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름, 고전을 다시 볼 시간

연극 '한여름밤의 꿈' 관람 후기
글 입력 2017.07.3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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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큼 덥지도 습하지도 않던 지난 23일, 연극 ‘한여름밤의 꿈’을 보기 위해 서강대 메리홀로 향했다. 겨우 시간을 맞춰 들어간 나는 일말의 준비도 없이 극과 마주했다. 테세우스와 히폴리타의 대사가 들려오자 유명한 작품은 시간을 내어가면서까지 관람하곤 했던 내가 한동안 연극을 멀리 했던 이유가 불현 듯 떠올랐다. 배우들에게서 느껴지던 미숙함, 그로 인해 내가 느끼는 어색함이 반복되는 게 싫어서였다. 주로 아마추어 연기자들의 연극만 봐온 터라 이런 감정이 더욱 강하게 들었는지도 모른다.
 
동시대의, 흔하디흔한 얘기를 다룬 연극을 볼 때도 불쑥불쑥 느껴지던 불편함이 16세기에 초연된 연극을 볼 땐 거의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구어체가 아닌 번역된 말투 그대로 뱉어내는 테세우스를 보며 극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배우의 연기력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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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샌더, 허미아, 드미트리우스, 헬레나가 처음 등장했을때도 전과 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단 오래된 연인 헬레나를 버린 드미트리우스는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 헬레나에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연인 사이는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지는 순간이었다.
 
눈길을 끈 장면은 이다음에 등장했다. 숲 속에 가는 네 주인공의 의상 때문이었는데 이들 모두 무대에서 걸어 나와 객석에 앉아도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인’ 차림을 하고 있었다. 옷차림은 각 인물의 성격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활발하고 긍정적인 허미아는 도망가기 좋은 편안한 활동복을 입고 있었고 도주 소식을 급하게 들은 헬레나는 젊고 어딘가 아픔을 간직했을 것만 같은 여성복으로 시선을 끌었다. 남모를 상처를 간직한 사람에겐 저절로 눈이 가듯이.
 
젊은이들이 극의 현대성을 끌어올리는 동안 오베론과 퍼크는 연극이 아니면 보기 힘든 요소들을 선보였다. 만화책에서 보던 하얗고 아름다운 요정들이 아니라 당황하긴 했지만 퍼크와 여왕의 요정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대치하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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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전형적인 연극의 묘미는 당나귀 소리를 천재적으로 잘 표현해낸 바텀과 단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바텀 무리가 선보이는 말장난, 성대모사, 몸개그 등은 관객들이 생각 없이 편히 웃는 데 일조한다. 특히 굵은 목소리로 현대인의 취향에 맞는 유머를 선보였던 바텀은 공중 침대에 매달려있는 동안 일부 관객들의 우려를 살만큼 주목을 받기도 했다. 나 역시 연기중인 인물을 보다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죽은 듯 매달려있는 바텀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본 연극이 “가장 야만적”이라는 말엔 동의하지 못하겠다. 영문학과 출신이고 ‘셰익스피어 입문’수업까지 들었지만 작품에서 어떤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느낌을 받진 않았다. 다만 “가장 현대적”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 공감가는 바다. ‘현대’가 정확이 어떤 걸 내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그저 그림체가 예뻐서, 꿈이라는 요소가 환상적으로 느껴져서 책장을 넘기던 그때와는 확연히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한 예로 헬레나의 미래가 걱정된다. 사랑의 묘약으로 하루 만에 변심한 드미트리우스를 신뢰하는 것이 가능할까? 드미트리우스의 갈대같은 마음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보다 헬레나가 혹시라도 상처받을까 걱정된다. 헬레나 정도면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전에 볼 땐 등장인물이니 무조건 이어지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우선이었는데, 여성의 시선을 갖게 된 내 모습이 참 신기하다.
 
머릿속은 묵직한 고민으로 가득 찼지만, 바깥의 습기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선선한 시간이었다.





이미지 : 영화 '한여름 밤의 꿈'(1999) 스틸 이미지


[이형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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