로하고 있어요.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 해보는 것, 그게 내 스펙에 도움 되지 않더라도, 취준생 입장에선 쓸모없는 것들이라도, 일단 하고 싶다면 해보는 것. 이 휴학 생활의 마인드가 지금까지 이어져 버렸는데, 이게 독일지 득일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모두가 댄서가 될 순 없는’ 세상에서 한 번의 피루엣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프다면, 힘들다면, 그때 멈추면 되지 않을까요. 너무 치기 어린 의지일까요.
 
 
 
잠 못 드는 이름에게

 
이런저런 얼굴을 떠올리다 보면, 잠들기는 더 힘들어져요. 한 친구는 교환학생을 가 있고, 한 친구는 첫 직장을 얻었습니다. 다른 친구는 이직을 준비하고, 또 다른 친구는 공시를 준비 중입니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한 친구도 있고, 애초에 취향이나 적성보단 돈과 안정성을 선택한 친구도 있어요. 그리고 꿈을 위해 정진하는 친구도 있어요. 그럼 나는? 나는 어쩌지, 이러다 올해도 취업 못 하는 거 아니야, 남들 다 달려가고 있는데 나만 혼자 뭐하지, 내가 너무 현실감 없이 사는 건 아닐까, 돈을 못 번다면 좋아하는 일마저 싫어지진 않을까. 당장 할 수 있는 건 잠드는 것밖에 없는데, 잠자고 일어나 무언가를 하면 되는 건데, 잠이, 생각이 어디 제 맘대로 되나요.
 
뜬눈으로 지새우는 밤이 제 것만은 아닐 거라 생각해요. 아마 깊은 밤, 닫힌 창문들 안엔, 잠 못 이루는 이름들이 불안 시계를 안고 있지 않을까요. 째깍, 째깍 커다란 초침 소리는 불안을 만드는데, 언제 뻐꾸기가 고개를 내밀지, 언제야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지, 기약 없는 초침만 흐르는 불안 시계요. 오늘은 꺼져 있길 바라지만, 이것 역시 제 맘대로 되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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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의 <밤편지>에선, 타인의 숙면을 빌어주는 게 사랑이라 말해요. ‘좋은 꿈이길 바라요’란 한 마디에, 내 밤이 편안해진다면, 그건 더할 나위 없는 마법이겠죠. 나의 밤에도, 당신의 밤에도 좋은 꿈이 깃들길 바라지만, 잠 못 드는 우리의 밤도 그 나름대로 가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요. 언젠가 뻐꾸기가 나오는 한순간이 아니라, 초침이 가는 1분 1초가 소중하게 느껴질 때, 그때 되돌아본 우리의 새벽은 분명 가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어요.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좋아하는 것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잠 못 들고 있는 이 밤도 언젠간 긍정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렇게 기대하고 싶어요.

오늘도 긴 새벽이 될 것 같아요. 깊은 밤, 잠 못 드는 이름이. 
  

괜찮아질 거라고,
기나긴 시간이 흐르면
우리에 대해, 또 자신에 대해,
이 어렵고 불안했던 순간들을 이해할 것이고
지금의 잠 못 이루는 밤들도
가치가 있었다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50년,
아니면 500년 후에
이 시절을 사는 사람들은,
그 시간들로 더 행복하고 현명해질 것이다.

그러니 괜찮아,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질 거야.

마치 먼 미래에
이미 모든 것을 거친 내가
날 위로하듯 다정한 속삭임. 위안처럼.


연극 <프라이드> 1막 1장 中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뮤직, 신시컴퍼니, 아이유 <밤편지> 뮤직비디오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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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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