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람은 다 그래, 오페라 < Cosi Fan Tutte >

글 입력 2017.07.0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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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si Fan Tutte >의 막이 오르자 빠르고 경쾌한 관악기와 위풍당당한 현악 소리가 어우러지며 서곡이 시작되었다. 마치 전반적인 내용을 예고하는 듯한 힘차고 경쾌한 연주였다. 이어서 남자들의 대화가 등장했는데, 세트가 굉장히 정교하고 예뻤고 인물들은 내 머릿속 이미지와 달라서 상상 속 인물이 뿅 튀어 나와 눈앞의 무대에서 현실화 된 느낌이었다. 특히 알폰소는 속세와 거리가 먼 회의적인 부적응자 이미지를 상상했는데 실제로는 두 장교와 그들의 연인들을 손바닥에 올려 놓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는, 좀 꼬인… 굳이 따지자면 세속적이고 능글맞은 성격에 가까워 보였다.

 알폰소뿐만 아니라 데스피나, 굴리엘모, 페란도, 피오르딜리지, 도라벨라 모두 배우들의 연기로 훨씬 생동감 있는 캐릭터가 되었고, 사실적이고 아기자기한 무대는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살아 있는 세계에서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해프닝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소재가 재미있어서 보고 싶기도 했지만, 역시 글로 보는 것보다는 공연으로 봤을 때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아 보러 온 것인데 예상이 맞았다. 오케스트라와 배우들이 목소리는 극의 고조를 조절하며 흐름을 쥐었다 폈다 했고 모차르트답게 대본에 깔린 재치가 입가에 미소를 떠나지 않게 했다. 그 모든 것들이 만족스러워서 오페라일 수밖에 없는, 오페라여야만 하는, 오페라일 때 가장 빛나는 공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플롯은 엄청 단순하다. 연인의 변심을 두고 내기를 하는 세 남자. 하지만 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노래로 풀어낼 때, 사랑을 받아주지 않으면 독을 먹고 죽네 마네 하는 희극적인, 솔직히 웃긴 상황 앞에 놓인 자매의 갈등은 의외로 와 닿는 면이 있었고 그렇게까지 하게 된 두 장교의 오기도 이해가 갔으며 (그런데 공감까지는 아니었다) 자매를 꼬드기는 나쁜 여자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가장 현실적인 데스피나와 일을 벌려 놓고는 그녀에게 여러 모로 큰 도움을 받는 알폰소의 묘한 조합을 보면서 그들이 얄밉지만은 않았다. 아마 이 여섯 남녀가 이루는 캐미의 근간은 모차르트에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살아있다면 한 번만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대체 어떤 기인일까 궁금해서… 어쨌든 여섯 주인공이 이처럼 무척이나 조화로운 탓에 당연히 어떤 아리아보다도 같이 그들이 함께 쌓은 음성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예를 들면 여섯 명이 모두 등장하는 1막의 16장은 이런 식이다. 변장한 굴리엘모와 페란도가 독약을 먹고 쓰러진 체 하자, 알폰소는 동방에서 온 의사로 변장한 데스피나를 데려온다. 그녀는 미지의 언어로 주문을 외우고, 피오르딜리지와 도라벨라는 어쩔 줄 몰라 한다. 굴리엘모와 페란도는 독을 먹고 정신 나간 척 발작하며 구애하고, 피오르딜리지와 도라벨라는 막무가내 구애에 분노하지만 데스피나와 페란도는 큰 분노는 사랑으로 바뀔 것이라며 재미있어 하고, 정작 두 장교는 연기를 하면서도 넘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속내를 보인다. 이렇게나 다른 마음들이 모여 만든 무대가 마치 < Cosi Fan Tutte >의 시그니처 같다고나 할까. 마치 꼬박 일주일을 달리는 급행열차에 오기로 올라탔지만 누군가 열차를 멈춰줬으면 하는 심경과 비슷한 내적 갈등을 겪는 장교들, 혼란스러운 자매, 일이 예상대로 흘러갈지 흥미진진한 알폰소와 능청스러운(척 하지만 관객을 웃기는 게 중요하다) 연기로 탁월하게 제 역할을 해내는 데스피나, 모두가 아닌 척 무대를 맛깔나게 꾸미고 있다는 게 감상 포인트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들이 오페라를 보기 전 품었던 약간의 의구심을 싹 날려주었다. 여자들이 남자들의 꼼수에 속아 잘못을 홀랑 드러내고 결론은 “여자들은 다 그래”! 하는 식의 양상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속이고 누구는 속고 누구는 의기양양해 하면서도 결말에 이르러서는 “우리 사실 다 그 수준이잖아 좋은 게 좋은 거지” 할 것을 아는 것마냥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듯한 느낌이 배우들의 전반적인 연기에 깔려 있었고 이런 연출은 가벼우면서도 어딘가 촌철살인 같은 면모가 있었다. 제목은 “여자는 다 그래”라지만, 사실 극중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아마 전지적 모차르트 시점에서 자신의 무대를 구상하며 생각한 컨셉은 “너네 다 그래” 였을 것이다. 물론 내 생각이지만… 이 부분에서 모차르트가 더욱 궁금해지기도 했다. 보통 작품을 보면 작가의 밝은 쪽, 어두운 쪽 면모가 골고루 드러나기 마련인데 이렇게 결론을 항상 한없이 해맑은 쪽으로 내 버리는 모차르트라는 양반의 어둠은 반대급부적으로 얼마나 더 꽁꽁 숨겨져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에 대해서는 더 많이 접해볼 기회가 생길 것 같다. 어쨌든 그의 오페라를 처음 접한 결과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그의 천재적인 작품을 느낌 그대로 전달해준 연출 및 스탭들과 배우들, 합창단, 교향악단 모두 실력이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오페라가 볼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이렇게 많은 이들이 각자 노력을 녹여내어 완성한 거대한 세계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새로운 시야를 틔울 기회를 준 아트인사이트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이런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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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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