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린스키 발레단 내한공연 < 백조의 호수 > [공연]

발레가 집중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스토리가 아니다
글 입력 2017.11.18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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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큰 규모의 발레 공연을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대사 한 마디 없이 어떻게 줄거리를 전달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백조의 호수는 유명하지만,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는 몰랐던 나는 공연을 보기 전에 줄거리를 검색해보고 입장했다. 검색을 해보니 발레공연의 특성 때문인지 내용이 아주 구체적으로 짜여져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신붓감을 찾아야 하는 왕자 지크프리트가 백조 사냥을 나섰다가 저주에 걸린 오디트와 만나 사랑을 약속하지만 마법사 로트바르트의 딸 오딜이 변장한 모습에 속게 된다. 그러나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왕자는 호수로 달려가 마법사를 물리치고 오디트와 저주받은 소녀들을 구출한다.


 이정도의 내용만 알고 있으면 공연을 보는 데 지장이 없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정말 '제대로 된' 발레를 보고 든 생각은, 발레가 집중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스토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공연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이 정말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청각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음악과 시각을 자극하는 화려한 무대와 의상, 무용수의 움직임이었다는 것을. 이는 마치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 같아서, 무대 위의 인물들이 무슨 대사를 주고 받았을지, 극적인 장면에서 얼마나 큰 기쁨과 슬픔을 느꼈을 지는 감상자의 해석에 맡겨진다. 줄거리의 대략적인 얼개만 알고 있다면, 굳이 언어로 그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져있으며 어떤 감정을 느끼는 지에 대해 해명될 필요가 없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저 사람들이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 거지? 지금 무슨 상황이길래 저런 표현이 나오는거지?" 하는 등의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세부적인 줄거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은연중에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발레 공연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언어의 힘을 빌려 풀어내야 하는 구체적인 정서가 아닌, 모든 감상과 해석을 관객에게 맡기는 하나의 완성된 그림이다. 이 집약적인 그림은 우리의 눈과 귀를 통해 저장되어 각자의 '백조의 호수'를 만들어낸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이 작품은 그래서인지 꽤 좋은 자리에서 보고 있는데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배경으로 서 있는 무용수들과 춤을 추는 무용수들, 소품을 나르는 역을 하는 무용수들 모두 매순간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춤 추느라, 내용 전개에 따라 자리 배치를 바꾸느라 정신이 없을텐데 어찌 그렇게 정갈한 기계처럼 움직이는지 보고 있자니 현실 감각이 떨어졌다. 다만 바닥에 경쾌하게 착착 달라붙는 토슈즈 소리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무대 위의 무용수들이 진짜 사람이며 내 눈 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자각시켜주었다.
 


+ 무용수에 대한 감상


오데트와 오딜

 백조 오데트와 흑조 오딜. 오데트는 가녀리고 청초한 이미지라면 오딜은 강하고 독하면서도 절도있는 느낌을 지니고 있다. 서로 상반된 매력을 지닌 두 여자주인공을 한 무용수가 맡는 레퍼토리는 마린스키 발레단이 최초라고 한다. 확실히 오데트와 오딜의 차이는 의상이나 분장의 차이 뿐만이 아니었다. 오데트 역은 움직임 자체가 부드럽고 우아한 느낌이었다면, 오딜 역에서는 움직임이 딱 딱 끊어지는 절도있고 강한 느낌이 전달됐다. 한 발레리나에게서 전달되는 상반된 디테일은 이번 공연의 자랑거리일만 하다.


지크프리트

 내가 본 공연에서 지크프리트를 연기한 무용수는 세르게이 우마넥이었다. 몸집이 큰 무용수였는데, 그의 퍼포먼스에서 받은 인상 또한 앞서 말한 '발레공연이 집중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바'에 부합했다. 다른 무용수들에 비해 체격이 큰 그는 똑같은 점프를 해도 더 무게감 있고 화려해보였다. 비주얼과 테크닉을 통해 구성되는 정교한 작품에서는 무용수의 신체조건까지 그 고려의 대상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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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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