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놀면서 자란다

연극 '거인 이야기' 리뷰
글 입력 2018.02.05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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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게 뭔데요?'


최근에 친구의 사촌동생이 유투버로 활동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직 초등학생인데도 스스로 영상을 찍고 그걸 인터넷에 올리기까지 한다는 게 신기하다고 했더니 의외로 그 또래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서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뚫어져라 바라보는 아이들을 심심찮게 본다. SNS를 시작하는 연령대도 점점 낮아지는 것 같다. 중, 고등학생은 그렇다 치더라고 유치원생과 초등학생까지 스마트폰에 푹 빠진 모습을 보며 우리는 매일 놀이터에서 뛰어놀면서 자랐는데 요즘 아이들은 놀 줄을 모른다는, 괜한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이 있었던 요즘 아이들은 그런 우리를 보며 의아해 할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노는 것이 노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하는 게 노는 건데요?'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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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이야기> 역시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데 익숙한 요즘 아이, '이준이'가 주인공이다. 아빠와 둘이 살고 있는 준이는 회사일로 귀가가 늦는 아빠 때문에 집에 혼자 있는 중이다. 텅 빈 집에서 친구가 되어주는 건 스마트폰뿐이다. 뒤늦게 귀가한 아빠가 집에 오자마자 스마트폰을 빼앗으며 잠들 시간이라 말하니 준이는 토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 준이를 위한 아빠의 처방은 바로 아빠표 재미있는 이야기다. 작은 아이 준이와 커다란 거인의 이야기가 아빠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이야기 속에서 준이가 덮고 있던 이불은 어느덧 높은 산이 되고 준이의 손가락은 자그마한 사람이 된다. 중후반부부터는 원근법을 활용한 그림자 연출도 볼 수 있다.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펼쳐 보이는 이야기는 관객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인상적인 부분은 아빠가 가져간 준이의 스마트폰 역시 이야기에 중요하게 활용된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끼어든 스마트폰 안에는 준이의 모습이 담겨 있다. 거인에 비해 압도적으로 작은 준이를 표현하기 위해 스마트폰은 안성맞춤이다. 스마트폰 속에서 움직이고 말하는 준이는 물론 미리 녹화해 둔 영상이지만 배경이 검은색이라서 정말 거인과 만난 작은 아이를 실시간으로 보는 듯하기도 했다. 저런 식으로 스마트폰을 활용한다면 스마트폰 역시 훌륭한 놀이도구가 될 수 있겠다 싶었던 재미있는 연출이었다.



작아진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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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초반, 준이에게 거인은 무서우면서도 대단한 존재다. 몸집도 목소리도 큰 거인은 못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준이가 힘겹게 올라온 산을 거인은 성큼성큼 몇 걸음만에 내려온다. 마을로 내려온 거인은 사람들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 준다. 그러나 처음에는 고마워하던 사람들이 점점 거인이 베푸는 선행에 익숙해지면서 거인을 귀찮게 생각하거나 심지어 무시하기까지 한다. 거인을 마을에 데려온 준이조차도 예전만큼 거인을 챙기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냉대 속에서 거인은 점점 크기가 작아진다. 어느새 준이보다도 작아진 거인에게서 예전의 위풍당당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준이는 깜짝 놀라지만 우리는 거인이 갑자기 확 줄어든 게 아니라 서서히 변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조금씩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준이의 도움으로 거인은 다시 원래 모습을 되찾지만 마을에 계속 있을 수는 없다. 거인과 준이는 작별 인사를 나눈다.

작아진 거인은 우리 주변의 어른들을 떠올리게 한다. 어렸을 때 그렇게 커 보이던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나와 별 차이 없는 그저 한 명의 사람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면 씁쓸한 기분과 함께 부담감이 든다.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던 거인이 사라지고 이제 스스로가 다른 누군가의 거인이 된 것 같아서이다. 저 밑에서 올려다보는 거인은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이 위대하지만 거인은 알고 있다. 지금껏 봐 왔던 거인들처럼, 자신 역시 점점 작아지다가 떠나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언젠가는 모두 거인이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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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한바탕 즐겁게 논 준이는 기분 좋게 잠이 든다. 노는 게 뭐냐는 처음의 질문에 준이를 비롯한 요즘 아이들은 우리와는 다른 대답을 할 것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아이들의 놀이문화 또한 자연스레 변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분명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란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며 세상 속의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스마트폰을 활용하든 손가락으로 그림자 놀이를 하든 그 안에 놀이의 본질이 살아 있다면 괜찮다. 언젠가 아이들은 이야기에서 나와 진짜 거인이 될 테지만 그 전까지 수많은 놀이는 아이들과 함께할 것이다.

아빠가 들려준 거인 이야기는 준이도 언젠가 거인이 될 거라는 말과 함께 끝난다. 물론 준이는 지금 당장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훗날 의무와 책임을 잔뜩 짊어진 거인이 되었을 때 준이는 그 옛날 아빠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잘 놀고 잘 자자. 이 따뜻한 이야기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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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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