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명작의 품격을 발산하다, '불후의 명작展'

글 입력 2018.01.28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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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에 '불후의 명작' 전시회에 다녀왔다. 이번 전시는 생각보다 관람이 일찍 끝났다. 김기창의 작품이 많이 전시된다고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몇 점밖에 전시되어 있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석파정 서울미술관을 통해 교과서나 뉴스로만 접했던 훌륭한 작품들을 이곳에서 직접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닿아 정말 좋았다. 그리고 전시를 둘러보며, 인상깊었던 작품들에 대한 소감을 적어볼까한다.

첫 번째에 눈에 띄었던 작품은 김기창의 '아기예수의 탄생'이다. 마치 살아있는 듯한 생생함과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듯한 선들이 돋보인다. 그림으로 보아 그의 성격이 얼마나 꼼꼼하고, 세밀함을 추구했는지 추측해볼 수 있었다. 또한 당시 아기의 탄생은 어디에서 이루어졌는지 이 그림을 통해 이루 짐작할 수 있었다. 지푸라기 같은 것들이 한껏 놓여진 소 외양간에서 아기예수의 탄생을 맞이한 여인이 인상깊었다. 그리고 아기예수를 바라보는 여인들의 시선들이 애틋해보인다. 마치 아기예수의 축복을 바라고 있는 모습으로 유추된다. 여기서 신기했던 점은 닭, 당나귀. 소도 아기예수와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에서는 보기 흔치 않은 광경이다 보니, 더 신기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엔 자연과 동물과 함께 어우러진 삶이 공존하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그림이었다.

두 번째는 김환기의 '산' 작품이다. 울퉁불퉁한 제각각의 선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 모양을 띤다는 점이 놀라웠다. 우리가 형식적으로 알고 있던 '초록색'을 띤 산이 아닌, '어두운 파란색'을 띤 산이라는 점을 나타냈다. 마치 우리의 분주함을 보여주는 생기있는 시간이 아닌, 모두가 잠들어 있는 고요한 새벽을 그려낸 느낌이었다.

세 번째는 도상봉의 '정물' 작품들이다. 1954년에 어떻게 정물을 탄생시킬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마치 인쇄용지에 대고 그려댄 그림같이 구도, 명암, 형태, 채색 등 뭐 하나 빠짐없이 훌륭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 마음을 다스렸을지 상상이 될 정도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우아함이 머무는 느낌이다.

네 번째는 박수근의 '우물가' 작품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따뜻함이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다. 어두운 배경에 그려놓은 일상들이 비록 소박해보일지 몰라도, 멀리서 관찰하면 단란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모습이다. 그의 작품들 다수가 어두운 색채로 이루어져 있지만 가족이라는 모습 자체에서 주는 온기가 느껴진다.

다섯 번째는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작품이다. 일단 제목부터가 신선했다. 왜 그녀는 제목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라고 정하게 되었을까. 뭔가 반틈 정도의 페이지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유추했다. 책에서 100페이지가 있다면 50이 반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데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알아본 바로는 그녀가 만 49세가 되는 해에 아프리카 여행을 떠올리며 제목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또 의문점이 하나 생겼다. 왜 그녀는 그림에 자신을 투영시켰을까.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니, 그녀는 자신이 떠난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산을 배경으로 초원 위에 여러 동물들을 그려 넣고, 코끼리 등 위에 웅크리고 앉은 나체 여인을 그렸다고 한다. "고독과 상념에 잠긴 채 코끼리 등에 엎드려 있는 나체 여인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녀는 50대라는 문 턱 앞에 마주한 나의 또 다른 복잡한 심정을 그려낸 것이 아닐까한다.

마지막으로는 이중섭의 '황소' 작품이다. 성난 황소가 뼈들을 곤두세워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한 모습을 잘 포착한 듯하다. 살아있는듯한 생생함을 안겨주고 있다. 황소의 골격이 다 드러날 정도로 말랐지만 의지 하나만큼은 굳세다는 것을 보여주는 느낌이다. 그의 작품들을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선 표현에 능수능란함을 지닌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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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개요 >


□ 전시명  : 불후의 명작 ; The Masterpiece 展

□ 전시기간 : 2017년 12월 08일(금) - 2018년 6월 10일(일)

□ 전시장소 : 서울미술관 제3전시실

□ 참여작가 : 김기창, 김환기, 도상봉, 박수근, 유영국, 이중섭, 천경자

□ 관람시간 : 화요일 ~ 일요일 (매주 월요일 휴관) 
10:00 - 18:30 (전시마감 1시간 전까지 입장가능) 
석파정 관람시간 10:30 - 17:30 (전시마감 1시간 전까지 입장가능)

□ 티켓가격 : 성인 : 9,000원 / 대학생 : 7,000원(학생증 지참) / 학생(초/중/고) : 5,000원(학생증 지참) / 미취학 아동(3-7세) 3,000원 / 우대 7,000원 (65세 이상, 국가유공자, 장애인 복지법에 의한 장애인 및 장애 3급 이상 장애인의 동반자)

* 단체관람 20인 이상 20% 할인 (단체관람예약 02-395-0100)

* 문화가 있는 날  l  관람 요금
  성인 | 4,500원
  대학생 | 3,500원 (학생증 지참)
  학생(초/중/고) | 2,500원 (학생증 지참)
  미취학 아동(3-7세) | 1,500원

* <문화가 있는 날> 은 매월 마지막 수요일에 진행됩니다.

* 단체/우대 등 기타 중복 할인은 없습니다.

□ 주최 : 서울미술관







< 전시 구성>



운보 김기창(金基昶) (1913-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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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창, 아기예수의 탄생, 1952-1953, 비단에 채색, 63x76cm )

 
나는 세상의 온갖 좋고 나쁜 소리와 단절된 적막의 세계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나는 소외된 나를 찾기 위해 한 가지 길을 택했다. 그것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며, 나는 화가가 되었다.”

1913년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서 태어난 운보 김기창은 8살에 장티푸스로 인해 귀 신경이 마비되어 영원히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일찍이 김기창의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의 소개로 이당 김은호의 제자가 되어 전통회화와 채색화를 배웠다. 1931년 제 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판상도무>(1931)로 입선하고 연이어 선전에 입선하며 유명 화가의 반열에 오르고, 한국 전쟁 중에는 피난 생활을 하며 예수의 일대기를 한국인의 모습으로 그린 성화 30점을 완성하였다. 청각 장애를 극복하고 인물, 화조, 청록산수, 민화풍의 바보산수, 현대적 풍속도, 추상적 이미지까지 다양한 소재와 기법을 구현한 김기창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센터를 설립하는 등 장애인을 위한 복지사업에도 앞장섰다.
  

수화 김환기(金煥基) (1913-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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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환기, 산, 1958, 캔버스에 유채, 100x73cm )


“저항의 정신이란 결코 침울하다거나 우울한 것은 아닐 것이다. 현실을 극복하는 정신, 내일로 향하는 정신이라면 태양처럼 밝고 강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화가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낙천가이다.”

‘한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김환기는 한국 서정주의를 서구의 모더니즘에 접목시킨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이다. 1913년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도에서 태어난 김환기는 1930년대에 일본 동경으로 유학하여 당시 전위적인 활동의 하나였던 추상미술을 시도한다. 그는 강, 산, 달, 구름 등 우리 자연의 모습과 백자 항아리, 목가구 등 전통 기물에 담긴 아름다움을 점, 선, 색의 조화로 이루어진 추상미술로 구현하였다.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에서 제자를 양성하며 교육자로서도 남다른 능력과 소명의식을 겸비한 화가였으나 자신의 새로운 예술세계에 대한 도전을 계속하고자 파리와 뉴욕을 아우르며 국제적인 화가로 활동하였다.

김환기의 <산>(1958)은 풍족하지 못하던 시절 자신을 후원해준 사람에게 선물한 작품으로, 푸른색을 주조로 하여 추상적인 선의 어우러짐으로 깊은 산의 모습을 구성하였다. 이 작품은 프랑스 체류 기간 중 동서양의 조화에 대한 김환기의 고민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김환기 특유의 푸른색이 나타나는 초기작이자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선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는 점에서 미술사적인 의의가 크다. 바다의 고장에서 태어난 김환기의 작품에는 파란색이 많다.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듯한 청색 바탕에 한국의 산과 달이 마치 꿈꾸듯이 그려져 있다. 하얀색을 보고 순수함, 깨끗함과 같은 단어를 연상시키는 것처럼 사람들은 색을 보며 감정을 느낀다. 피카소는 청색을 보며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색이라고 말했으며, 영어권 국가에서 ‘blue’라는 표현은 우울한 기분을 나타내기도 한다. 김환기의 푸른색은 ‘환기블루’라고 불릴 만큼 독자적인 색채로 인정을 받는데, 외국의 코발트 블루, 프러시안 블루같은 색채보다는 쪽빛, 반물색, 감파랑 같은 단어가 연상되는 한국적인 푸른색이다.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한국의 모습을 김환기만의 푸른색으로 담아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도천 도상봉(都相鳳) (1902-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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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상봉, 정물, 1954, 캔버스에 유채, 72.5x90.5cm )

 
추상주의인가 하는 미술만 제일이오? 어느 시대나 새로운 조류는 있는 것이요. 그러나 조류의 주축이 되는 전위라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후위를 위한 것 아니겠소?”

한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서양화가 도천 도상봉은 백자(白瓷)나 라일락을 소재로 한 정물화와 풍경화를 통해 한국적 정서를 사실주의 회화로 확립한 화가이다.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였으나 당시 동경미술학교 출신들이 활약하고 있던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한국 사람을 황민화 시키려는 문화정책인 선전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였다. 줄곧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던 도상봉은 194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천작가 및 심사위원이 되면서 교편을 내려놓고 작품 제작에 몰두하였다. 화려한 기법이나 자극적인 소재보다는 차분한 색조와 부드러운 필치로 조선의 백자를 그리며 한국 고유의 조형미를 표현하고자 했다.

<정물>(1954)은 도상봉의 작품 중에서도 대작에 속하는 작품으로 도상봉 정물화의 특징이 아주 잘 드러난 작품이다. 백자 항아리가 주로 등장하는 그의 작품처럼 이 작품 역시 2점의 백자 항아리가 등장한다. 특히 오른쪽에 위치한 유백색의 달 항아리는 작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점으로 보아 작가가 백자를 가장 핵심적인 소재로 설정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주전자와 작은 백자항아리 꽃병에 담긴 백색, 황색, 적색의 국화꽃은 작품의 우아한 멋을 배가시키고 있는데, 이처럼 ‘꽃이 꽂힌 백자 항아리’는 도상봉이 백자항아리를 그릴 때 자주 사용한 구성이다. 달 항아리 뒤편으로 보이는 나무함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작가가 한국적인 소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석 박수근(朴壽根) (1914-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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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수근, 우물가, 1953, 캔버스에 유채, 78.5x99cm )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그리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가장 즐겨 그린다.”

1914년 강원도 양구 부유한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난 박수근은 프랑스 화가 밀레의 <만종>(1857-59)을 보고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그러나 부친의 사업실패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 일본 유학의 꿈을 포기한 채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다. 18세가 되던 해 <봄이 오다>(1932)로 제 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고, 이를 계기로 그는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았던 박수근은 자신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의 모습과 일상 풍경을 화폭에 담으며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그리고자 했다. 표현에 있어서는 일본의 색채기법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닌 우리나라의 옛 석탑과 석불을 연상시키는 화강암의 표면과 같은 마티에르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창조해냈다.


유영국(劉永國) (1916-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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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영국, 산, 1989, 캔버스에 유채, 135x135cm )


추상은 말이 없다. 설명도 필요 없다. 보는 대로 이해하면 된다. 내가 그린 건 구체적인 대상의 자연이 아니라 선과 면, 색채들로 구성된 추상 형태의 자연이다.”
 
191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유영국은 1930년대 동경문화학원에 진학하여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동경에서 가장 전위적인 미술운동이었던 추상미술을 수용한 유영국은 1947년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등과 함께 한국 최초 추상미술그룹이었던 ‘신사실파’를 창립하였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유영국은 산을 그린 것이 많아 ‘산의 화가’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닌, 기본적인 조형 요소인 점, 선, 면, 색, 형을 기반으로 고향 울진의 깊은 바다, 장엄한 산맥, 계곡, 붉은 태양 등을 추상적으로 표현하였다.

한국의 전위적인 미술단체를 이끌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던 유영국은 2002년 타계할 때까지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작업실에서 작품 제작에만 몰두했고, 평생 400여점의 유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유영국 화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개최된 국립현대미술관의 《유영국 탄생 100주년》 기념전시에 출품되었던 작품이다. 유영국이 줄곧 추구해왔던 단골 소재인 ‘산’의 모습을 조형의 기본 요소를 사용하여 매우 추상화되고 단순화된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를 통해 눈앞의 산이 아닌 내면에 숨어있는 자연의 근원을 표현했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화면의 구성은 강렬한 색감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작품에 다양성을 주고 긴장감을 형성한다.


대향 이중섭(李仲燮) (1916-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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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중섭, 황소, 1953, 종이에 에나멜과 유채, 35.5x52cm )

 
어디까지나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모든 것을 전 세계에 올바르고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오. 나는 한국이 낳은 정직한 화공이라오.”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 화가 이중섭은 재료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과 양식을 창안해낸 화가이다. 일본 유학시기부터 남다른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던 이중섭은 ‘소’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일반적으로 소는 눈망울이 선하고 순한 동물로 알려졌으나, 이중섭 그림에 등장하는 소는 힘이 있고 거칠게 표현되어 있다. 자신의 고통스런 삶과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우리 민족 수난의 역사를 ‘소’에 담아낸 것이다. 이중섭은 40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외로움과 가난에 시달려야 했던 고독한 화가였지만, 현재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자 가장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화가이다.

서울미술관 대표 소장품이자 이중섭 화업의 절정기로 평가되는 <황소>는 이중섭 회화의 개성을 집약하여 보여주는 작품이다. ‘소’를 주제로 자주 다룬 이중섭은 묵직한 다리를 움직이며 앞으로 향하는 소의 걸음과 비쩍 말라 뼈를 드러냈지만 역동적인 동작으로 에너지를 뽐내는 모습을 통해 결코 좌절하지 않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담아내고자 했다. 이중섭은 종이에 그린 작품이 대부분이고 물감이 부족하여 화이트 물감에 공업용 안료인 페인트를 섞어서 작업하였다. 이 작품 역시 종이 위에 공업용 안료가 얹어진 작품으로 재료의 특성상 종이의 우글거림이 육안으로 확인될 만큼 손상의 정도가 크지만, 쉽게 마르는 페인트의 속성과 물감이 스며드는 종이의 특성이 어우러져 일필휘지의 빠른 붓놀림으로 구사되는 이중섭 회화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천경자(千鏡子) (192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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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1976, 종이에 채색, 130x162cm )


현실이란 슬퍼도, 제 아무리 한 맺힌 일이 있어도 그걸 삼켜 넘겨 웃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나는 그림 속에 담으려 한다.”
 
‘한의 화가’, ‘꽃의 화가’라 불리는 천경자는 오늘날 한국 채색화의 기틀을 마련한 화가이다. 전남 고흥에서 자란 천경자의 본래 이름은 천옥자였으나 일본 유학길에 오른 후 ‘경자’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불렀다. 1942-43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연이어 입선하며 화가로 데뷔하였고, 이후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자신의 한스러운 마음을 담은 35마리의 뱀이 그려진 <생태>(1951)를 출품하여 화단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 한국화의 채색화 분야에서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한 천경자는 해외여행이 흔치 않던 시절에 세계 각지를 누비며 이국적인 인물화와 풍경화를 그렸다. 주로 꽃과 여인을 소재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던 천경자는 환상적이고 이국적인 꿈과 원시적 낭만을 화려한 색채로 담아냈다.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1976)는 아프리카를 횡단하며 그곳의 풍물과 서민들의 삶을 스케치하며 그 대륙의 이미지에 자신의 49세 인생을 중첩시킨 대작으로 1년여에 걸친 긴 작업이다. 1976년 국전에 출품한 이 작품은 아프리카 여행의 완결편이라고 할 만큼 구도가 다양하고 첩첩이 발라 올린 채색이 투명하게 표현되었다. 작가의 고독이 코끼리 등에 탄 고개 숙인 여인에게 묻어나는 작품으로, 제목이 주는 뉘앙스처럼 전설 같은 한 여인의 살아온 반생이 정과 한으로 배어 있어 더욱 찡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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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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