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단편집 : 장마 [문학]

글 입력 2017.07.25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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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은 매달 24일에만 기고됩니다.*




 ***
 전화는 빗소리를 닮았다.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낡은 길은 예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보였다. 여기저기 늘어진 나무들은 비를 맞으며 쳐져 있었고 길목에 숨죽이고 있던 다람쥐들은 차가 지나자 재빠르게 나무의 위로 올랐다. 하늘에서는 나를 혼내는 것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부고를 알린 것은 우습게도 동네 바보였다. 이름이야 제 나름대로 있겠지만 내게 바보는 그저 바보일 뿐이었다. 바보는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연신 더듬거리며 내 이름을 불렀다.

 -여, 연석아. 아, 아버지.

 거기쯤 듣자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멀리서 뱃고동 같은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충격으로 인한 환청일지도 몰랐다. 천천히 수화기를 내리고 고개를 돌렸다. 창밖으로 미세하게 빗방울이 부딪히고 있었다. 장마가 시작 됐다고 하네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켜둔 라디오에서 흘러 내렸다. 눈앞이 뿌옇게 변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장마가 내 얼굴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현재 강원지역 강수량 시간당 약 500mm라고 하네요.

 핸들을 돌리며 라디오를 껐다. 아버지의 집은 여전히 생기 없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낮인데도 깜깜한 탓에 틀었던 헤드 라이터를 끄고 핸들에 머리를 기댔다. 빗소리가 타닥거리며 무언가를 태우는 소리를 냈다. 옆 좌석에 두었던 우산을 들고 차 밖으로 나갔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집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어깨로 비가 들이쳐서 우산을 잠시 고쳐 쓰고 낡은 문을 지나 우산을 접었다.

 -아이고 연석이 왔구나.

 초록색 모자를 쓴 강 씨 아저씨는 이미 벌개진 얼굴로 나를 반기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자 손짓을 하며 날 아버지의 영정 앞으로 이끌었다. 검은 테두리 속에서 젊을 적 반짝이던 눈을 한 아버지는 나를 다정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왔어요, 아버지. 아버지의 사진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아버지는 나를 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거 바보가 발견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장마 다 지나가고 발견 될 뻔 했어.

 강 씨 아저씨는 파전을 입에 우겨 넣으며 말했다. 어쩌면 아버지는 장마가 다 지나고 겨울이 와서야 발견 되었을 지도 몰랐다. 그만큼 아버지는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 분이셨고 남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하시지 않는 분이셨다. 그래서 바보가 아버지를 발견 했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여, 연석이.

 한참을 강 씨 아저씨와 아버지에 대해 떠드는데 뒤로 찬 기운이 느껴져 돌아보니 하얀 이를 보이며 웃는 바보가 보였다. 비를 맞았는지 물을 뚝뚝 흘리며 입구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바보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바보는 손을 들어 흔들었고 강 씨 아저씨는 술에 취해서 뒤로 자빠지듯 누워 코를 골기 시작했다. 검은 넥타이를 조금 풀며 벽으로 기댔다. 어디든 기대야 조금이나마 현실에서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현실에서 멀어지고 싶을 때면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등에 기댔던 것처럼. 바보는 자기 옷을 손으로 몇 번 쥐어짜더니 내 옆으로 와 앉았다. 나를 따라하는 것처럼 벽에 등을 기대고는 넥타이도 없으면서 티셔츠의 윗부분을 잡고 흔들었다. 바보에게 먹던 파전을 건넸다. 바보는 바보처럼 웃으며 파전을 받아 들고는 한 입씩 떼어 먹었다.

 -우리 아버지 어떻게 발견했어?

 내 물음에 바보는 먹던 파전을 내려놓고는 아버지의 영정사진 앞으로 갔다. 그리고는 사진 앞에 앉아 내 이름을 불렀다.

 -여, 연석이 불러. 아, 아버지가 막 불렀어. 비, 비오면 연석이 아프다고, 마, 막 불러.

 바보의 말에 어깨를 작게 들썩이며 웃었다. 열 살쯤 교통사고를 당해 어깨를 수술한 후로 비만 오면 어깨가 당겨 울고는 했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내 이름을 부르며 이놈의 비, 이놈의 비, 하며 나를 업고 방안을 몇 시간이고 서성거렸다. 장마가 되면 유독 통증이 심해서 비가 그칠 때까지 울고는 했는데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고 나를 업었다. 그리고는 내리는 비를 내게 보여주며 괜찮다, 괜찮다 하며 내 어깨를 쓰다듬었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서 아버지는 그 역할을 하신 것이다.

 -있지, 우리 아버지 유언 같은 거 있었어?

 마른세수를 하며 물었다. 바보는 유언, 유언 중얼거리더니 다시 아버지의 사진을 뚫어져라 보기 시작했다. 여전히 비가 내리는 모양인지 바깥에서는 빗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아, 아버지 여, 연석이 괜찮다고, 괘, 괜찮다고.

 바보의 목소리는 빗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바보를 바라보자 바보는 손을 내게 뻗으며 말했다.

 -자, 장마와도 여, 연석이 괜찮다고.

 나는 신기루에 이끌리는 여행자처럼 바보에게로 다가갔다. 어깨의 통증은 이제 거의 느껴지지도 않게 되었지만 난 어깨가 아픈 아이처럼 울었다. 어릴 적 아버지의 등에 기대서 울던 그때처럼 바보의 어깨에 기대서 울었다. 까만 양복이 보기 싫게 구겨지고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바깥에서는 장마 특유의 거센 빗줄기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바보는 어릴 적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더듬거리는 말로 연석이 괜찮다 만을 반복했다. 나는 아버지가 사라진 현실에서 멀어지기 위해 바보의 어깨에 기댔다. 하지만 또렷하게 현실은 각인 되었고 나는 배에서 떨어진 뱃사공처럼 울고만 있었다. 강 씨 아저씨의 코고는 소리와 바보의 목소리가 빗소리 사이로 아득히 사라진다고 느끼던 순간, 잠깐의 틈 사이로 잠이 몰아쳐 내리기 시작했다.

 

 -현재 강원지역과 경기지역 강수량 연 50mm라고 하네요. 장마가 서서히 물러나나 봅니다.

 라디오를 끄고 창문을 열었다. 얇아진 빗줄기가 팔로 흐르기 시작했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바다가 되었을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이제 전 괜찮아요. 장마가 와도 끄떡없어요. 멀리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창문을 올리며 속도를 냈다.

 장마가 걷히고 있었다.

 
[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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