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Art-incite ④ 알.쓸.신.미 [문화예술교육]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박한 서양미술지식
글 입력 2017.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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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몇 년 전까진 음악을 했고 지금은 미술사를 공부하려고 이리저리 알아보고 있다. 그림 그리는 것에는 영 취미가 없어 미술 자체를 등한시했는데, 철학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졌고 이 두 학문이 미술에서 꽃을 피운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올해 예술의 전당에서 르 코르뷔지에 전과 오르세 미술관 전을 봤을 때, 물감의 조화와 (인물에 대한) 전시 기획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양한 방법을 찾으며 이리저리 공부하는 중이다. 즉, 지금 하고 싶은 일은 전시 기획이지만 하고 싶은 공부는 미술사를 중심으로 한 전반적인 인문학이다.


 서울시 평생학습포털, K-MOOC 등 좋은 강연이 손가락만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전기세를 제외하고 수료증까지 무료로 쥐어주는 21세기이다. 정보 과잉의 시대에서 아날로그를 추구한다면 동네 도서관의 ‘미술’ 서고에만 가도 책장 2개는 거뜬히 차지하는 양의 지식이 놓여 있다. 이 중에서 뭘 읽을지 모르겠다면 초록 창에 검색해봐라. 책 추천은 물론, 가이드라인까지 친절히 잡아주신다. 하지만 나는 ‘미술사를 중심으로 한 전반적인 인문학’을 갈망한다.


 같이 인문학에 관심 있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서로 왜 인문학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 친구는 세상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고, 나는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을 내가 모르는 것에 뭔가 배 아픈 것도 있지만 방대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이다. 최근 방영하기 시작한 ‘알.쓸.신.잡2’가 나의 완벽한 롤모델이다. 내 주변의 또래들이 들었을 때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소위 말해 ‘으른’들의 이야기를 나는 너무나도 좋아하며 자리에 끝까지 앉아 있는 걸 자청해서 듣는다. 이 ‘알.쓸.신.잡2’와 ‘으른’들 이야기의 공통점은 깊다면 깊지만 방대하고 주제가 어디로 튈지 모르며 끝도 없다. 열심히 얘기하다 누군가 다른 일정이 있어 헤어지고 나면 깊고 기분 좋은 아쉬움과 뿌듯함이 남는다. 물론 '알.쓸.신.잡2'는 방송의 틀에서 각본과 편집 기술로 시청자들이 보기 좋게 각색되었겠지만 분명 카메라 너머에는 ‘으른’들의 이야기 흐름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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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이야기들이 교양 방송 같은 것과의 차이점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토론 테이블 같은 곳에 둘러 앉아 철저하게 준비되어진 다소 경직된 이야기들이 아니다. 술잔을 기울이거나 멋진 풍경 등을 보며 혹은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부부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약속 없이도 한데 모였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카페처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소탈하게 모여 “점심 뭐 먹었니?” 같은 얘기들로 시작하는 다소 일상적인 얘기들이다.


 그래서 나는 미술사를 비롯한 모든 강연은 대학교 강의처럼 먹기 좋게 썰어주는 강연들보다는 날 것 그대로의 정보를 주는 것을 추구한다. 날 것 그대로의 정보를 토대로 한 강연은 학문을 뛰어넘고 역사적으로는 몇 백 년씩 넘나들며, 큰 맥락은 잡으며 진행하되 그때그때 도마에 오르는 주제들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다. 대표적인 분으로는 지금은 그만 두셨지만 수능 강사 최진기 선생님의 강의를 수험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양으로 듣고 있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치부될 문제가 아닌 게, 시대가 바뀌고 있다. 빠른 속도로 복잡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필수 불가결로 새로운 학문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으며, 이 학문들은 대부분 구분되어있던 둘 또는 그 이상의 학문을 합친 것이 대다수이다. 마치 예술경영처럼. 좀 더 세속적으로 표현하자면 ‘융합인재’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래서 '이모랩'이라는 그룹에서 주최한 강의를 직접 신청해서 들었다. 황금 같은 매주 일요일 저녁 3시간씩 3번의 강연이다. 하지만 ‘불금 보다는 북(Book)금’ 등 개인주의와 함께 자기계발에 대한 열망이 커진 요즘에는 다른 의미로 황금의 시간대이다. 강의 해주시는 분은 해외에서도 유명하지만, 국내에서는 JTBC<말하는대로>, 등에 출연해서 하이퍼 리얼리즘(Hyper Realism, 극사실주의)으로 유명해진 서양화가 ‘정중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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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대한 이야기를 여러 사람이 모여 하게 된다면, 엄청난 토론의 장이 열려 다 같이 또는 소수로 나뉘어져서 각자 생각하는 바를 얘기하느라 약간의 전쟁이 일어난다. 한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하게 된다면, 정리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로 그 한 사람이 정보를 거의 흩뿌리듯 투척하고 듣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마인드맵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야기에 빠지다보면 ‘내가 무슨 얘기하다 여기까지 왔지?’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한다. 그럼 듣는 자들의 마인드맵이 궤도로 다시 복귀시켜준다. 이 강연은 후자에 해당한다. 강사님도 이 강연을 몇 년 동안 진행하셔서 농익은 진행과 유익한 정보에 너무나도 재밌어서 그 어떤 때보다도 빠른 3시간이었다. 여럿이 모여서 하던 한 명이 하던 이런 이야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양의 지식 중 하나가 머릿 속에서 마지 못해 삐져나온 듯하다. 이리 튀고 저리 튀는 듯 해 보이는 이야기가 정리를 잘 못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인드맵이 그려진다는 것은 큰 줄기 외에도 정보들이 너무 많아서, 이미 일목요연한 자료들이 산재해 있는 줄기대신 접하기 쉽지 않은 그 가지들을 소개하느라 그에 가려진 것이다. 교수법 또는 강연 방식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나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미술에 대해 일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더운 날 시원한 곳에서 조용히 있기 위해 들어간 미술관에서 명확히 정의내릴 수 없는 오묘한 영감을 받았고, 유명하다고 말로만 듣던 그림들을 이루는 물감(유화의 것)이 엎치락뒤치락 뒤섞이며 생긴 입체감을 보는 순간 그것을 둘러싼 모든 상황들을 알고 싶었다. 왜 그렸는지, 어떻게 그렸는지, 무엇을 중점적으로 그렸는지, 그리는 동안 화가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 그래서 이 점들을 공부하고 있으며, 역사, 경제, 철학 등을 막론하고 미술사로 귀결되는 것이 너무나도 재미있다.


 요즘에는 전시 관람하는 방법도 많이 바뀌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고상하게 팔짱끼고 고심하는 척만 해야 했다면 지금은 같이 사진도 찍을 수 있고 여러 장비들을 이용해 직접 체험해 볼 수도 있다. 미술관의 이러한 노력들이 앞으로 나 같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어내어 미술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전국 어디에나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주변에 조용히 있으니 시원하기 위해서 혹은 따뜻하기 위해서 잠깐 들려 한 바퀴라도 돌아보자.




[유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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