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과 나의 울타리. < 타인의 취향 > [영화]

취미의 공유, 향상, 생성에 관한 문제
글 입력 2017.08.24 22:4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타인의 취향 (1999)
LE GOUT DES AUTRES




* 본 글에는 해당 작품의 중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기호를 가지고 있다. ‘좋다’와 ‘싫다’로 간단히 나누어지는 이것은 단순한 감정의 상태쯤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 기호가 점점 뚜렷해져 한 사람의 기준이 된다면, 즉 ‘취향’으로 발전한다면 개인에게 미치는 그 영향력은 막강해진다. 우리는 매 순간과 결정에 취향을 적용하지만 그것이 자신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그에 대해 의문을 쉽게 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향은 우리 안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것은 우리가 이를 본질적 측면에서 탐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이 글에서는 취미와 관련해 세 가지 특징(공유성, 향상 가능성, 생성)을 다룰 것이며, 1999년 개봉된 아네스 자우이 감독의 영화 < 타인의 취향 >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바탕으로 이야기 하고자 한다.


le%20gout%20des%20autresa.jpg
 


취미는 공유할 수 있는가


어떤 것이 공유된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 공통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나에게 있는 무언가가 다른 누군가에게도 있을 때, 이것은 양쪽에서 각각의 모습으로 상호영향을 끼친다. 취미는 공유 가능하며, 그 근거가 되는 보편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칸트의 이론을 빌릴 수 있다. 칸트는 취미 판단의 발단을 사물이 아닌 인간 내면에서부터 찾았고, 우리에게 이미 내재하여 존재하는 성질이라고 생각했다. 극히 주관적인 취향의 문제에서 그는 사람들 사이 공통감(common sense)을 말하며 보편성을 주장한다. 그는 우리가 어떤 상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붙잡아 기존에 알던 오성의 개념에 적용하여 인식하는 과정에서, 마땅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아 스스로 그것을 직접 설정하려는 때에 미적 쾌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즉, 오성과 상상력 사이 자유로운 유희적 활동이 이루어지는데, 이 과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통으로 갖는 인식 활동이며, 칸트는 여기서 취미 판단의 보편성에 대한 근거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인식 활동이 누구에게나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지라도, 개인이 살아온 환경과 쌓아온 사고방식 등이 너무나 다양한 지경에서 취향이 공유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들은 취미가 공유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질 뿐이다. 이는 < 타인의 취향 >의 인물들에게서 매우 잘 드러나는데, 카스텔라와 클라라, 앙젤리끄와 베아트리스, 마니와 프랑크의 경우가 모두 해당한다. 예술적 소양이라고는 가져본 적 없던 카스텔라는 예술에 깊게 몸담고 있는 클라라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공유하는 사고관이 부족한 그들 관계에서 그녀와 가까워지려는 그의 노력은 그녀에겐 밀어낼 수밖에 없는 거부감이 될 뿐이다. 카스텔라의 아내인 앙젤리끄와 그의 여동생인 베아트리스의 인테리어에 관한 극명한 취향 차이 역시 우리로 하여금 취미 공유의 힘겨움을 되새기게 한다. 자유분방한 마니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프랑크의 사례도 다르지 않다.


The-Taste-of-Others.jpg
 

이처럼 취향이 공유되는 데 발생하는 어려움은 대개 남의 취향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성질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편견으로 대표되며 앙젤리끄가 갖는 인테리어 디자인으로서의 자부심과 확신이 그 극단적 예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이들을 내 기준에 맞추며 그것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편견은 취미 공유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는 상대방을 ‘이상하게’ 보게 되고 결론적으로 나와는 너무 다른 그와의 관계를 어그러뜨리게 된다. 그렇기에 겪어온 환경과 사고관이 길러진 방식이 다름에도 취향이 비슷한 우연한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무수한 취향 불일치의 경우를 두고 현명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취미는 공유될 수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공통된 능력을 소지하고 있고, 편견의 방해에서 벗어남으로써 그 즐거움을 더욱 누릴 수 있게 된다.



취미는 향상될 수 있는가


취미의 향상 가능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취미의 등급 또한 인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낮은 등급의 취미가 보다 나은 등급의 것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의 취향을 두고 그 높고 낮음을 따지는 것은 사실상 억지처럼 보일 것이다. 산을 좋아하는 것과 바다를 좋아하는 것 사이에 우열을 따지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온다면, 취미는 등급을 갖게 되며 따라서 그것의 향상 또한 가능함을 비교적 쉽게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천재들은 분명 일반인과는 다른 고차원의 미적 감각과 취미 판단 능력을 갖추며, 그것을 바탕으로 뛰어난 작품을 창조한다. 예술 활동은 분명 개인의 취미가 적용되는 것이며 모두가 인정할 만큼 빼어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천재들의 수준 높은 취향으로 취미의 등급은 설명될 수 있다.


28af7078a06b21e6a2ab3f1175d3350b7de6c00a.jpg

 
그렇다면 취미가 향상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소위 천재라 불리는 이들은 이미 고차원의 미적 판단 능력을 타고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후천적 노력을 통해 자신의 감각을 연마해 상위 수준에 미치도록 노력하는 예술적 영역에 해당하는 방법은 있다. 그러나 나는 일상적 영역에서도 취미를 향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취미의 등급을 매겨 그 나아짐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부족한 감각을 키움으로써 취미를 향상하는 것 말고도 불필요한 감각을 제거하는 과정 또한 그것을 실현한다고 생각한다. 앞선 주제에서 말했듯 편견은 우리 눈에 가리개를 씌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그 가리개를 벗고 다름을 인정하여 더욱 넓은 시각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개인의 미적 판단 능력이 향상된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클라라는 예술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한 여성이다. 적어도 본인이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교양 있는 존재라고 여기며, 따라서 예술적 소양이라고는 찾기 힘든 카스텔라를 무시하며 낮잡아본다. 그녀의 이러한 허위 의식은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이는 통로를 차단하면서 그녀의 시야를 좁힌다. 그녀는 자신의 예술적 감각이 침해받지 않기 위해 울타리를 치지만, 예술이야말로 신선함으로 환기 되어야 하는 창조의 영역이기에 이러한 그녀의 태도는 결론적으로 그녀를 정체시키는 요소가 된다. 또한, 그녀는 이성을 보는 시각에서 역시 단호한 자기 의사를 표현한다. 마니가 여러 번 남자들을 소개할 때마다 깊게 알아볼 생각도 없이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며 “이상하다”고 규정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클라라의 편협한 시각은 이미 카스텔라의 마음을 거절한 이후에 그를 다시 찾아가 그의 미적 취향을 모독하는 방문에까지 이어진다. 그녀는 그림을 볼 줄 모르는 카스텔라가 경제적으로 휘둘리는 상황이라 단정 짓고 그에게 동정심을 가진 채 그를 구해주고자 조언을 하러 찾아가지만, 카스텔라는 냉정하고 확실하게 그녀의 허위의식을 무너뜨린다. 이후 그녀는 충격을 받지만, 자신의 눈에서 편견의 그물을 걷고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된다. 성장이 비교와 성찰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녀는 그의 관점에서 그의 취향을 생각하게 된 것만으로도 성장했고 취미 판단 능력이 향상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 넓은 시각을 갖게 됨으로써 더 많은 비교 대상을 볼 수 있게 되고, 편견이 빠뜨리는 위험성에서 벗어나 자신의 취미를 발전시킬 가능성까지 높인 그녀의 변화는 취미가 일상적 영역에서도 향상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046525_ph3_jpg-r_1280_720-f_jpg-q_x-xxyxx.jpg



취미는 생성될 수 있는가


취미는 우리에게 늘 있는 것이기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나머지 새로운 종류의 것이 생성된다는 게 언뜻 보기에 어려운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취미는 생성될 수 있다. 물론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것, 성장 환경의 영향으로 길러지는 것이 그 사람을 오래도록 규정하는 기준이 되곤 한다. 그러나 취미는 분명 후천적으로도 생겨난다. 심지어 관련된 것이라곤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영역에서까지 발생할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 카스텔라가 그 예이다. 애초에 그가 연극을 보러 간 것은 조카에게 그녀가 나오는 연극을 보겠노라 약속했고, 당일 아내가 등을 떠 밀은 까닭이다. 그에겐 객관적인 미적 감각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애초에 본인 스스로가 예술적 영역에 관심이 하나도 없다 보니 비교를 통한 발전이라고는 이루어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아내가 꽃 모양으로, 새 모양으로 그의 집을 맘껏 치장하는 것을 방관했다. 아무런 의견이 없으니 어떻게 되든 딱히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 소위 예술에 ‘문외한’이었던 그에게 엄청난 변화가 찾아온다. 억지로 감상한 연극 < 베레니스 >가 단단히 숨겨져 있던 그의 예술적 감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는 티튀스의 슬픔을 연기하는 클라라에게 극도로 몰입한 나머지 그녀에게 반해버린다. 그날의 연극은 그에게 무려 사랑의 감정까지 불러 낼 정도로 거대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카스텔라는 이전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영역에서 취미의 생성을 경험한다. 이후 그는 예술계의 객관적인 평가기준을 잘 이해하지는 못할지라도 예술에 있어서 그만의 취향을 갖게 된다.


9573_backdrop_scale_1280xauto.jpg

Anne_Alvaro_Berenice_Racine_Le_Gout_des_autres_Agnes_Jaoui.jpg
 
 image.jpg


사람이 어떤 것에 대하여 단호한, 이 경우에는 ‘취향’이 생긴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남들이 하는 대로 순응하고만 있지 않는다. 클라라의 친구가 그린 한 추상화가 마음에 들었던 카스텔라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림을 벽에 걸어둔다. 하지만 집이 곧 자부심이며 자신의 미적 소양을 맘껏 펼치는 장으로 여기는 부인 앙젤리끄는 그것을 말도 안 되는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긴다. 카스텔라는 자신의 의사는 묻지 않고 그림을 떼어낸 그녀에게 분개하며 집을 나가버린다. 이처럼 한 사람에게 새로운 취미의 생성은 인생에 있어 큰 변화를 주저하지 않고 행하게 만드는 영향력을 부여한다.

이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을 고려함에 있어 마치 그 변화가 마땅히 그럴만한 것으로 여기게끔 만드는 것이다. 앞서 말한 클라라의 경우 역시 취미가 향상된 것과 동시에 편견을 거두고 상대를 보는 데에서 새로운 취미가 생성되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의 취향을 인정하고 나서야 그를 제대로 바라보게 되고 비로소 그를 궁금해하며 관심을 가지는 그녀로부터 우리는 또 한 번 취미의 발생이 갖는 영향력을 실감하게 된다. 이처럼 취미는 비단 선천적으로 가지는 것만이 아니라 후천적 경험이나 어떤 계기를 통해서도 일깨워질 수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046525_ph1.jpg
 




지금까지 취미를 공유성과 향상, 생성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취미를 공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분명 가능한 것이며 우리는 취미의 참된 공유를 통해 더욱 긍정적인 관계를 얻을 수 있다. 더불어 취미는 향상될 수 있는데, 취미의 수준을 나누어 후천적 노력을 통해 이를 실현하는 예술적 영역 이외에도, 보다 바람직한 기준 설정을 도우며 비교 대상을 늘려주는 편견의 제거를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취미는 특정 순간에 생성될 수도 있으며 그 영향력이 막대하여 개인의 인생을 전혀 다른 궤도로 이끌 수도 있음 또한 이야기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취미를 갖고 살아간다. 그것이 다른 사람과 다름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것이 싫어 피하기도한다. 그러나 진정한 취미의 발전은 그것이 공유 및 비교되고 다듬어지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우리는 편견에서 벗어나 이를 실현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2720.jpg



이미지 출처: 구글



염승희_에디터11기.jpg
 

[염승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