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울한 날들에 최선을 다해줘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7.24 18:4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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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적당한 시간과 여유 속에
궁금한 게 있어
충분히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왜 자꾸만 쉽게 슬퍼지는지

예감했던 일들은 꼭 그렇게 되는지
놀랍지도 않지
바뀌지 않을 내 모습처럼
그냥 또 이렇게 여기서 난 슬퍼할래

우- 우울한 날들에 최선을 다해줘
이 음악이 절대 끝나지 않도록
울고 싶은 날엔 눈물을 보여줘
이 노래가 절대 슬프지 않게


안녕하신가영 - 우울한 날들에 최선을 다해줘



왜 오지 않을까 했었다. 올 줄 알고 있었다. 오히려 너무 늦게 와서 의아했었나보다. 우울함, 나태함, 게으름,지루함, 아무것도 하기 싫음 이런 종류의─우리가 무시무시하게도 나쁘다고만 생각하는 것들 말이다. 고등학교때는 매일 기계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되면서도 하지 말아야겠다, 학교를 가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을 해보진 못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왜 기계처럼 살고 있지 않을 때에도 자꾸 거부를 하고 싶어지고, 도피를 하고 싶어지는 지 모르겠다. 이런 우울한 날들이 오면 "그래 왔구나, 오느라 고생했어" 라고 말할 만큼의 연륜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착각이었나보다.

우울한 날이 오면 대화는 시작된다. "너는 왜 그래, 너 오늘 왜그래. 열심히 다시 열심히 해야지" 라고 A가 말한다. 그러면 B가 자꾸만 "괜찮아 우울해도 괜찮아 원래 삶이란 우울한거니까"라며 말린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이 안에서 펼쳐진다. 우울한 날들엔 보통 널부러져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서 노트를 펴놓고 연필을 들어 원인을 찾기 위해서 써보지만 아무것도 쓸 수가 없다. 우울함은 어디서 오는 건지, 어떻게 사라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소리없이 와서 소리없이 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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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일들은 꼭 저렇게되고 이제 놀랍지도 않은 것들이, 나를 바꾸어 놓을 수 도 없으면서 나는 왜 또 약해진 맘으로 눈만 뜨고 있다. 우울한 날에는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음악과 글만이 남는다. 우울함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떤가. 그냥 아무것도 하기싫다. 정작 아무것도 안하면서, 모든 걸 온 몸으로 거부하면서 그러면서 입으로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를 외친다. 이 두려움과 우울함은 누가 남겨주고 간 걸까. 나의 무능에서 그리고 자신감의 결여에서 온 걸까.

언제부턴가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해서 벗어난 줄 알았는데 그건 꿈이었다. 그냥 삶은 쭉 계속 되는 거고 감정이란 쭉 계속 가는 건데 하루는 즐거움이 상승되고 하루는 슬픔이 고조되다가 둘 다 평행을 이루지 못할 때, 둘 다 협의를 보지 못했을 때 내 안에서 충돌이 생긴 거다. 마찰이 일어난거다. 그래서 웃지도 울지도 않으면서도 무표정으로 잠시 있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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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커피를 진하게 탔다. 평소 마시지 않던 커피를 오늘은 마시고 싶었다. 이런 날도 있는 법인데 꼭 우울한 날까지 최선을 다해야할까. 삶은 무조건적으로나 최선을 다해야하는 걸까. 우리는 최선이란 말을 왜 이렇게 좋아할까.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은 하루라 하여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냥 기쁨도 슬픔도 어느 것도 자신의 쪽으로 당기지 않고 '나'를 그대로 둘 때에 어쩌면 이게 내 모습에 가장 가까울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 위에서 쉴 수 있는 나로. 괜히 우울함을 이기려 발버둥치고 억지로 웃을 때가 오히려 더 힘들어 질 때도 있다. 욕시나 시간을 주는 것으로도 저절로 해결되는 게 가끔은 있나보다.


"너도 고생많았어, 그 동안 힘들었구나. 얼른 정신차리고 나가"


라고 말한다면 기쁨과 슬픔은 다시 움직이겠지, 서로 조절하면서 내가 느낀 감정만큼씩 조금씩 당기고를 반복하며 물론 다른 감정들도 마찬가지로. 그간은 이런 식으로 감정을 타협해왔던 거 같다. 오늘까지만 슬퍼하자, 오늘까지만 아파하자, 오늘까지만 미친듯이 놀아보자라는 식으로 딱 행동할 수 있는 기간을 정해줬다. 그러고 보니 타협 되어온 대상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그리고 인해 상처를 느낀 감정도 아닌 '나' 였다. 오늘까지 슬퍼할 수 있는 사람도, 오늘까지 아파 할 사람도 '나' 그리하여 우울한 날에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며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 어루고 달래서 "괜찮아" 누군가 위로하지 않아도 스스로 오늘까지만으로 한정시켜 우울 할 수 있는 존재로 되어버렸나보다.


그래서 우울한 날들에 최선을 다해줘─가 아닌 그냥 지금, 지금 이 순간에 말야 최선을 다해 우울해라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




<나의 플레이어>
Happy And Sad - Just Piano


[김다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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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Hoolo
    • 그냥 가끔, 이런 걸 가르쳐 주는 곳이 학교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곤 해요. 그럼 더 재미있는 학교 생활이 되었을 텐데. 그냥 힘으로 억누르기에 바쁜 삶을 배우고 그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느낌이에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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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달린
    • 2017.07.29 14: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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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고
    • HooloHoolo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이고 수정도 제대로 못하고 발행이 되어버렸는데 미흡한 글에서도 전하고 싶은 진심이 닿아져서 정말 정말 다행입니다. 그렇죠, 참는 수많은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이 순간에는 어떻게 하면 더 좋았을까 하고 답답하죠, 인생의 중요한 교차로의 순간은 언제나 신호등이 없다는 말을 늘 느낍니다. 가끔은 우울한 나날들에도 내 감정에 최선을 다해  아파할 필요가 가끔은 있는 거 같습니다. 오늘도 순한 하루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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