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또 하나의 약속: 거짓말같은 실화 [영화]

차라리 거짓말이였다면 좋았을텐데
글 입력 2017.07.11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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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택시기사 상구는 평범한 아버지이다. 상구는 딸 윤미가 대기업 진성전자에 취직한 것이 자랑스러웠지만, 한편으론 넉넉치 못한 형편 때문에 남들처럼 대학도 보내주지 못한 게 미안하다. 하지만 기특하게도 딸 윤미는 빨리 취직해서 아빠 차도 바꿔드리고 동생 대학도 보내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진성기업에 입사한지 2년도 채 되기 전에 윤미는 백혈병에 걸려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어린 나이에 가족 품을 떠났던 딸이 이렇게 돌아오자 상구는 가슴이 미어진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윤미와 같은 구역에서 일했던 직원들이 들어보지도 못한 희귀병과 백혈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는다.

어느 날 진성그룹의 인사담당자가 찾아와 윤미 스스로 사표를 쓰게 하고, 산재 신청을 하지 않으면 돈을 주겠다고 말한다. 결국 윤미는 죽게 되고, 백혈병에 걸린 것이 회사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 상구는 노무사인 난주와 함께 법정싸움을 벌이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윤미가 산재로 인정되고, 윤미와의 약속을 지키게 된 상구는 또 하나의 가족인 다른 피해자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낀다.
 




ANOTHER FAMILY


보통 반도체 공장에서 일할 때 안전복이라 해서 마스크와 흰 가운을 입는다. 우리들은 이것들이 공정과정에서 나오는 유해물질들을 차단해주는 것이라 주로 여겨진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실상 마스크와 옷의 용도는 그게 아니다. 공정과정 중 근로자의 침이 튀지 않게 해주는, 안전을 위한 안전복이 아닌 반도체를 위한 안전복인 것이다. 그마저도 작업을 하다보면 안전복을 벗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에서는 근로자가 마스크를 벗고 직접 코로 유해물질을 들이마시기도 하고 손으로 만지기도 한다. 이렇다보니 안전복을 입었다 해도 하루에 열 몇 시간을 공장에서 보내면 유해물질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버리고, 결국 건강한 사람이었다 해도 몇 달 안에 발병하게 되는 것이다. 기업에서는 안전복을 입고 작업을 하니 직원들이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닌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이라 하면 중‧소기업보다는 더 최첨단의 장비로 체계적이고 안전한 공정과정을 거칠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를 본 후 실제 사례들이나 기사들을 찾아보니 그건 나의 오해였다. 물론 최첨단의 장비를 사용하겠지만 직원들의 안전(건강)에 대한 기업의 생각은 저급했다. 영화 속 인물 ‘윤미’처럼 어린 나이부터 반도체 공장을 다녔던 사람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많은 작업량과 오랜 시간 서서하는 작업 자세 때문에 몸에 마비가 온 적이 있다고 한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회사에서 전화 한 통이 온 적이 있는데 언제 다시 나올 수 있냐는 전화였다. 사람이 없다고 빨리 나와 달라는 말이다. 이럴 수가 있는가? 기업은 직원의 건강은 뒷전이고 자신들의 이익만 따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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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횡포는 영화 개봉 후에 더 체감할 수 있었다. ‘Another Family’ 삼성이 자주 쓰는 문구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대기업을 상대로 만든 영화다보니 제작과정에서부터 순탄치 않았다. 일반 시민들의 두레를 통해 제작비를 모으고 배급사 하나 없이 상영했다. 그러다보니 상영 후 모순된 상황이 나오기도 했다. 예매 율은 1위를 달리는데 상영관은 전국에 7개관 밖에 없었고 그 중 6개관이 롯데시네마였다. 아무래도 CJ와 삼성의 관계 때문에 삼성의 모종의 개입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또한 영화관 예고편 영상과 TV광고를 암암리에 금지시켰다. 이게 삼성이 외치던 Another Family인가? 사실 본인은 삼성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그 잘못을 가리는데 급급한 태도에 실망했고 오히려 기존 이미지는 실추됐다.





QUESTION


윤미를 비롯한 진성전자 직원들은 유해물질에 자신들이 노출되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 일을 한 걸까?

실제 반도체 공장 직원 말에 따르면 반도체 공장에도 생산별로 부서마다 하는 일이 다르듯이 어떤 부서는 약품을 취급하고 어떤 부서는 도구를 취급한다고 한다. 환경 수당이라고 해서 약품 취급하는 곳은 한 달에 추가수당 만원을 주는데 직원들은 그거라도 받으려고 그 일을 한다. 윤미의 경우 가족들이 끼치는 영향이 컸다. 대기업에 취직한 자신을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는 아빠, 대학에 가야하는 동생, 넉넉지 않은 형편을 외면 할 수 없었을 거다. 영화 속 인물인 교익은 회사 초창기부터 회사에 기여도가 큰 직원이다. 그는 영화에서 “집에 가서 무엇 하나 회사가 나에게 해준 게 더 많은데”라는 말을 한다. 이처럼 회사에 대한 애정이 도가 지나쳐 잘못된 점을 인정치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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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진성전자는 왜 직원들이 산재 판정받는 것을 불편해 했을까?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하면 해당기업은 악덕기업으로 몰려 이미지를 실추하게 된다. 정부는 그런 기업을 주요 감독 대상으로 선정해 수시 또는 특별 감독에 나서고, 기업과 임원은 정부 포상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산재보험료율이 올라가 많은 보험료를 내야하는 불이익도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근로자가 산재 판정을 받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차라리 피해 근로자와 합의를 시도한다. 진성전자도 윤미가 백혈병에 걸리자 처음에는 합의를 위해 500만원을 내밀다 소송이 본격화 되자 10억 원을 제시한다. 사실 법적으로 기업에게 책임을 물어 정당하게 피해보상으로 받게 될 금액은 합의를 목적으로 기업이 제시한 돈보다 적다. 허나 유가족들이 진정으로 원하던 것은 돈이 아닌 그들의 공식적인 사과, 근로 환경 개선에 대한 약속,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영화에서 보면 상구(택시기사)는 자신의 딸 윤미를 위해 진성전자 직원이 건네는 합의금을 받지 않는다. 만약 윤미 엄마인 정임의 뜻처럼 골수이식을 위해 처음부터 돈을 받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극중에서 윤미는 상구의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던 도중 택시 뒷자리에서 죽음을 맞는다. 돈이 없어서 골수이식을 하지 못해 죽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처음부터 합의금을 받고 골수이식을 했더라면 윤미가 살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게 아니다. 허나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치에 어긋나더라도 융퉁성있게 행동해야 하는 몇몇 일들이 있다. 일단 사람먼저 살리고 봐야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ANOTHER PERSPECTIVE


영화는 피해 근로자들의 시점에 맞춰 내용이 전개된다. 반대로 진성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진성은 극중에서 대기업으로 나온다. 그런 대기업에게 그 회사의 이미지는 매출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친다. 근로자가 산재 신청을 한다면 회사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것이고 그건 곧바로 매출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회사는 피해 근로자가 산재 신청을 하기 전에 합의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에서 진성의 잘못은 피해 근로자의 산재 신청을 막고 합의를 보려한 것이 아니라 근로자와 그의 가족들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사죄하는 마음으로 피해 직원과 그 가족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합의금을 제안하고 했다면 좋았을 거다. 그러나 영화에서 진성전자의 직원은 피해 근로자들의 건강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회사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태도에 그쳤다. 진성의 입장에서 보면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 합의를 제안할 수 있지만 합의를 보려 할 때의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ATTITUDE
  
 
이 영화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한 특정한 기업에 대한 비판뿐만이 아니라 나아가서 이 사회와 갑에게만 맞춰져 있는 법이 바뀌길 바라는 것 같다. 이런 문제가 해소된다고 해결 되는 게 아니다. 우리들 또한 바뀌어야한다. 갑도 아닌 우리가 어떤 것을 바꿔야하는 걸까. “(멍게는) 처음에는 동물이었는데 나중에는 식물이 돼요. 야(얘)도 태어날 때는 뇌가 있었는데요, 바다 속에 살다가 어디 한군데 뿌리박고 편안하게 살기 시작하면 뇌를 소화시켜 버린대요.” 딸을 백혈병으로 잃게 된 상구가 극중에서 노무사 난주에게 사건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며 하는 말이다. 상구는 뒤이어 난주에게 “당신도 멍게처럼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느냐”고 묻는다. 이 대사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일말의 사건 없는 일상에 안주해가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삶은 멈춰야한다.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싶으면 일어나야하고 그 문제에 맞설 수 있는 자세를 갖춰야한다. 질 것 같다고 힘들 것 같다고 시작도 전에 포기해버리면 다음에 같은 일이 닥쳤을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포기하는 일 밖에 없을 거다. 일단 시작해보면 그게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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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사건으로 보자면 한명의 택시기사에서 시작된 무엇이 한명, 두 명 더해져 다수의 힘이 되 결국엔 진성이란 대기업에 맞서 싸워 승소를 얻어냈다. 만약 상구가 진성과 맞서려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주저하던 다른 피해 근로자들은 나서지도 않았을 거며 저런 엄청난 결과를 얻을 수 없었을 거다.


[김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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