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겨울, 큐슈 -2 [여행]
글 입력 2017.11.27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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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첫 날부터 말도 안되게 행복해서 '정말 다 꿈이면 어떡하지?' 걱정하며 잠들었는데, 다행히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여전히 호텔 방에 있었다.둘째 날은 아침 일찍 역으로 떠났다. 우리는 여러 지역을 둘러보기 위해 한국에서 미리 북 큐슈 레일 패스를 구매했고, 기차를 타고 처음으로 떠난 곳은 쿠마모토였다. 쿠마모토에 가기 전, 우리는 조식을 먹으러 갔고, 메인 메뉴인 규탄도 사이드 메뉴로 나온 후쿠오카의 명물 명란젓도 굉장히 맛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웠다.처음 타 본 일본의 신칸센은 익숙한 듯 낯설었다. 고요하고 편안했다. 후쿠오카 시내를 빠져나가자 창밖으로 펼쳐지는 푸른 초원들이 따사로워 보였고, 그래서 한 시간이 조금 넘는 그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쿠마모토 역을 빠져나오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쿠마모토의 지역 캐릭터인 '쿠마몬'이었다. 사실 우리가 여행지를 북 큐슈로 정한 것은 '쿠마몬'때문이었다. 당시 내 친구와 나는 쿠마몬에 굉장히 빠져있었고, 쿠마모토에 가면 실제로 쿠마몬을 볼 수 있다는 말에 정말 쿠마몬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그런 우리가 쿠마모토 역에서 쿠마몬을 마주했을 때, 그 감동이란!쿠마몬을 뒤로하고 쿠마모토에서의 첫 일정을 위해 1일 전차 패스를 구입했다. 물론 홍콩에 갔을 때도 길 위를 다니는 전차를 본 적은 있었지만, 직접 타 본 적은 없었기에 굉장히 떨리고 두근거렸다. 물론 그 설렘만큼 사람이 많아서 힘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전차를 타고 처음 도착한 곳은 옛 일본의 모습을 구현해놓은 작은 상가였다. 현대적인 기술로 복원한 만큼 가공적인 티가 많이 나는 곳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후쿠오카보다 더 작은 쿠마모토는 너무나도 고요했고, 그 날 날씨는 너무도 따스하고 청량했고, 그 모든 것이 그곳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잘 어울렸으니까.그곳에서 조금 더 걸어서 우리는 쿠마모토 성에 도착했다. 쿠마모토 성까지 가는 셔틀버스가 있었으나 날이 너무 좋아서 걷고 싶었다. 그렇게 열심히 걷고 걸어 괜히 걸어왔다고 후회할 때 쯤 성 입구에 도착했고, 그 떄까지는 몰랐다. 그 이후로도 성까지 한참을 더 걸어 가야한다는 것을. 아무래도 일본은 통일국가 없이 긴 세월을 전쟁으로 보냈기 때문에 성들이 대부분 다른 나라의 성들과 다르게 요새의 느낌이 강한 것 같았다. 그래도 열심히 걸었다. 구불구불하고 높은 그 길들을 올라가는 것이 힘들었지만, 중간중간 옛 일본 무사들을 코스프레한 사람들이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성에 도착해 또다시 성의 계단을 오르고 올라 천수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때는 가슴이 뻥 뚫렸다.크지 않은 성을 다 둘러본 후에도 우리는 그 주변을 한참을 걸었다. 날이 너무 좋아서인지 주변을 가득 메우는 관광객들의 시끌시끌한 소리도 달가웠다. 가능하다면 더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며 여유를 부리고 싶었지만,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였던 '쿠마몬'을 보러 가야 했기에 다시 전차를 타고 쿠마모토 시내로 향했다.시내에 위치한 한 백화점에서 정해진 시간마다 쿠마몬의 쇼가 열렸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이 그곳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나와 친구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리저리 비집고 들어가야 했다.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쇼였다. 쿠마몬의 매니저가 나와 쿠마몬을 소개하고, 쿠마몬은 노래에 맞춰 체조했는데 그게 너무 귀여웠다. 정말로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귀여웠다. 너무 귀여워서 '정말 심장이 멎으면 어떡하지?'하는 생각 마저 들었다. 게다가 해외에서 온 사람들은 우리밖에없는 줄 알았는데 한국보다 더 멀리에서 온 사람들도 있어서 깜짝 놀랐다. 쇼는 너무 짧았고, 그래서 더 소중했다.쿠마모토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후쿠오카로 돌아왔다. 그 날 우리는 오코노미야키를 먹기로 했고, 다행히 웨이팅 없이 바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 가게를 찾아가기까지 길을 굉장히 많이 헤맸던 것 같은데, 괴로운 기억 하나 없이 즐거운 기억만 떠오르는 것을 보면 그 길을 헤매는 순간순간도 모두 행복했던 게 아닐까 한다. 어쨌든 우리는 그 가게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먹은 야키소바와 오코노미야키는 지금까지도 먹어본 것 중 최고였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맛있었고, 함께 마신 시원한 맥주까지 정말 완벽했으니까. 그날 밤은 너무도 행복하고, 너무도 평화로웠다. 아마 혼자였다면, 그렇게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없었겠지. 추운 오늘 밤, 나는 그 날 그곳이, 그곳에서 함께 먹은 야키소바가, 그리고 그 날 나와 함께 있던 내 친구가 그립다.
PHOTO BY. J.UKJIN[정욱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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