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의 보편성,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

글 입력 2018.01.0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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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사랑의 보편성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에는 다섯개의 사랑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 무대는 침대 하나 뿐이다. 침대라는 이미지는 묘하다. 그것은 가장 안정적이고 따뜻한 공간이다. 하지만 침대에 누운 인간은 가장 무방비하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떠올려보자, 잠은 인간의 삶을 이어나가게 만드는 궁극의 휴식이면서 죽음을 닮아있다. 침대 위에서 잠을 자던 왕은 맥베스에게 살해당했다. 하지만 맥베스가 잠을 살해한 뒤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던 것처럼, 잠 없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사랑도 그렇다. 사랑은 인간의 삶에 끊임없는 열정을 제공하면서도 그 열정에 방심한 개인의 무언가를 좀먹는 것이 전제된다. 처음 누군가를 사랑했을 때, 그는 나의 경계를 넘고 가장 안정된 공간을 침해한다. 내 안에 있는 타인의 존재는 나를 안락하게도, 무방비하게도 한다. 사랑의 시작은 더욱 고통스럽다. 사랑은 수많은 사람을 삼킨 가오나시처럼, 목구멍을 다 넘어가지 못한 음식물처럼 고통과 안락을 안겨준다. 사랑의 특성뿐만 아니라, 침대는 연인 간의 결합을 상상하게 한다. 성행위는 오르가슴과 죽음을 동시에 제공한다. 일련의 행위를 끝낸 연인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 시작은 열정에 차 있었지만 그 끝은 죽음을 닮아있다. 그럼에도 사랑은 여전히 죽음 외에는 확실한 것이 없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생명력 넘치는 것이다. 사랑은 모순적이다.

그 모든 이미지를 엮어 사랑은 사랑스러운 약점이다. 뮤지컬의 메인 넘버에서 사랑을 꿈꾸는 모두가 외친다. "사랑이라는 약점, 하지만 누구나 꿈꾸는 감정".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는 다섯가지 사랑을 침대라는 이미지를 통해 합쳐나간다. 극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사랑과 열정이라는 약점에 매료되어있다. 그들의 노래와 춤은 즐겁고 가슴 떨릴 수밖에 없다. 그 형태가 어떤 모습을 띠던 그 설렘 만큼은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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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이야기는 공감되기 어려울 수 있다. 몇몇 대사와 상황은 오늘날 생각해봤을 때 다소 걸리는 점이 있다. 대사를 차치하고 상황에서는 필자가 찾아낸 단적인 예로, 좋아하는 선배를 하룻밤 모텔로 끌어들여 온 후배의 이야기는 '로맨틱 코미디'이기 때문에 즐거웠던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예술을 감상할 때 정신병리학이라는 음침한 단어를 꺼내는 것을 꺼리는데, 주인공 후배가 장난스럽게 한 자해행위(혹은 퍼포먼스)는 장르의 가벼움으로 덮어버리기에는 신경이 쓰였다.

한 뮤지컬에 다섯가지 이야기가 들어가다보니 그 행위와 의미를 포착하기 어려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야기 하나하나가 더 풀어낼 소재가 많은 이야기였고, 이런 소재는 다섯 개의 옴니버스 형식보다는 한 이야기로 풀어냈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섯가지 이야기가 한데 모인 것은 즐거운 분위기를 이어나갔지만, 이야기 하나하나의 높은 텐션이 관람객 입장에서는 집중력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야기 구조가 이해하기 쉽고, 뮤지컬 특유의 특징이 극의 전개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꼭 '다섯 가지'였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려는 시도가 흥미로웠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소재가 스쳐 지나가듯 맛을 보여주는 것이 아쉬웠지만, 반대로 뮤지컬의 전체적인 맛을 잘 살리는 면이 있었다. <사랑에 관한 소묘>는 뷔페 같다. 하나하나의 음식의 맛은 들쑥날쑥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뷔페에 들어간 손님들은 잔뜩 차려진 음식에 눈이 크게 뜨인다. 뷔페의 여러 음식을 맛보는 관람객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양식과 한식과 같이 동떨어져 보이는 이야기들을 사랑이라는 이야기와 침대라는 무대장치로 엮은 이들의 시도는 의미가 깊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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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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