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불각(不刻)의 조각, 붓으로 조각하다-김종영 [전시]

그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다
글 입력 2018.01.05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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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조각’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우리나라의 조각을 떠올리는 이는 흔치 않다. 이는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아서라기보다, 우리에게 친숙한 조각은 서양의 것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밀로의 비너스 상을 떠올리기는 쉬워도 우리나라의 조각은 대중에게 여전히 익숙지 않은 장르다.
 
나무, 돌, 철 등을 사용하여 조각을 한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근대로 오며 변화한 미의식을 서양에 맞추어 따라가기 바빴던 우리나라의 근현대 미술은 조각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편이었다. 회화에 비해 조각의 변화는 더디었다고 평가되지만, 그 안에서도 작가의 독자적인 면모와 함께 한국적인 면모도 발휘하는 김종영의 조각은 그래서 더욱 빛이 나며 의미가 있다.
 

  
한국적인 것=세계적인 것?


70년대에 활동한 우리나라 작가들은 대부분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혹은 세계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전반적으로 갖고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가 독자적인 정부를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내세울 만한 무언가를 작가 개인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정립해야 한다는 생각, 또는 식민지 역사에서 벗어나 맞게 된 역사의 이면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작가 김종영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작업 키워드를 ‘전통과 현대의 일치’, ‘내재적인 것과 외래적인 것의 하나 됨’으로 읽어내어 그가 가진 작업의 신념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는 전시장 곳곳에 걸린 그와의 인터뷰 내용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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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유등-송승유산, 1970, 66x65cm, 서화
 
 

서-화-각의 일치


특히나 그는 조각언어를 서예가 가진 문인정신과 연결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태생이 반가였기에 자연스레 서예를 접한 성장배경이 작업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붓으로 조각하다’라는 전시의 제목처럼 붓의 자취가 그림이 되고 조각의 형태가 되었던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붓이 지나간 흔적에 담긴 그의 예술혼이 엿보인다. 완전한 번역이 어려운 서예를 calligraphy라는 영어단어로 번역해 모방하고 이를 추상미술의 한 부류로도 보았던 서양 미술의 시각보다, 김종영의 작업은 어쩌면 더 앞선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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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75-11, 1975, 18x9x29cm
돌(익산대리석), 김종영미술관 소장
 
   

원형과 본질에 대한 탐구


김종영은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우리 미술에 대한 자부심을 놓치지 않았다. 동시에 형태적, 의미적으로 서-화-각의 일치를 이뤄내며 그가 하나하나의 조각에 공통적으로 담고자 했던 것은 ‘원형과 본질에 대한 탐구’였다. 이는 모티프를 얻은 오브제가 가진 원형일 수도 있고, 어떠한 사상이나 작품의 본질일 수도 있다. 그의 작품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의 작품을 쉽게 읽어보기 위해 조형미 측면에서 접근하자면, 그가 즐겨 그린 삼선동 일대를 예로 들 수 있다. 세잔이 생 빅투아르 산을 즐겨 그렸던 것처럼 반복적인 드로잉을 통해 형태 실험을 진행한 결과는 조형적 본질에 대한 파악으로 이어졌다. 단순화-추상화 작업으로 얻어낸 조형적 본질이라는 결과는 궁극적으로 조각에 드러나, 관객들은 그의 작품을 통해 실존과 삶의 본질까지도 통찰해 볼 수 있다.
 
 
 
불각의 조각


이러한 작업 과정은 추상조각이 완성되기까지 으레 거치는 순서이지만 서양에서 먼저 시작된 추상조각을 우리가 그대로 모방했다고만 볼 수는 없다. 헨리 무어, 가보 등이 인간, 생명, 원초적인 것에 기반하여 탐구한 결과와 흡사한 작품들이 한국 추상조각의 초반에는 꽤 있었지만 점차 다른 의미를 담으려는 시도가 이후 계속되었다. ‘불각(깎지 않은 조각)’이라는 조각의 모순으로 형태보다 뜻을 더 중시하고자 한 것이다. 선비 정신의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전통적 이념과 추상조각이 만나는 이 지점에서 김종영은 복잡한 기술(skill)보다 의미의 중요성을 추구했다. ‘표현은 단순하게, 의미는 풍부하게’라는 그의 작업 이념을 떠올리며 작품을 감상해보면 그의 결과물들을 생각보다 쉽게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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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의 아이러니로 우리나라 근현대 추상조각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작가 김종영. 그의 작품이 추상적이라 난해하다며 감상하기 어려웠을 관람객들께 이 글이 자그마한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미술사적으로 중대한 그의 작업들이지만 감상이 자유롭게 이뤄지지 않으면 작품의 의미도 빛을 발하기 어렵다. 어려울수록 쉽게 접근하려는 시도와 함께 외재적-내재적 함의를 작품 속에서 감상자 스스로, 자유롭게 발견하며 앞선 단락들의 제목을 떠올려본다면 이제는 조각과 함께 작가 김종영을 연결짓는 것이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해본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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