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가 이 작은 무대를 비탄으로 채우는가 - 트로이의 여인들 @예술공간 서울

- 그리스의 여인들2 -
글 입력 2017.08.1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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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작은 무대를 비탄으로 채우는가"

트로이의 여인들
-그리스의 여인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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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어두운 저녁이기도 한 차에 더욱 찾기 힘들었던 #예술공간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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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소를 찾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면, 이 벌집 모양같이 구멍이 송송 난 외관을 기억하자. 필자도 이 곳에서 하는 공연은 처음이었다. 오늘 보게 될 공연은 극단 #떼아뜨르봄날 의 <트로이의 여인들>로 어릴 적 만화책으로 접하곤 했던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연극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별자리를 꾸준히 관측해본 적이 있는 필자는 설렘이 더욱 컸다. 감수성이 풍부하던 사춘기 시절 강인하고도 따뜻한, 엄격하지만 온화한 여러 신들의 이야기에 푹 빠지곤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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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연극은 마냥 즐거운 내용만을 담지는 않았다. 어릴 때는 그저 웃어 넘기면서 읽곤 했던 이야기가 다시 돌이켜보면 참 냉정하고 현실적인 부분을 많이 담고 있더라. 영웅들과 트로이의 용사들이 희생된 이유도 개념 없는 세 여신이 한 사내를 농락한 데서 시작하였으나 전쟁은 폐허가 된 트로이만을 남기고 끝나지 않았다. 이어지는 시간과 이야기 속에 거대한 철학이 꿈틀대고 있다. 13명의 여인과 3명의 남성들의 처절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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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군이 뛰쳐나와 트로이 성에 불을 질렀다. 승리를 자축한 잔치 끝에 쓰러져 자던 트로이 군사들은 죽음을 면치 못했고, 그리스군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완벽한 트로이의 패배. 하지만 헤카베와 카산드라, 안드로마케는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원치 않는 삶을 살아갈 운명이 되지만 의연함을 잃지 않는다. 10년을 지루하게 끌어온 트로이전쟁을 마감시킨 그리스의 영웅이자 트로이의 최대 원수의 오디세우스의 시녀가 되는 '헤카베'의 심정은,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높은 성벽에서 떨어지는 죽음을 지켜보기만 해야하는 '안드로마케'의 심정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지만 본이만을 알 수 있는 아폴론이 준 예언 능력으로 모두 알고 있었던 '카산드라'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왕비, 공주의 남부럽지 않았던 그들의 신분이 하루 아침에 노비로 전락한다.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역겨울 정도의 앞날이 그녀들을 천천히 옥죄어 온다. 돌이킬 수 없는 파멸과 나락의 벼랑 끝에 선 패전국의 여인들의 모습을 가슴 먹먹하게 그러면서도 참담하게 잘 그려낸 연극이다. '만약 내가 저와 같은 상황이라면?'의 물음을 나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 한 순간에 변한 운명을 견디어 내는 트로이 여인들의 강인함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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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역사야 말로 가해자와 피해자, 강자와 약자, 승자와 패자, 권력자와 피억압자 사이에서 얼마 만큼의 균형잡힌 시선과 다양한 시점을 지녀야 하는지를 강조한다. 승자의 이야기만이 진리가 아니며, 승자의 이야기 뒤에 파묻힌 패자의 무력감과 절망감은 감히 우리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13명의 여인들은 아니, '헬레나'를 제외한 12명의 여인들은 최후까지 존엄과 의연함을 잃지 않고자 투쟁하였다. 비참하고 무너져내릴 것만 같은 상황 속에서도 울려퍼지는 잔잔한 코러스가 관객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음악적 화법과 동시에 언어 중심의 연극인 <트로이의 여인들>은 작은 무대를 긴장감과 비탄으로 가득 채운다. 절제되고 박력 있는 움직임과 춤, 짧고 속도감 있는 대사와 장엄하고 유려한 독백 혹은 집단적 레시타티브의 적절한 혼용 등, 원작의 분위기와 정조가 감각적으로 박진감 있게 무대 위에 펼쳐진다. 더불어 콘트라베이스와 기타의 선율이 묘하게 분위기에 잘 어우러진다.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연극이다. 그리고 극단 떼아뜨르 봄날의 그리스의 여인들 시리즈 중 하나인 지난 6월에 공연한 <안티고네>를 보지 못하였다는 사실이 안타깝더라. 믿고 보는 극단 떼아뜨르 봄날의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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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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