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카고의 비는 멈추지 않는다 - 연극 스테디레인

글 입력 2017.11.2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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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적으로 다른 성격을 지닌 두 캐릭터. 하지만 삶을 함께 해온 그들은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그들의 삶에 있어서 서로가 꼭 필요한 존재라는 점에서. 간신히 술로 삶을 지탱하던 조이를 대니가 끌어올려 바로 서게 만들었고, 대니가 불같은 성격으로 일을 벌일 때마다 조이는 묵묵히 대니를 보조했다. 그들은 양 극단에 서 있는 만큼 어쩌면 최고의 무게중심을 맞출 수 있는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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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으로 다른 두 캐릭터, 조이와 대니.
 
 
   그런 그들에게 한 사건이 터진다. 대니의 집에 총알이 날아들고, 그 총알은 단란하게 모여있던 대니의 가족을 위협한다. 결국 대니의 아들이 부상을 입어 급하게 병원으로 출발하게 되지만, 대니의 고집으로 인해 늦게 도착한 병원에서는 아들의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되었다는 얘기만 전해듣는다. 이 사건 부터 대니는 다른 것들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 단 한가지 목표는 사건의 범인으로 생각되는 월터를 자신의 손으로 잡아넣는 것. 그렇게 제 가족을 제 손으로 반드시 지켜내고, 가족을 위협한 범인에게 처벌을 내리는 것. 하지만 월터를 쫓는 데에만 혈안이 된 대니는 점차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제 손으로 무너뜨린다. 사건의 발단이 된 창녀와의 관계, 오직 범인을 잡기 위한 수많은 범법 행위, 개인적인 사건에 집중하느라 소홀히 된 경찰로써의 본분,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오히려 그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자신의 가족을 산산조각내기에 이른다. 사건에 대한 광적인 집착은 대니의 눈을 흐리게 만들고, 오히려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는 과연 무엇을 지키고 싶었던 것일까. 정말로 가족을 지키고 싶었던 것인지, 가족을 지킨다는 변명으로 제 안의 미친 사냥개를 날뛰게 둔 것인지. 보는 내내 안타까웠다.

   이런 대니의 곁에는 늘 묵묵히 그와 함께한 조이가 있다. 대니가 자신의 복수심에 휩싸여 월터를 쫒는 사이, 조이는 대니가 신경쓰지 못한 대니의 가족들을 그 대신 돌봐준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니가 가족들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월터를 쫓을 수록, 가족들에게 대니의 빈 자리는 커져갔고, 그 빈 자리는 자연스레 조이가 채웠다. 대니의 가족들은 점점 조이를 따르고, 좋아하고, 의지했다. 조이는 자신이 대니의 가족을 지켜주는 것이 맞는지, 혹은 자신이 대니의 가족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하지만 대니에게 그의 가족이 소중한 만큼, 조이 자신에게도 그의 가족은 자신의 가족이나 다름 없는 존재였다. 머물 곳 없는 자신이 어울려 쉴 수 있는 단 하나의 안식처. 조이가 그것을 깨달아갈 무렵, 대니가 외면한 외국인 소년이 알고 보니 식인 살인마에게 쫓기던 중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월터를 쫓느라 이를 막지 못한 대니는 큰 죄책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그는 더욱 월터에게 모든 사건의 책임을 전가하고, 그를 잡기만 하면 자신의 어그러진 모든 일상이 깨끗하게 나을 것처럼 더 심하게 집착한다. 대니는 끝내 월터의 동생을 잡는데에 성공하지만 사고로 그를 죽이고, 사격의 필연적인 이유를 만들고자 증거를 조작한다. 이 모든 것을 조이는 지켜보았다. 하지만 이제 대니를 참고 바라보는 조이의 인내심 역시 바닥이 났다. 조이는 대니의 아내에게 이 사실을 얘기하고, 대니는 이제야 박탈당한 경찰의 지위도, 가족의 신뢰도,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 지긋지긋한 사건의 범인을 잡아 마무리를 낸 이 시점에서. 그 이후의 이야기는 어쩌면 놀랍도록 당연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살아온 대니는 모든 것을 잃고 자살,  조이는 대니의 빈 자리를 온전히 자신이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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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스테디 레인은 독특한 극 구성, 매력적인 캐릭터, 박진감 넘치는 전개로 2인극의 묘미를 극도로 살렸다


   대니가 죽은 후에도, 대니는 무대 위에 있다. 조이의 시선 끝에는 늘 대니가 있다. 그가 죽고 나서도, 화장한 그의 사체가 흩어져 사라졌을 때에도, 평범한 듯한 일상이 다시금 시작될 때에도, 조이에 눈에는 대니가 보인다. 그 마지막 장면을 눈으로 남아내는 동안 조이의 미묘한 표정이 너무 강렬했다. 완전히 막이 다 내린 후에야 나는 그제야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긴장을 놓은 것처럼 막이 내리고 나서야 눈물이 찼다. 대니와 조이의 관계가 변화하는 양상을 정말 섬세하면서 드라마틱하게 묘사했다. 지극히 감정적이고 폭력적인 대니와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조이의 파트너쉽은 서서히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해 나뉘어간다. 이어지는 사건, 변화하는 관계, 그리고 비극적인 맺음. 이 둘의 관계 묘사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 모든 것을 잃게 만들었을 때의 아이러니함이 마음을 무겁게 내리쳤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광적인 복수의 변명으로 변질되고 말았을 때의 허탈감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마음과 이상, 현실과의 괴리감 속에서 발버둥치는 대니의 표졍이 아직도 뇌리에 강렬하다.

   낯선 느낌의 극 구성이었기 때문에 연극 초반에는 다소 집중하는 데에 힘이 들었다. 대니와 조이가 서로의 삶에 대해 독백하며 시작된 연극은 그들의 나레이션과 단편적인 상황 묘사를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다만 월터와의 사건이 시작될 즈음에는 사건에 대한 대니와 조이의 시선이 교차하기 시작하면서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대니와 조이 사이, 무대와 관객 사이에는 밀고 당기기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아무것도 없는 무대 위였지만 그 곳은 때때로 어두운 시가지가 되기도 했고, 차량이 질주하는 고속도로 위가 되기도 했다. 때로는 대니의 가족들도 함께 있었고, 때로는 무서운 낯빛을 한 월터도 그 위에 있었다. 배우가 가진 힘이 무궁무진함을 오랜만에 느꼈다. 단 둘만이 서 있는 공간이었지만 전혀 빈 느낌이 들지 않았으며,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꽉 찬 긴장감에 공기는 하염없이 무겁게 자리했다.

   자신의 포근한 집, 그리고 가족을 바라보며, 지킬 것이 생겼음에 단단한 눈을 하던 조이의 마지막 모습 위로 어쩐지 대니가 겹쳐졌다. 사실 대니만 없어졌을 뿐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았다. 무대 위의 모든 것은 여전하다. 시카고의 모든 거리는 여전하다. 다만, 조이가 지긋해 하다 못해 증오하기 까지 하던 시카고의 음습한 비, 축축한 물구덩이, 멈추지 않는 빗줄기. 막이 내린 지금, 조이에게 쏟아지던 비는 멈췄을까? 혹은 여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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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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