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런 저도 사랑할수 있을까요? [문화전반]

글 입력 2017.11.1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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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jpg
 Marc Chagall (1887~1985)
에펠 탑의 신랑신부(Les mariés de la Tour Eiffel)
oil on canvas, 136.5 x 150cm



이런 저도 사랑할 수 있을까요?


I always thought I might be bad
Now I’m sure that its true
‘cause I think you’re so good
And I’m nothing like you


나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사랑을 믿지 않은 이유는 볼품없는 나를 사랑할 인간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책과 미술 작품에 머리를 박았던 이유도 내가 사랑을 느낄 장소가 그 곳뿐이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인간은 형체 없이 떠도는 빛이 되었다. 온갖 이상주의자가 써 내려가는 세계에는 굳어진 과거 대신 무한한 가능성만이 존재했다. 인간은 수많은 방어기제와 불안에 시달리는데, 책 속에서는 잠정적인 완결을 낸 이상이 가득했다. 모든 저자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새로운 세상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수많은 대중을 향해 쏟아지는 글자들은 그 내용이 조금 어설프고 바보 같아도 크고 작은 기대를 가득 품은 검은 빛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삶이 우울하고 지칠 때 나는 책을 읽었고, 그럴 때마다 외롭고 힘들기만 한 삶이 조금 기지개를 켰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육체를 잊을 수 있었다. 비워진 육체만큼 채워지는 것은 가치와 인간이라는 종에 갖는 이상한 통합감이었다. 나는 인간이라는 종을 사랑했지만, 사랑을 믿지 않았다.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나는 그것을 낭만적 파시즘이라 깎아내렸다. 젊은 내가 종착한 지점에는 연인으로서의 손진주가 없었다.

보통 앞에 이런 글을 쓰면 의견이 엄청 바뀔 것 같은데, 사랑에 대한 인식이 극적으로 바뀌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도 사랑이 정말 비효율적이고 바보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가치와 이상, 그리고 보편적 사랑은 세상을 바꾸는데, 열정을 포함한 사랑은 우주 속에서 가장 작은 존재에게 기대하고 묶여버리지 않는가? 융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 그 대상에게 자신의 신이 되어달라고 비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므로 그 기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얼굴에 그 대상을 맞춰가면서 천국과 지옥을 맛본다. 격렬한 감정의 역동은 한 사람 안에서 휘몰아친다. 세상 사람들이 인생에서 사랑은 필수적인 과정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젊을 때라면 반드시 사랑에 빠져봐야 한다고 말을 하는데, 솔직히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은 비효율적이고 바보 같은 감정인 것 같다. 짧은 인생에 공공선을 위한 최대한의 성과를 내고 싶은 나로서는 하지 않을 수 있다면 하기 싫다. 사랑은 바보 같고, 귀찮은 것이라서 하기 싫다. 이런 평가는 분명 그대로인데 조금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이런 감정이 우리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또, 사랑하지 않았다면 닿을 수 없는 하늘의 구름을 스치듯이라도 만질 수 있다는 점이다.


If I could begin to be
Half of what you think of me
I could do about anything
I could even learn how to love
When I see the way you act
Wondering when I'm coming back
I could do about anything
I could even learn how to love
Like you


인식이 바뀐 계기가 있었는데,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지면이 부족하다. 애당초 내가 그것을 모두 글로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아마 그때 였을 것이다. 친구랑 장난으로 점을 보러 갔다가, 무엇을 보고 싶냐고 물어보는 친구의 질문에 그 애를 떠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친구에게 처음 그 애를 좋아한다고 털어놓았을 때 집에 가서 한참 베개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왜 울었나를 생각해봤는데, 아직도 그때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 막연히 무슨 이윤지 모르겠다라기 보다는, 너무 이유가 많아서 모르겠다. 그 바보 같은 감정의 굴레에 먼저 굴러 들어갔다는 게 억울하고, 별 매력도 없는 내가 먼저 좋아한다는 게 짜증이 났다. 그 애를 좋아하기 전까지 나는 완벽했다. 그때까지 나는 공부도 잘했고, 목표나 취미도 확실했다. 여성이라기보다 손진주 답다고 생각했고,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친구라는 관계의 강한 유대감에 행복을 느꼈다. 한번도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 없는 나였는데 그 애를 좋아한다는 선언 하나에 나 자신이 별 볼 일 없는 실패자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 날 한번 엉엉 울고 나니 기분이 이상하게 나아졌다. 그때부터는 어쩌면, 이제부터 노력하면 잘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내가 앞에서 그렇게 까댔던 그 이상한 기대와 판타지를 꿈꿨다. 그때 당장 내가 한 노력은 정말 나다운 것들이었다. 제일 먼저 책을 엄청 읽었다.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기술부터 장석주 시인의 사랑에 대하여까지, 그때 내가 읽은 사랑에 관련된 책만 해도 10권이 넘을 것이다. 인터넷에 온갖 검색어로 사랑에 대해 검색하고, 여성성을 강조하라는 말에 짧은 머리에 뿔테 안경을 쓴 나 자신을 발견하고 책상에 머리를 박은 적도 있다. 그때 내가 한 수많은 찌질한 삽질들과 지웠다가 다시 쓴 글자들의 수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밀고 당기기고 할 것 없이 돌진하는 나 자신을 볼 때는 정말 내가 미쳤구나 싶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사랑이란 비효율적이고 바보 같고, 심지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 같다.


If I could begin to do
Something that does right by you
I would do about anything
I would even learn how to love


그 이후로 내가 느낀 감정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를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내가 어떤 전략을 쓰고, 어떤 식으로 어필하고, 그 사랑이 성공하고 실패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바보 같은 감정이 얼마나 삶에서 멋졌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친구들과 사랑에 대해서 대화할 때, 그 대상과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많았어도, 우리가 우리 안에서 느낀 사랑에 대해서는 이야기 한 적은 드물었다. 나처럼 하는 어설픈 짝사랑이었건, 연애였건 상관없이 그 감정을 가짐으로써 내가 느낀 그 기묘한 기류 말이다. 연애 시장에 나가기엔 초라하기 짝이 없는 내가, 처음 느낀 사랑조차도 사전에서 찾으려고 한 내가 느낀 사랑은 정말 멋진 것이었다. 엉엉 운 적도 있고, 비현실적이고 바보 같은 면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어떤 대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었다. 성공과 실패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사랑이 나를 상처입히지 못한다는 말이라기보다, 그 사랑이 남긴 기억이 이상한 희망을 남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해 기대가 높게 떠올랐다가 어떤 이유로 고꾸라지면 뭐 어떤가, 보호복만 잘 입으면 죽지는 않을 것이고, 하늘의 상쾌함을 느낀 사람은 치료가 되면 다시 한번 날아오르려 할 것이다. 바보 같은 감정에 맞게 바보 같은 인간으로서, 우리는 떨어질 것을 꿈꾸고 발돋움을 하지 않는다. 고백하건대, 앞의 글에서 사랑 따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한 60% 정도가 거짓말이다.  오늘도 떠오르고, 그다음에는 날아오르기 위해 밖을 나선다. 내일의 우리가 쪼오오금은 더 잘 될 수 있도록. 오늘은 나가기 전에 나와 같이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약간 응원해줘야겠다.





*노래는 LOVE LIKE YOU Song by Rebecca sugar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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