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린 모두 ‘덩케르크’ 그 곳에 있었다. [영화]

글 입력 2017.08.03 08:3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7월 20일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덩케르크’가 개봉했다. ‘ 크리스토퍼 놀란 만큼 한국인이 이토록 편애하는 외국 감독이 또 있을까? ‘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덩케르크는 그가 여태껏 선보인 영화와 마찬가지로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나 역시 그를 편애하고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수많은 팬 중 한명이기에 예매를 망설이지 않았다.
 
 ‘덩케르크’는 덩케르크 철수작전(다이나모 작전)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1940년 2차 세계대전 초기 프랑스 항구도시 덩케르크에 40여만 명의 연합군이 포위되어 있다가 극적으로 구출된 작전이다. 30여만 명에 육박하는 많은 인명을 지혜롭게 구하고, 그 이후 영국과 연합군이 독일에게 반격할 수 있는 여력을 보존했다는 점에서 전쟁사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다. 이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사실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 보다는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항상 범상치 않은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왔던 놀란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전쟁영화라니! 보기 전부터, 절절한 전우애, 피 칠갑한 수 십만명의 군인들, 자극적인 효과음 등등 전쟁영화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보이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관람 후 난 다시 한 번 더 놀란 감독의 역량과 그의 연출에 감탄 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감

Rb덩케르크2.jpg

 
 스크린 속 수많은 군인들은 너무나도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많은 죽음을 목격해서일까? 담담히 죽은 전우의 시체를 치우고, 집에 가기 위해 줄을 서고, 폭격이 오면 두 귀를 막고 땅에 엎드리거나 죽을힘을 다해 달린다. 덩케르크 속 배우들은 그다지 많은 대사를 내뱉지 않는데 이는 정말 전쟁 중 긴박한 생존의 사투에 놓여 말을 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군인의 사실적인 모습을 더 부각시켜 준다. 또한 덩케르크는 흔한 전쟁 영화가 그렇듯 소수의 영웅의 시점으로 그들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가는 그런 스토리가 아닌, 말단 병사들의 시점으로 스토리가 흘러간다. 단지 생존에 대한 의지와 목적만이 있는 말단병사의 시점은 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덩케르크는 인물의 대사보다는 행동, 인물의 캐릭터 화 보다는 영화의 서사에 더 집중하는데 이러한 점은 사실감을 더 극대화 시킨다.

 또한 놀란 감독은 컴퓨터 그래픽을 지양하는 감독으로 매우 유명한데, 덩케르크에서도 그런 면모가 아주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사실감과 현장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촬영하기 적절하지 않았던 덩케르크 해변에서 촬영했고, 실제 2차 세계대전 때 쓰였던 스핏 파이어라는 전투기를 사용하여 촬영했으며, 민간인들이 연합군을 구하기 위해 덩케르크로 향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어선 중에는 실제 덩케르크 철수작전에서 사용되었던 민간어선을 구해 촬영했다고 한다. 놀란 감독이 추구하고자 하는 이러한 아날로그식 촬영기법이 전쟁영화와 만나 시너지 효과를 냈다. 106분의 러닝 타임 동안 나는 덩케르크에 있었다. 덩케르크 해변에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배를 하염없이 기다렸고, 독일군의 폭격에 무서웠고, 너무나도 살고 싶었다.

 
    
# 땅, 바다, 하늘

Rb덩케르크3.jpg
 
 
 덩케르크의 시간은 해변 군인들의 1주일, 군인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덩케르크로 가는 민간 선박의 바다에서의 1일, 적의 전투기와 싸우는 조종사의 하늘에서의 1시간, 이렇게 세 가지 시점으로 흐른다, 놀란 감독이 왜 ‘시간의 마법사’ 라고 불리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살기위해 구조함을 기다리는 육군의 모습과 독일 전투기를 격퇴 시키며 덩케르크로 향하는 공군의 모습, 그리고 그들을 구하러 가기 위해 덩케르크로 향하는 바다위의 민간인들의 모습은 평면적일 수도 있었던 덩케르크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 준다. 그간 보통의 전쟁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시점으로 보는 전쟁은 전쟁의 실체와 그 속의 긴박한 생존 사투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세 가지 시점이 엇갈리다가 어느 순간 교차하면서 만나게 되는 장면이 있는데, 독일군을 격퇴시키다가 추락한 조종사를 민간 선박의 사람들이 구하고, 또 덩케르크로 가는 도중 물속에 빠져 허우적대던 해변의 군인을 구해 땅, 바다, 하늘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 영화의 서사는 하나의 시점으로 흐르게 된다. 서로 다르게 흘러가던 세 가지 시공간이 한데 모여 하나의 시간으로 흐르게 되었을 때의 그 감동과 희열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적

Rb덩케르크4.jpg
 
 
 전형적인 전쟁 영화는 흔히 적과 아군으로 이루어진 스토리가 대부분이다. 선과 악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거나 승패가 분명한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덩케르크에서는 이분법적 시각이 존재하지 않는다. 덩케르크에는 적군(독일군)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런 점을 곱씹어 보며 ‘보이지 않는 적이 제일 무섭다’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어디에선가 폭격이 오고 총알이 날아드는 장면은 피가 튀기는 전투장면 보다도 더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보이지 않기에 더 무서웠고 두려웠다. 적이 등장하지 않는 전쟁 영화라니! 정말 놀란 감독은 이름 그대로 관객들을 매번 놀라게 하는 힘을 가진 감독임이 틀림없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히 ‘덩케르크로부터의 탈출’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단순한 내용 속에 담긴 인간이 극한의 환경에 떨어졌을 때의 감정, 행동, 본능에 대한 심오한 이야기와 놀란 감독이 설치해 놓은 여러 영화적 장치들을 캐치해 낸다면 누구라도 엔딩 크레딧이 내린 후 놀란 감독의 팬이 될 것이리라 믿는다.
 
 전쟁 영화라기보다는 영상과 내용이 주는 현실감과 사실적임으로 인해 나에게는 공포영화에 가까웠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여태껏 전쟁이란 내 생활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106분 동안 나는 덩케르크에 있었고 전쟁이라는 재앙과도 같은 일은 나에게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구 어딘 가에서도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 무관심했던 나를 반성해본다.



이미지출처: 네이버 영화


[박윤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