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흙으로 쌓인 대화, <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 [문학]

글 입력 2017.10.16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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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는다. 말을 입안에서 굴려보았다. 비단 꽃잎만 그런 것이 아니다. 꽃잎이 그렇듯, 이파리도, 뿌리마저도 모두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듬해 봄이 되면 문득 그 주변에 또 작은 새싹이 조그맣게 자라고 있다. 어느 시멘트 바닥 사이나, 어느 쟁쟁한 풀 사이에서도 아무도 모르는 곳이더라도. 그렇게 그 자리에 있다. 그게 가야할 길이었다. 꽃이 화려하지 않아도, 이파리가 윤이 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쓸모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그렇게 나고 지고 자라면 되는 것이다.
 
  작가 최인호와 법정스님의 대담을 담아놓은 이 책은 대화 흐름이 매끄럽다. 나에게 이런 대화의 기회가 있었다면 저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싶은 만큼. 최인호가 주로 질문을 하고 주제를 던지는 입장이라 그런지 대화를 펼쳐내고 풀어내는 입장이다. 대화의 합이 마치 멋진 춤을 보는 것 같다. 많은 내용이나 예시가 들어있는 편이다. 법정스님은 주로 대답하는 위치에 있어 펼쳐진 대화의 맥을 잡는 느낌이다. 널뛰기도 아니고 평행선도 아니다. 하나의 맥 위에 둘이 앉아있다.
 
  사회 전반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면 3시간여의 대담이 곧 우리가 사는 세상같은 느낌이 든다. 사랑, 죽음, 나라는 존재, 외로움, 가족, 종교, 여유와 열정 같은 자세까지. 알았다. 그들의 대화가 조금 달랐던 이유를, 각자의 의견을 조심스럽지 않게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사족이 없다. 나처럼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라거나 '그럴 수도 있지', '그 때 그 때 다르지' 같은 형식에 사로잡힌 겸손이나 양시양비론은 없는 것이다. 내 생각은 그렇고, 당신의 생각은 이렇구나. 그러면 될 뿐이다. 책을 읽고 나서 혼자만의 작은 이야기를 풀어보기로 했다. 종교. 외로움과 죽음. 말과 글에 대해.
 
  두 주인공이 몸담은 불교와 천주교란 종교는 개인적으로 흥미가 많다. 서로 다른 이유 때문이다. 종교에 관심은 많지만 맛보기만 하러 다니던 내가 그나마 오래 접했던 종교가 불교였다. 천주교는 접해보지 않은 종교라서 흥미가 있다. 사실 잠깐 맛보기로만 봐서 그런지 모든 종교가 그렇게 아주 다르게 느껴지진 않았다. 문화처럼 사람이 사는 방식이라는 핵심은 같고 그 잔가지만 다른 것 같은 느낌.
 
  그런데도 그 잔가지 때문에 서로를 헐뜯거나 죽이고 증오하고 있어서 도망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도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내가 어느 종교를 믿는다고 하면 나와 같은 종교를 믿는 동지가 반 생기는 기쁨보다도 나와 등을 돌리고 불편해할 '적 아닌 적'이 생기는 게 더 싫다. 그래서 쉽게 말하지 않는다. 나를 숨겨서라도 그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이루는 한 가지 요소가 나를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적인 기준이 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더라. 오래 나를 본 사람은 나에게 교회나 성당누나 같진 않고 절누나 같다고 했었다. 속으로 웃었다. 그러고 보니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보니 불교인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다른 종교의 친구와 가끔은 좁혀지지 않는 거리에 고민할 때가 있었다. 그 친구도 이 간극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종교가 그렇게도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구나 좌절하고 싶을 때쯤 이 책은 내가 바라던 실사판이었다. 불가능한 게 아니다. 다른 종교여도 받아들이는 게 가능하지 않나. 우리가 사람인 건 변하지 않는다.
 
  외로움과 죽음, 나라는 사람에 대한 고민은 자주 하고 있던 고민이었다. 외로움이 무어냐 묻는 최인호 작가에게 법정스님은 외로움은 옆구리로 스쳐가는 마른 바람같은 것이라 답했다. 옆구리를 스치는 마른 바람. 서늘하면서도 정신을 맑게 하는 바람. 외로울 때가 많았다. 사라지지 않고 늘 있는 게 적응이 안되었던 듯 싶다. 사실 외로움이 밤 하늘 별 같은 존재인데. 잠시 빛에 가려 있어 안 느껴질 뿐이지 늘 그 자리에 있는. 그리 생각하니 외로움이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지만 나를 또렷하게 볼 수 있게 하는 거울같은 존재가 되었다. 마른 바람을 때때로 큰 회오리를 그리며 살갗에 생채기를 내곤 한다. 날씨처럼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외로움에 함락될 것 같을 땐 파묻혀보기도 했다. 패기로운 생각 때문이다. 외로움이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출발한 나의 어떤 생각이 나를 죽음으로 이끌 수는 있다. 버텨낸다고 허우적거리다 쓰러지지 말고 물살에 맡기면 되려 덜 다치지 않겠지. 생각하곤 했다. 어떤 인디언들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나무 뿌리나 줄기처럼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했다고 하길래. 나의 주변과 내가 이어진 상상을 해보았다. 나의 몸만 해도 수많은 줄기가 뻗어있진 않은가. 촘촘하고 복잡하게 얽힌 모습을 보았다. 수긍한다. 나는 혼자 덩그러니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것은 바람이지 끝이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그 큰 바람의 한 가운데에 있을 때 나는 나라는 아주 오래된 친구와 함께 하고 있지 않은가. 심장이 뛰고 숨을 내쉬며 또렷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
 
  죽음을 자주 생각한다. 자주 상상한다. 오늘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멈춘 숨을. 그리고 어쩌면 나의 소중한 존재들이, 혹은 내가 다음 차례가 되는 것을. 슬퍼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해주지 못한 것들에 아쉬워하며 죄책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이거라도 해놔야지, 나중에 조금 덜 미안하려고 적금을 채워넣듯 마음 편하려고 뭔가 할 때도 있다. 절로 몸이 그들에게 움직일 때도 있지만 내 문제에 바빠 신경쓰고 싶지 않을 때도 있을 때 그렇게 생각한다. 의외로 지금 죽어도 그렇게 한이 서릴 것 같진 않다. 못해본 게 많아서 아쉽다. 잊혀지는 것이 무섭다. 그러나 죽지 않고 사는 것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더 무섭다. 작은 것은 나의 몫이지만 나를 세상에 데려오고 가는 크나큰 것을 어찌할 수 있을까. 죽음을 생각할수록 삶이 떠오른다. 역설도 반어도 아닌 이유는 그 둘이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있을 때 잘해야 된다는 말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라고 본다. 쓸데없이 살아도 좋지만 나를 위하며 살고 있는가. 조연으로 살고 싶은 사람도, 조연으로 태어난 사람도 없다. 책에 나왔던 유명한 중국의 바보 스님의 문구를 담아두기로 했다. 잊지 말자. 주인공이다. 주인공이다. 주인공이다. 속지 말자.
 
  말과 글은 마음으로 닿는 음악이자 그림이다. 최인호 작가가 불교나 유교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말로 던져지고, 행동으로 이어졌듯이. 면접 때 거짓말을 잘 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아부성 발언같은 자잘한 부분 빼고는 많이 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실제로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의 판단으로는 안전한 대답이기도 했다. 나중에 만난 면접관은 질문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던진 것이라 했다. 거짓말을 아예 하지 않는다는 사람에겐 최하점을 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이 거짓이라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을까. 안전한 대답을 하는 내가 거짓말을 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답변을 한 그 사람이 진실을 말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한 문항이라도 최하점을 받으면 모든 답변이 좋았어도 탈락이다. 아찔했다. 나의 말은 운좋게 그의 마음에 닿을 수 있었다는 것에.
 
  눈을 마주치는 건 민망하게 느껴져도 말과 글이 어색한 적은 없었다. 그 많은 말을 하고 글을 써내려가면 후련함과 고요함이 남을 때가 있다. 우스갯소리로 '쾌변'이고 진지하게는 꿈이다. 경계를 넘나드는 핑퐁같은 아슬아슬한 말을 좋아하고 읽다가 멈칫하며 쉼표와 공간을 만들어 내는 글을 좋아한다. 왜 좋아하냐는 모든 질문의 답은 그냥 좋다는 말이 좋다. 이유가 없다. 좋다. 멋과 아름다움이 담긴 말과 글. 그것을 함께 나누는 이들을 생각하며 예전에 썼던 글이 있다.
 

그곳은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싶어하며
글은 별 볼 일 없다는 세상에
그래도 끄적끄적 해봐야지
숨은 마음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마음 속에
연필 하나 만연필 하나 숨겨두고
자신의 하늘에 공을 띄우는
작은 사람들

 
  책은 최인호 작가가 법정 스님을 떠나 보낸 후 시작되었고 발간은 두 사람 모두 세상을 떠나고야 나왔다. 조곤조곤 바로 옆에서 들리듯 흐르던 대화가 끝맺는 마지막 장에는 노란 봄꽃과 봄날이 그려져 있었다. 책이 나온지 여러 해가 지나 어느 때보다도 푸른 가을 하늘에 길 위의 사람들은 멈춰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책을 손에 든 동안 맡은 꽃 향기는 손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작은 틈새에 꼿꼿하게 피어난 제비꽃 향기였다. 육신을 내려놓을 뿐이라며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법정스님의 말씀과 함께 빙그레 웃어보였던 최인호 작가의 자리 역시 서늘한 바람에도 따뜻한 온기가 지워지지 않았다. 아마도 이 두분,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역시 봄날이 다시 찾아오듯, 꽃이 피고 이파리가 자라나듯 여기저기서 대화를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보스라운 흙의 대화를.


  * 사랑을 잘 모르겠다는 글을 작년에 썼다. 모르겠지만 요즘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조금 더 깊이, 더 또렷하게 느껴보고 싶다. 법정스님처럼, 최인호 작가처럼 간결하게 말할 수 있는 날까지.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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