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리 로랑생展에서 꼭 보고와야 하는 것

글 입력 2017.12.27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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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에게 겨울날의 하늘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는가. 물론 겨울은 다른 어떤 날들보다도 맑은 하늘과 건조한 대기를 뚫고 내리 쬐는 햇살에 눈이 감기는 계절이지만, 내게 그것은 꽤나 암울한 형상으로 피어오른다. 눈물콧물이 엉겨 붙어 뭉그러진, 눈물을 훔치다 말고 일그러진 미소를 만들며 뒤돌아보는 어떤 이의 어설픈 표정처럼 흐리고 암울한 회색빛의 하늘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그런 하늘이 세상을 뒤덮은 어느 겨울날, 그 뿌연 하늘이 담뿍 들어있는 마리 로랑생의 작품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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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는 마리 로랑생이 브라크의 소개로 피카소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가와 교류하며 세탁선을 드나들던 벨 에포크 시대부터 시력을 점차 잃어가던 말년에 이르기까지, 대표작부터 시작해 일러스트 및 시집을 총 망라하는 여덟 개의 섹션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포근한 핑크빛으로 물든 전시를 따라 걷다보면 그녀의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셈이다. 전 생애에 걸쳐 남긴 100점이 훌쩍 넘는 수의 작품들을 단지 몇 걸음, 몇 시간만에 훑어보기엔 무리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중첩된 두 가지 지점이 있다면 '입체파와 야수파', 그리고 '슬픔' 이었다.


 입체파와 야수파 사이    

 당시 마리 로랑생은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야수파와 입체파 사이에 낀 불쌍한 사슴’, ‘야수파의 소녀’ 등으로 불리며 놀림 혹은 비하를 당하기도 했다. 입체파와 야수파는 모두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태동한 독특한 예술사조였는데, 입체파는 다면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야수파는 강렬한 표현과 색채를 선호했고 전자는 피카소가, 마티스가 대표적이었다. 비록 피카소나 마티스와는 달리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졌으나 그 형태가 기하학적이고 화려하진 않지만 색채를 두드러지게 표현하는데 분명 집중한다는 점에서 얕은 지식으로만 대입해 봐도 그녀가 입체파와 야수파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우아한 무도회 또는 시골에서의 춤, 1913, 캔버스에 유채, 112x144, Musee Marie Laurencin.jpg
우아한 무도회 또는 시골에서의 춤
1913 / 캔버스에 유채
112x144 / Musee Marie Laurencin Collection


자화상, 1924, 캔버스에 유채, 65x54, Musee Marie Laurencin.jpg
자화상 / 1924 / 캔버스에 유채 / 65 x 54
Musee Marie Laurencin Collection


“내가 다른 화가들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아마도
그들이 모두 남자들이어서일지 모른다.
남자들이란 내게 풀기 어려운 문제와 같다.”


 여성에 대한 시선이 지금보다도 훨씬 곱지 않았던 시대에 마리 로랑생은 예술가로서, 입체파도 야수파도 아닌 그 언저리의 비주류로서 예술 활동을 지속했다. 남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느 한 쪽에 오롯이 속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늘 중심에서 밀려났겠으나, 뚝심있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차곡차곡 발전시켜 생전에도 드물게 인정받았으니, 성별을 차치하고서라도 그 성과란 얼마나 눈부신가.

 문득 뭉개지거나 뭉뚱그려 놓은 듯한 형상에 뚜렷한 윤곽선이나 눈동자를 그려넣는 마리 로랑생만의 기법이 그와 참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사랑했던 은은한 핑크빛과 푸른색, 어두운 초록색과 회색, 그리고 이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모호한 형상은 그녀가 부드럽고 따듯한 사람이었음을 암시하지만, 동시에 덧입혀진 섬세하고 강인한 선들은 온갖 우여곡절을 이겨내고 자신의 입지를 꼼꼼히 다질만큼 용기있는 사람이었음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슬프고 슬프다     

 한편 마리 로랑생의 작품이 마냥 화려하거나 밝지만은 않다. 기욤 아폴리네르와의 가슴아픈 이별 때문이었을까, 전쟁의 참혹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생아로 태어났던 그녀에게 하나 뿐인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그녀의 비애는 사랑과 이별, 죽음보다도 훨씬 앞서 그녀의 마음에 둥지를 텄을지도 모른다.


책읽는 여인, 1913년경, 캔버스에 유채, 91.5x72, Musee Marie Laurencin.jpg
책읽는 여인 / 1913년경 / 캔버스에 유채 / 91.5 x 72
Musee Marie Laurencin Collection


세명의 젊은 여인들, 1953년경, 캔버스에 유채, 97.3x131, Musee Marie Laurencin.jpg
 세명의 젊은 여인들
1953년경 / 캔버스에 유채 / 97.3 x 131
Musee Marie Laurencin Collection


 사람이든 배경이든 마리 로랑생은 단순한 살구색이나 야수파 같은 원색이 아닌 다양한 농도의 회색을 이용했다. 덕분에 은은한 파스텔 톤의 색감이 두드러지기도 했지만, 어떤 밝은 색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마리 로랑생의 작품에서는 우울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리고 이렇듯 작품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회색빛'이 그녀가 자신의 슬픔을 풀어내는 방식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스무 살이었다.
당시의 나는 슬프고 못생기고
하여튼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전시장에는 마리 로랑생이 했던 말들이 몇 군데 새겨져 있는데, 그 중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슬픔' 이었다. 그녀는 스무살에도, 서른살에도 끊임없이 슬픔을 이야기했다. 남성도, 주류도 되지 못했던 마리 로랑생은 태생적으로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자신의 정체성으로부터 비롯된 슬픔을, 흑과 백 사이 어딘가에 애마하게 자리잡은 회색으로 끊임없이 이야기했던 건 아닐런지.


꽃과 비둘기, 1935년경, 캔버스에 유채, 105x125, Musee Marie Laurencin.jpg
꽃과 비둘기
1955년경 / 캔버스에 유채 / 105 x 125
Musee Marie Laurencin Collection


 ‘누군가의 뮤즈가 아닌, 오직 마리 로랑생으로’ 이주 전 쯤 기고했던 프리뷰의 제목이다. 줄곧 기욤 아폴리네르의 연인, 뮤즈로 알려져 있던 마리 로랑생을 ‘예술가’로서 얼마나 성공적으로 조명했는가, 과연 그녀를 조연이 아닌 주인공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기대감과 의구심이 마음을 지배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한 쪽 벽면을 수놓은 전 생애에 걸친 마리 로랑생의 흑백 사진들이 시야에 넘치게 들어차고 나서야, 이번 전시가 그녀를 무대 중심에 놓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 수 있었다. <색채의 황홀, 마리 로랑생展>은 의심의 여지없이 마리 로랑생의 생애를 전시한, 마리 로랑생의 것이었다.

 따듯하고 부드러운 색감과 마치 구름을 옮겨 놓은 듯한 표현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왔으나 정작 자신은 겨울 하늘처럼 서글펐던 사람. 전시를 통해 지극히 사적으로 느낀 마리 로랑생의 이미지를 활자로 적어보자면 이러하다. 그녀가 다른 이에겐 또 다른 사람으로 다가왔을런지 모르겠으나 그 모습이 수 백가지가 된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시대가 아닌 어떤 장애물도 없이 오롯이 그녀를 마주함으로써 얻은 한 장면이라면 아무래도 좋다. <색채의 황홀, 마리 로랑생展>에서 꼭 보고와야 할 것은 단지 그 뿐이다.


마리로랑생포스터-02.jpg
 

전시를 위한 사이트, 마리 로랑생 展
필자의 프리뷰


*

:) 번외

전시 말미에는
마리 로랑생을 모티프로 한
현대 미술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와
밤의 수첩에 실린 마리 로랑생의 시, <진정제>를
연필로 필사해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마리 로랑생을 처음 알아가기에,
참 좋은 공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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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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