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암보암] 그들의 문화로 나만의 시간을 채우다_캐나다 밴쿠버

글 입력 2017.08.1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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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couver
07.29~08.03

 
 여행은 무서운 존재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기에,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용기와 노력이 필요했기에 대부분의 여행객은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택한다. 같은 국가, 같은 도시를 찾은 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백 명이 있으면 백 가지 취향이 있는 법. 물론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처럼 너무 유명한 나머지 안 보고 오면 손해인 것만 같은 것들도 있긴 하지만 그것들조차 여행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에펠탑을 보기 전에, 그리고 보고 나서 무엇을 할 것인가?’ 바로 그 시간들을 채워가는 방식에 한 사람의 취향과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리운 빅토리아를 떠나 밴쿠버에 6일 정도 머물렀다. 혼자 여행할 계획이었지만 프로그램을 마친 후 나처럼 밴쿠버로 온 사람들이 꽤 많아 일정을 함께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기간을 길게 잡은 덕에 오로지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이 상당했고, 그래서 나는 그 시간들을 현지의 문화를 뒤쫓는 것으로 꾸며나갔다.



1. Vancouver Public Library


 여행 중 책을 읽지 않더라도 도서관이나 서점에는 꼭 가보려고 한다. 원래는 단순히 책으로 가득 찬 공간을 좋아해서였지만 캐나다에서의 경험을 계기로 도서관과 서점 역시 그 나라의 문화와 분위기를 알기에 적격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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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쿠버에서 묵었던 호스텔은 정말 난잡하기 그지없는 그랜빌 스트리트에 있었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살짝 몸을 틀기만 하면 깔끔한 거리가 펼쳐졌는데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콜로세움을 본떠 만든 밴쿠버 공공 도서관, VPL이 위치해 있었다.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발견했던 건 무지개였다. 도서관 로비에는 카페나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 상점의 머리꼭지마다 무지개 빛 천막이 넘실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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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빅토리아에 도착한 지 일주일 쯤 됐을 때 빅토리아에서 열린 Pride Festival에 갔었다. 흔히들 말하는 퀴어 축제였다. 여느 큰 행사가 그렇듯 경찰들이 나와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단순히 ‘질서 유지’라는 공적인 목적을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함께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와 있었다. 경찰차가 무지개 장식을 두르고 행진 대열에 함께 했다. 경찰들은 행진 참가자들과 대화를 하고 그들이 나누어주는 무지개무늬 팔찌나 부채를 직접 착용하거나 들어 보이기도 했다. 그건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이었고 동시에 엄청난 부러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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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캐나다는 세계에서 4번째, 아메리카 대륙에선 첫 번째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고 한다. 물론 캐나다라고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적인 혹은 폐쇄적인 시선들이 완전히 부재하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 문제에 관해 사회적 합의가 부재한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캐나다 사회의 상대적인 관대함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횡단보도를 비롯한 도서관, 경찰과 같이 공적인 사람, 장소, 시설물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존중을 보란 듯이 드러내기까지 얼마나 큰 산통을 겪어야 했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나 캐나다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시선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을 존중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의 차이, 그리고 그 정도의 차이는 극명하다.

 도서관에 책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DVD가 비치되어 있다는 사실과 심지어는 작은 녹음실 및 영상편집실까지 설치되어 있다는 점 역시 놀라웠다. 캐나다의 다른 도서관, 아니 우리나라 도서관에 대해서조차 잘 알지 못하지만 최소한 앞으로의 공공도서관이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볼 수 있는 건 아닐까. ‘공공’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도록, ‘도서’의 배타적인 지위가 무너지는 현 시대를 반영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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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나 해서 찾아본 [KOREA] 서가도 인상적이었다. 겨우 책장 한 칸이긴 했지만 ‘홍쿠버’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홍콩인이 많고 그 외의 아시아인들도 워낙 많은 밴쿠버의 특성이 온전히 드러났다.

 밴쿠버에 머무는 6일 중 절반은 내내 도서관에 갔다. Uvic에서 참가한 프로그램에 대한 보고서와 <트로이의 연인들> 프리뷰를 쓰기 위해서였다. 빨주노초파남보로 물든, 아니 눈에 보이지 않게 형형색색으로 물든 그 도서관은 지극히 평범했지만 가장 캐나다다운 곳이기도 했다.



2. Buzz 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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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인에 약하면서도 커피를 좋아하는 바람에 여행을 다니면 꼭 카페를 찾아다니곤 한다. 밴쿠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검색을 하던 중 ‘갤러리 카페’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고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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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층 구조의 카페에 아침 햇살과 함께 들어선 뒤, 좋아하는 헤이즐넛 모카를 시켜놓고 이층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벽면은 그림으로 가득했다. 카페 한 구석엔 미술 관련 서적들이 얕은 먼지 속에 놓여있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문서 작업을 하거나 미팅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럼에도 차분함이 공기를 메웠다. 이곳은 카페였지만 분명히 갤러리였고, 모두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자잘한 소음과 그림의 소리 없는 외침이 멜로디가 되어 묘하게 어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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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체 없는 멜로디에 취한 채 이 카페에 그림이 없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했다. 그래도 이 장소에 매료되었을까. 새삼 그림이 가진 힘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들 덕분에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기만 해도 어디로든, 언제로든 빠져들 수 있었다. 왼쪽으로 고개만 돌리면 피를 토하듯 붉게 물든 하늘로, 정면을 바라보면 누런 자작나무 숲으로, 오른쪽으로는 울창한 나무들 사이 반짝이는 호수로. 추상적이기도, 구체적이기도 한 오묘한 그림들에 생동감이 흘렀다. 그림은 그 존재만으로도 공간을 살아나게 할 수 있었고 동시에 스스로도 살아있었다. 그들이 단순히 전시용이나 장식용이 아닌 온전히 ‘작품’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카페 입구 앞엔 입구만큼이나 작은 가판대가 있었다. ‘Hooked on a feeling’ 몰랐는데, 이제야 검색해보니 ‘느낌에 중독되다’라는 뜻이란다. 그게 주문이나 저주쯤 됐던 모양이다. 밴쿠버를 떠날 때까지 발걸음은 매일 아침 Buzz Cafe로 향하기 바빴으니.



3. Vancouver Art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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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쿠버 다운타운 중심가에 위치한 Vancouver Art Gallery. 여행 계획을 거의 세우질 않아서 있는지도 몰랐던 곳인데 우연찮게 발견했다. 무엇보다도 눈길이 갔던 건 클로드 모네 전시 포스터 때문이었다. 모네! 나의 첫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가 바로 미디어 아트로 구성된 모네 전시가 아니었던가. 우연의 일치라는 걸 알면서도 괜히 운명이라고 우기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 때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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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ancouver Art Gallery가 특이했던 점은 매주 화요일 저녁 5시부터 9시까지는 오로지 기부로만 입장료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추천하는 기부금 금액은 10달러 정도였지만 순전히 관객의 자유에 달려있었다. 특이하면서도 꽤 괜찮은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를 내든 기부이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는 전시를 관람만 하는 '외부인'의 경계를 넘어 전시의 일부를 이루는 ‘구성원’이라는 마음이 일었기 때문이다.
 
 < Claude Monet's Secret Garden > 라는 타이틀을 한 전시는 예상외로 규모가 컸다. 엄청난 비난과 더불어 인상주의라는 용어가 배태된 <인상, 해돋이> 원작부터 시작해 지베르니에 있는 그의 정원을 배경으로 한 수련 연작 다수에 이르기 까지 모네의 길고 긴 예술 활동 전체를 음미할 수 있었다. 덕분에 Secret Garden이라는 제목에 맞게, 모네가 화폭에 그려 넣고자 했던 수많은 빛과 색채에 둘러싸여 모네의 정원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불필요한 요소 없이 담백하고 깔끔했지만 따듯했고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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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에서 매일 일기를 썼다. 짧게나마 온 마음을 다해서.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을 때 캐나다 이야기는 피하려 했다. <보암보암>은 문화예술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느낌을 쓰는 공간이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서툰 끄적임, 거기에 잔뜩 묻혀온 나도 처음 안아보는 감정들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차라리 가슴 밑바닥까지 긁어 쏟아내기로 한다. 누군가에겐 잠시라도 일탈의 공간이 되기를, 누군가에겐 지난 여정을 떠올리는 먹먹한 시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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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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