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오페라!] 복수하라, 엘렉트라

오페라를 읽어봅시다
글 입력 2018.03.01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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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뭐 그런 이름들인가봐요.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라고 불리는 사람들 말이에요. 거의 3500년 전 살았던 사람들의 이름이 아직도 전해지는 걸 보면 중요한 사람들이긴 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해드릴 이야기는 이 세 명의 사람들이 모두 한 번씩 거쳐 갔던 이야기에요.
 

03엘렉트라.jpg
 

엘렉트라의 이름을 들어 보셨나요? 오레스테스나 아가멤논, 아니면 트로이 전쟁은 어떠세요?
 
고대 그리스와 트로이 간의 기나긴 전쟁. 그 끝에 그리스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의 손에 의해 죽고 말죠. 아가멤논의 딸, 엘렉트라는 그 모습을 똑똑히 목격하고 복수를 다짐합니다. 그리고 결국 동생 오레스테스의 손으로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게 하지요.
 
자식이 어미를 죽이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호프만슈탈의 희곡 <엘렉트라>(1903)에 관심을 가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 의해 오페라로 제작됩니다. 배경은 고대 미케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엘렉트라는 노예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아가멤논의 이름을 부르며 처절히 복수를 다짐하고 있었지요.
   

엘렉트라의 아리아,
혼자야, 오, 난 혼자야
(Allein! Weh ganz allein)


혼자야! 오오, 난 혼자야. 아버지는 떠나셨다. 차가운 무덤 속에 파묻혀서… 아가멤논, 아가멤논! 어디 계신가요 아버지. 제 눈 앞에 나타나실 수 없나요?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그때가 왔어요. 그들 ─당신의 아내, 그리고 그녀와 한 침대에서, 왕의 침대에서 잠을 자는 그 남자─, 그들이 당신을 도살했던 때! 그들이 당신의 욕실에서 당신을 살해했습니다. 당신의 눈에 피가 넘치고 당신의 욕실이 당신의 피로 물들었지요!
 
……
 
(4분 15초) 아가멤논!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저를 이리 혼자 내버려두지 마세요! 당신의 날이 올 겁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처럼, 수백 명의 피가 당신 무덤에 흩뿌려질 날이 올 겁니다! 뒤집힌 항아리에서 물이 쏟아지듯, 살인자들의 몸에서 피가 쏟아질 겁니다!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나면 당신의 무덤 앞에서 춤을 추겠나이다. 춤추는 날 보는 사람들이 말하겠지요! 이곳에서 한 위대한 왕을 위해 성대한 잔치가 열리고 있노라, 그 사람은 행복하리라. 자식들이 그의 무덤 주위로 저렇게 승리의 고귀한 춤을 추고 있으니!


비참한 처지에 처했으나 엘렉트라의 복수심은 형형히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복수를 노래하며, 아가멤논의 무대 앞에서 춤을 추겠다 외치는 그녀는 광적인 희열에 차 있는 듯도 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면 엘렉트라의 복수는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아가멤논을 위함인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오페라에 행복은 없습니다.
 
복수를 다룬 예술 작품은 무수하나, 복수에 사로잡힌 존재가 행복해질 수 없음은 일종의 불문율처럼 지켜져 왔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는 명제, 혹은 ‘누가 죄인인가’하는 물음 때문이었지요. <엘렉트라> 역시, 사실 엘렉트라의 복수 이전에는 그녀의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복수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 출전 당시 항해를 위한 바람이 불지 않자 맏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고 출항합니다. 또한, 원래 신화에서는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아가멤논의 부인이 된 것은 그녀에게 반한 아가멤논이 그녀의 남편과 아이를 죽이고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서술하지요.
 
그렇다면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아가멤논을 죽인 것은 단순히 자신의 외도를 덮기 위해서라기보다 복수를 위한 것이라고 해석할 때 더욱 타당해집니다. 자신의 딸과 자신의 삶을 파괴한 아가멤논에게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죽음으로 복수했습니다. 그녀는 이것이 또 다른 복수를 부를 줄 몰랐겠지만,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복수는 결국 고통을 낳았습니다.


“나는 악몽을 꾼단다. 현명한 엘렉트라, 해결책을 알고 있니?”
 
“꿈을 꾸시나요, 어머니?”
 
“그래. 내가 누워있을 때면 무언가가 내 위를 짓누른단다. 그것은 언어도, 고통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지. 그러나 그것이 너무나 두려워서 내 영혼은 목매달길 바라고, 차라리 죽여 달라며 비명을 지르지만 나는 살아 있단다. 이 몸은 아프지조차 않지! 살아 있으면서 죽어 없어질 수 있을까? 나는 환자도 아닌데 산 채로 바스라져. 그리고 꿈을 꾼단다.”
 
“정해진 제물이 도끼 아래 떨어지면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겠지요.”
 
“어떤 제물을 말하는 거니?”
 
“여자, 그리고 남자!” (엘렉트라, 웃는다)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짓누르는 것. 그것은 죄책감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겁니다. 혹은 복수의 뒤를 따라올 복수에 대한 어떤 예감일지도 모르지요. 이미 어미와 딸의 관계는 완전히 파탄나, 어머니의 앞에서 당신 자신과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겠노라 암시하는 엘렉트라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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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렉트라 역으로 분한
크리스틴 괴르크(Christine Goerke)

 
희곡 <엘렉트라>의 원작자 호프만슈탈은 프로이트와 동시대를 살았고, 이에 따라 프로이트의 <히스테리 연구>에 나타났던 병리적 증상들이 엘렉트라에게 많이 투영되어 있었습니다. 엘렉트라의 모습은 작품 내내 극도로 신경질적이고 짐승과도 같은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자연히 오페라 <엘렉트라> 역시 극 내내 긴장과 불안의 분위기가 지배하지요.
 
불안감의 끝은 비극입니다. 엘렉트라는 마침내 복수를 성공하지만, 오페라 <엘렉트라>의 결말에서 엘렉트라는 미친 듯 춤을 추다 쓰러져 죽고 말거든요. 또한 신화에서는 어머니를 죽인 아들을 용서할 수 없었던 복수의 영혼 에뤼니에스에 의해 오레스테스마저 실성하고 맙니다. 그러니 복수가 진정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모두가 죽고 나서야 끊어지는 복수의 고리는 관객에게 충격을 선사합니다. 증오가 들끓는 공간, 유혈이 낭자한 공포를 유쾌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엘렉트라>는 이처럼 행복을 위한 이야기가 아닌데도 왜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는 걸까요? 충격과 공포가 인간에게 선사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해봄직 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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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 화병에 남은
<엘렉트라>의 아이기스토스 살해 장면
 

이야기의 끝에 살아남은 것은 복수를 거부하고 사랑을 믿었던 엘렉트라의 여동생, 크리소테미스 뿐입니다. 그러나 모든 형제와 부모를 다 잃은 그녀의 삶 역시 순탄치는 않았겠죠. 복수를 이룬 자의 희열은 잠시, 남아 있는 자에게는 절망이 잠식하고, 복수와 행복을 동시에 이룰 수는 없는 걸까요? <엘렉트라>를 읽다 보니 복수를 이룬 주인공이 행복해지는 작품이 보고 싶은 날입니다.
 
욕망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이 천박하게 여겨지던 시대에 놀랄 만큼 노골적이었던 <엘렉트라>. 사람들이 미처 드러내지 못했던 어두운 감정을 전시함으로써 모두를 사로잡은 광기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죽이지. 사랑을 알지 못한다면 아무도 죽지 않아." ─이상 오늘의 오페라, <엘렉트라>였습니다.





※이 글에는 개인적인 감상과 오역·의역된 내용이 다수 들어가 있으며, 필요에 따라 원작 내용의 편집이 이루어졌음을 알려드립니다.※




[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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