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재즈로 쓴 그녀의 일기장, 이진아 미니앨범 ‘Random’ [음악]

글 입력 2017.11.30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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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외출할 때 꼭 챙겨야 할 필수품은 이어폰이다. 그만큼 이동 시간의 대부분을 음악을 듣는데, 우연히 만나게 되는 노래 한 곡에 힘을 받아서 곡의 재생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기분 좋게 보내기도 한다. 얼마 전 여느 때처럼 지하철을 타고 당산에서 합정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는데, 좋아하는 가수 중 한 명인 이진아의 가장 최근 앨범을 들어보지 못해서 아무 생각없이 재생 목록에 추가했다. 그리고 노래가 시작되자 마자 왜 이제 들었나 싶을 정도의 감격과 함께 그 날로 이 앨범 전곡을 영접하게 되었다. 여름에 발매 된 앨범이라 나온 지는 꽤 시간이 흘렀지만 요즘 같은 추운 날씨와 더 잘 어울리는 재즈풍의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녀의 두 번째 미니앨범 ‘Random’에 수록된 일곱 개의 곡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네 곡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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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dom' 앨범 커버 사진



1. 계단

 
수록 곡 중 가장 처음으로 들었던 곡이다. 불길한 느낌이 드는 의미심장한 첫 도입부에 이어지는 멜로디는 뭔가 애니메이션 OST같기도 하고, 뮤지컬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지하철에서 이 노래를 들었는데 무방비 상태에서 가사를 듣다가 울컥 눈물이 났다. 이 노래를 듣고 있었을 때 나는 참 불안하고 어두운 심리상태를 갖고 있었다. 남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한없이 무기력 해 질 때였다. 붐비는 지하철과 저마다 정신없이 출구를 향해 계단을 걸어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풍경과 노래가 너무나도 맞아 떨어지며 어울렸다. ‘너의 모든 순간, 발자국이 아름다워.’ ‘멈춰서도 좋아 내려가도 좋아’ 이 두 구절은 걱정 가득한 내 어깨에 손을 올려주는 것 같았다. 계단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하는 피아노 선율이, 마치 건반으로 가사를 연주한 것 같은 느낌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2. Random(타이틀곡)


랜덤 재생으로 노래를 듣다가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곡에 꽂혔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런 경험이 편견을 없애고 싶다는 마음으로 나아갔다는 게 참 사랑스럽다. 살면서 편견이 개입되는 것들은 많다. 사람을 만날 때, 세상 만사 모든 것들을 선택하기 앞서서 항상 편견 섞인 전제를 두는 순간 내게 더 중요한 걸 놓치고 만다. 어디서 본 글귀 중에 평점이 낮은 영화와 맛없기로 소문이 난 식당이 있었는데 직접 겪어보니 영화는 재미있었고 식당의 음식은 맛있었다는 내용이 떠올랐다. 만족의 기준을 남에게서 나로 옮겨오는 순간 놓칠 뻔한 행복이 내게 찾아온다. 나의 성격, 취향도 언제든 변할 수 있는 ‘랜덤’한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굳이 나 혹은 타인이 갖는 고정적인 편견에 얽매여 지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3. Everyday

 
아마 연애를 하고있지 않았다면 그냥 누군가를 향한 애정이 담긴 귀여운 노래구나, 했을 것 같다. 복잡한 표현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솔직한 투정과 사랑이 동시에 드러나는 가사를 보니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이 떠올랐던 곡이다. 나와 전혀 안면이 없는 타인이 써내려 간 경험에 나의 경험이 겹쳐지는 건 참 신기하다. 연인에게 ‘결정 못 하고 생각만 많고 고집까지 센 날 포기 않고 매일 말 걸어주어 고맙다’고 이 노래의 가사를 주고 싶었다. 몇 년 전 학교 수업에서 ‘너에게 보내는 노래’라는 라디오 코너의 원고를 써야하는 과제가 있었던 게 떠오르기도 했다. 혼자 느낀 바를 중얼거리는 듯한 나머지 곡들과 달리 유일하게 특정한 청자가 있는 듯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 같은 노래다.



4. 오늘을 찾아요

 
앨범의 마지막 순서에 실린 곡이다. 마지막에 놓였다는 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도 오늘을 찾고 싶었던 내 머리를 세게 쾅 때리는 망치 같았던 노래였다. 한창 우울할 때 썼던 나의 일기가 생각났다. 맨날 기차처럼 지나가면 그만인 시간들, 놓쳐버리는 것들에 대해 쓴 일기였다. 항상 때를 놓쳐서, 좋을 때 못 가고 좋을 때 못 만나고 못 즐긴다.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이루고 싶은 꿈은 마음으로 품을 땐 어찌 그리 선명한지 모르겠다. 나는 정말 많은 것들을 놓치며 살아간다. ‘그때가 온다면 한다고 했던 게 많았는데 그때가 지금으로 이 순간으로 찾으러 오면 나는 또 다른 그때를 떠올리며 바라고 있네요.’ 게을러서 일수도, 정말 그냥 마음이 동하지 않아서 일수도 있었던 많은 지나가버린 오늘들이 아쉬워서 마음이 짠 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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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이 앨범을 듣는 내내 꼭 노래로 된 일기장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 이건 실제 경험이구나.’라고 생각될 수 밖에 없는 현실감 짙은 가사 덕이다. 노래를 들을 때 가사에 집중하는 편이기도 하고 평소에 가사 창을 켜서 가사 읽는 걸 좋아한다. 좋아하는 팝송이 생겨도 가사의 뜻이 궁금해서 해석을 찾아보곤 한다. 가사는 노래로 된 시라는 말도 있듯이 음악과 언어가 만나면 하나의 작품이 된다. 평범하게 일상을 살다가 좋은 가사를 마주칠 때면 감명 깊은 문학작품을 만난 것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마음이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예전부터 여성 싱어송라이터를 많이 동경했다. 특히 건반을 연주하는 분들에게 자주 빠졌었는데 이진아의 건반 연주 실력 역시 수준급이다. 나로서는 연주를 보고 만들어진 음악을 듣는 것 만으로도 좋은데, 저렇게 자유롭게 피아노를 연주하고 작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정말 큰 기쁨일 것 같다.

이진아의 앨범은 추운 겨울로 가는 입구에 서 있던 내게 거창하지 않지만 큰 위로였다. 그냥 노래를 들었을 뿐인데 한 사람의 특유의 음악적 색깔에 물드는 것 같았고, 한 아티스트의 예술을 봤다는 느낌도 들었다. 각각의 노래들이 담고 있는 건 흔하게 겪는 보편적인 정서들이지만 이를 개인적인 에피소드와 문장으로 표현해 내니 뻔하지 않고 특별하게 빛난다. 이로써 대중들이 더 빠져들 수 있고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매력적인 결과물로 나온 게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창작물을 보는 건 즐겁다. 그로 인해 행복해지고 감성에 충만해지는 순간은 더할 나위 없는 순간이다. 그녀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잘 알 수 있는 앨범이어서 이 앨범을 애정 하게 됐다. 음악을 통해 2차적으로 머리와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생각들은 또 다른 영감이 되고, 그 영감으로 나는 새로운 상상을 한다. 흥을 돋우고 아무 생각 없이 신날 수 있는 음악도 좋지만 때로는 이런저런 생각을 곱씹게 되는 이런 음악들이 참 좋다. 글에서 소개하지 않은 다른 세 곡도 정말 좋으니 더 많은 사람들이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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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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