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기 - '위공자열전' [문학]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의 비윤리적 행동, 용납되어야 하는가?
글 입력 2017.08.22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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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사기』의 ‘위공자열전’은 위공자라는 인물의 이야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 위나라 사람인 그의 이름은 무기(無忌)로, 그는 어질며 인재를 존중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을 사귈 때 그가 어진 사람이든, 무례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겸손하게 예의를 갖추며 대하였다. 이러한 어진 마음 덕분에 그에게는 3천 명이 넘는 식객들이 있었다. 공자에게는 누이가 있었는데, 그녀는 조나라 평원군의 부인이었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해오자, 공자의 누이는 여러 차례 위나라의 안희왕과 공자에게 도움을 청해 왔다. 안희왕은 장군 진비(晉鄙)를 시켜 10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조나라를 구원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진나라의 협박에 안희왕은 겁을 먹고 진비에게 도우러 가는 것을 멈추라 명령한다. 이에 조나라의 평원군은 사신을 보내 공자를 나무랐고, 공자는 계속해서 안희왕에게 조나라를 구원하자고 청했지만 듣지 않았다. 공자는 자신만이라도 식객들을 이끌고 조나라로 가서 죽으려 했는데, 일전에 사귄 후영(侯嬴)이라는 이름의 문지기를 만나 조언을 듣게 된다. 후영은 일전에 공자가 도와줬던 여희(如姬)라는 사람을 시켜 장군 진비의 병부(兵符, 왕으로부터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은 사실을 입증해주는 물건)를 훔쳐오게 할 것을 제안한다. 공자는 그의 말을 따랐고, 여희는 병부를 훔쳐와 공자에게 바쳤다. 공자가 병부를 가지고 위왕의 명령이라며 진비의 병권을 접수하려고 하자, 진비는 그를 의심했다. 이에 공자는 진비를 죽이고 병사를 취해 조나라를 도우러 가게 된다. 결국 그는 진나라의 공격을 막고 조나라를 구원한다.

 위공자는 어질고,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덕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를 따르는 식객들이 많았던 것도 이러한 그의 성품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조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한 행동을 옳다고만 바라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가 후에 위왕과의 관계를 회복했다고 해도, 병부를 훔치고 거짓으로 왕의 명령을 조장하며 장군을 죽이고 병사들을 마음대로 동원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런 방법으로 얻어낸 승리는 결코 정당하며 고귀한 결과라고 할 수도 없다. 따라서 나는 윤리를 지키기 힘든 극한 상황이거나 무조건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지켜야 할 윤리는 존재한다는 입장이며, 이어 본론에서는 그러한 입장을 뒷받침할 사례들을 제시할 것이다.



Ⅱ. 본론
    
1. 일본군의 생체 실험
 
 과거 일본의 ‘731 부대’는 1945년까지 생물, 화학 무기 개발 그리고 치명적인 생체 실험을 진행했다. 암호명 ‘마루타’로 실험을 진행할 때 인간을 사용했다. 실험 대상은 ‘마루타 (통나무)’라고 불렸으며, 실험 대상은 주변 인구 집단에서 징용되었다. 실험을 위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심지어는 임산부까지 동원되었다. 정확한 실험 결과를 위해 마취도 없이, 숨이 붙어있는 상태의 사람에게 수많은 해부와 실험이 진행했다. 현재까지도 일본은 생체 실험과 관련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부도덕한 방법으로 취득한 의학 정보는 과연 사용해도 문제가 없는 것인가?

 전쟁이라는 특수적인 상황에 대해 생각해봤을 때, 전쟁은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는 극한의 상황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쟁의 기본 원칙은 민간인 공격을 배제하며, 이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생체 실험의 경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민간인의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이용하며 그들의 삶을 앗아가 버렸다. 이것은 생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명백히 비윤리적인 행위이다. 전쟁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생명의 가치에 대한 입장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생체 실험은 윤리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즉, 어떤 경우라도 해할 수 없는 것이 생명이기 때문에 극한 상황인 전쟁에서도 생명을 해하는 실험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전쟁이 종료된 경우를 생각해볼 때, 생체 실험을 통해 얻은 의학 정보를 이용한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얻은 의학 정보를 허용하는 것은 근시안적이며 경제적 효율성에만 가치를 뒀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이것이 허가된다면 미래에 어떤 형태의 실험이 진행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마루타’ 실험과 같은 상황이 또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실험을 통해 얻는 결과로 눈에 띄는 성과를 얻는다면 인간은 이와 같은 기회를 잡기 위해 더 악랄한 방법까지 동원할지도 모른다. 또한, 결과의 중요성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결과적으로 많은 의학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과학에 크게 기여했다고 해도 과정이 올바르지 않았다는 것은 그에 따른 결과 역시 올바르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생명을 해를 가하면서 얻게 된 결과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경제적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기 때문에 이익을 증대시키는 부분에 중점을 맞춘다 하더라도 생명의 가치는 경제적으로 환산 불가하다. 생체 실험을 통해 얻은 의학 정보 이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은 도덕 원칙을 바탕으로 하며, 과정의 원칙을 경제적 가치보다 중시한다. 만약 생체 실험을 통한 의학 정보 이용이 정당화 된다면, 과정의 옳고 그름 여부와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얼마큼 경제적인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유용한 결과를 이끌어 냈는지에 대해서만 중점을 두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과정의 정당성이 우선시 되어야 하며 결과의 합이 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전쟁 중 실행된 생체 실험은 비윤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2.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책임의 여부

 홀로코스트, 즉 나치 유대인학살은 전무후무한 끔찍한 사건으로 손꼽힌다. 나치 정당은 아무 죄 없는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고 가 비인간적인 폭력과 살인을 저질렀고, 가스실, 생체실험 등 그들의 끔찍한 행태는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당시 대학살에 앞장서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간부 아돌프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나는 유대인을 직접 죽인 적이 없다. 나는 그저 공무원으로서 순수히 명령을 따랐을 뿐이었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본인의 의지로 한 것이 아닌,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으므로 책임을 질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법적으로 처벌을 받거나,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끔찍한 범죄 행위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이들의 행태는 명백히 비인간적이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아이히만의 죄목은 ‘생각하지 않은 죄’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해 "그는 근면한 인간이다. 따라서 그의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다만 그가 유죄인 것은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라고 언급했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아이히만이 저지른 죄는 어떤 이유에서든 아이히만의 정의롭지 못한 판단 하에 행해진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대학살, 전쟁 등의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처벌과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없다.

 
3. 세계 1차 대전 중의 인간애

 세계 1차 대전이 진행되던 무렵, 사람들은 계속되는 전쟁에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피폐해지고 병들어갔다. 서로의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하거나 재산을 약탈하고 심지어는 서로 목숨을 앗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도덕적인 윤리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했다. 폴란드 군의 한 병사는 지휘 장교의 명령대로 한 집을 수색하게 된다. 그러나 그 집의 다락방에는 수십명의 적국 민간인들이 숨어있었다. 이를 발견한 병사는 장교에게 적국의 민간인들이 숨어있다고 보고만 한다면 승진을 하고 큰 공을 세우는 것이 된다. 하지만 이 병사는 아무도 없다고 보고를 한 뒤 군대가 집을 떠나게 한다.

 이러한 경우를 보았을 때 도덕적 윤리의 가치를 다른 가치보다 중요시 하는 것은 우리가 정상적인 생각이 가능할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병사는 다른 가치들 보다 도덕적인 윤리의 잣대를 먼저 들이밀었을 것이다. 자기가 승진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이 희생하게 되는 것을 도덕적 윤리의 잣대에 어긋나는 행위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 인간의 예시로 볼 수 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인간은 어떤 것이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물론 전쟁이라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 더 근본적인 행위일 수 있으나 전쟁이나 재해같이 극한인 상황에서도 우리는 도덕적인 기준에 맞추어 판단해야 하고 인도적인 행위를 실현해야 한다.


 
Ⅲ. 결론
 
 ‘제네바 협약’은 전쟁 상황에서도 윤리적, 인도적 행위를 유도하기 위하여 정해놓은 국제 협약이다. 제네바 협약은 적대 행위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보호를 보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민간인, 부상당해 싸울 수 없는 군인, 인질 등이 포함되며, 이들에 대한 고문, 학대, 살인,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 모욕감을 주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부상당한 사람에 대해서는 치료와 간호를 해 줄 것을 명시한다. 물론 어떤 한 국가가 이 협약을 무시해버린다고 해도 당장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전쟁이 끝난 후에 받게 될 비난과 책임 등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들은 완벽하게는 아닐지 몰라도 제네바 협약을 준수하고 있다. 이렇듯 제네바 협약과 같은 국제적인 약속을 만들어 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 상황일지라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를 하고 최소한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위공자는 어질고 타인을 잘 대하는 사람이었지만, 부정한 방법을 통해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는 옳지 않은 행위를 하였다. 위공자는 조나라를 구원한 뒤 한참을 조나라에서 지내다가 결국 다시 위나라 안희왕과 화해하게 된다. 그리고 위나라의 장군이 되어 진나라를 격파한다. 하지만 위공자는 조나라를 구하려고 썼던 비도덕적인 과정에서 진비의 사람들에게 미움을 샀고, 진나라는 이 점을 이용해 진비의 식객들을 꾀어내어 위공자를 모함하였고, 또 다시 위공자를 안희왕에게 미움 받게 만든다. 결국 위공자는 장군의 자리에서 쫓겨나 비참하게 살다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정국일지라도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며 뜻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얻게 되는 결과는 결코 정당하고 떳떳하지 못하며, 이에 그치지 않고 그 행위로 인한 부작용은 행위의 주체에게 다시 돌아오고 말 것이다.
 
 
[이수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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